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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의 영화 '살인의 추억'(2003)이 범인을 잡지 못한 시대의 현실을 그렸다면, 지난 20일 방영을 시작한 ENA 월화드라마 '허수아비'는 진범이 잡힌 뒤에도 끝나지 않은 이야기에 주목한다.

범인을 잡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과정에서 남겨진 이들의 고통을 정면으로 들여다본다.

'살인의 추억'을 지나 드라마 '허수아비'가 던지는 질문 : 그 당시 이춘재를 왜 놓쳤을까
ENA 드라마 '허수아비'에서 사건 현장에 허수아비가 세워져 있다. ⓒENA

30여 년간 미제로 남아 있던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은 2019년 진범이 밝혀지며 전환점을 맞았다.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을 모티브로 하는 드라마 '허수아비'는 범인 검거 이후를 거슬러 올라가며, 수사 과정에서 만들어진 가짜 범인과 그들이 감내해야 했던 시간을 조명한다.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은 진범의 신상이 공개되기 전까지 약 33년 동안 '화성 연쇄살인 사건'으로 불렸다. 이후 2019년 9월, 처제 살인 사건으로 부산교도소에 복역 중이던 이춘재가 진범으로 확인되면서 사건 명칭이 현재의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으로 변경됐다.

'허수아비'는 연쇄살인 사건의 진범을 수사하던 형사가 자신이 혐오하던 인물과 뜻밖의 공조 관계를 맺으며 펼쳐지는 수사극이다. 과거 학교 폭력의 피해자와 가해자였던 두 인물이 각각 형사와 검사로 만나 사건을 해결해 나간다. 작품은 범인을 쫓는 과정보다 진범이 밝혀진 뒤 남겨진 사람들의 상흔을 다루는 데 집중한다.

제목 '허수아비'는 실제 사건 당시의 웃지 못할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당시 수사에 진척이 없자 경찰은 무속인의 조언을 따랐다. '자수하지 않으면 사지가 썩어 죽는다'는 글귀를 적은 허수아비를 화성 곳곳에 세웠다. 경찰들이 범인을 겁주기 위한 주술이자, 당시 수사의 비이성적 단면을 보여준다. '허수아비' 연출을 맡은 박준우 감독은 원래 '자수하지 않으면 사지가 썩어 죽는다'를 제목으로 하고 싶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드라마가 조명하는 '허수아비'는 다른 의미를 담는다. 극 중에서 자주 등장하는 허수아비는 억울하게 희생된 사람들을 보여주는 상징으로 볼 수 있다. 박 감독도 진범 이용우의 이름에 '허수아비 용(俑)' 자가 들어간다고 설명했다.

'살인의 추억'을 지나 드라마 '허수아비'가 던지는 질문 : 그 당시 이춘재를 왜 놓쳤을까
박준우 감독이 13일 서울 구로구 더세인트에서 열린 ENA 드라마 '허수아비' 제작발표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26.4.13 ⓒ연합뉴스

'허수아비'의 연출은 드라마 '모범택시', '크래시'를 통해 실력을 인정받은 박준우 감독이 맡았다. SBS 시사교양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 PD 출신인 박 감독은 자극적인 범죄 묘사보다 인물의 내면과 사회적 메시지를 긴장감 넘치게 풀어낸다. 기존 작품들이 '범인이 누구인가'라는 사건의 미스터리에 집중했다면, 이 작품은 '범인이 잡힌 뒤 우리는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박준우 감독은 지난 13일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범죄 사건으로 한국 사회의 특정 시기를 보여줄 수 있으면 어떨까. 그 시대의 사람들이나 공기나 우리가 살아왔던 모습을 되돌아볼 수 있는 작품을 하고 싶었는데 그 오랜 꿈을 이뤄준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이어 "80년대 중후반의 수도권 농촌 지역의 공동체가 연쇄살인사건을 겪으면서 그 지역사람들이 어떤 일을 겪었고 그 당시 범인은 왜 잡히지 못했느냐, 이런 것들을 되돌아볼 수 있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작품의 독특한 구성도 눈길을 끈다. 박 감독은 "맨 첫 씬과 맨 마지막 씬에 범인이 나온다"며 "2019년에 이춘재가 범인으로 특정이 되고 주인공 태주가 60대 중반의 나이에 범인과 마주하는 장면이 첫 장면"이라고 밝혔다. 이 작품은 강성 연쇄 살인사건이 시작된 1988년의 풍경과 진범 이용우가 검거된 2019년의 시점을 교차시킨다. 특히 에필로그를 통해 형사 강태주와 진범 이용우의 30년 만의 재회를 담아내며 극의 긴장감을 높였다.

박 감독은 기획 의도에 대해서 "5년 전에 이 사건 관련자를 두 분 정도를 우연치 않게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이춘재 연쇄살인사건이 잘못 알려져 있다. 너무 미스터리한 사건으로서 범인이 누구였느냐고 이춘재로 밝혀지기 전까지는 대중들은 관심을 가졌는데 실은 그게 중요했던 게 아니다. 사건과 관련된 이야기를 해주면 어떻겠냐는 말을 해주셨다"고 회상했다. 이어 "그 당시 이춘재를 왜 놓쳤을까. 이게 30년 동안 미궁 속에 빠진 사건이 됐을까라는 점을 이야기해볼 수 있겠다고 생각해서 이 작품을 기획하게 됐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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