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크래프톤은 통 큰 주주환원 계획으로 주목받았다. 크래프톤의 'K-밸류업'에 증권업계도 목표주가를 올리며 반응했다.
크래프톤이 올해부터 2028년까지 주주환원에 쓰는 돈만 1조 원이다. 3년 동안 7천억 원 이상의 자사주를 취득하고 연간 1천억 원 규모의 감액 배당을 시행한다. 2023년부터 2025년까지 실행했던 6930억 원 규모 주주환원보다 44%가량 늘어난 규모다.
그러나 화려한 주주환원 이면에 밸류업의 또 다른 요소인 지배구조의 취약성이 가려져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장병규 크래프톤 의장은 2008년부터 현재까지 크래프톤 이사회 의장직을 유지해왔다. ⓒ크래프톤
24일 게임업계에 따르면 주주총회를 전후로 크래프톤의 밸류업 노력에 대한 시장의 평가가 이뤄지는 가운데 이사회의 독립성 측면에서 아쉬운 시선이 모이고 있다.
이사회 구성에서 가장 먼저 문제의 인물로 지목되는 것은 장병규 의장이다. 그는 2007년 블루홀스튜디오(현 크래프톤)를 창업한 뒤 2008년부터 현재까지 약 18년간 크래프톤 이사회 의장직을 유지해왔다.
그는 크래프톤의 창업주이자 최대주주, 사내이사다. 이미 회사 경영에 있어 대표이사보다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여기에 이사회 의장직이 더해진 것이므로 이사회 독립성을 제고하기 어려운 구조다.
이사회 의장은 기업의 경영감독 기능을 누구보다 앞장서서 수행해야 한다. 때문에 지배구조핵심지표에 따르면 사외이사를 이사회 의장으로 선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국ESG기준원은 대표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겸임하지 못하도록 권고한다. 이사회가 경영진의 거수기로 전락하지 않고 견제 기능을 다할 수 있도록 경영진과 긴장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인물이 의장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기업 오너보다 사외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하는 것이 거버넌스 측면에서 더 나을 수 있다"면서도 "사외이사든 사내이사든 근본적 문제는 그 자리에 온 사람이 진정 독립적일 수 있느냐는 것"이라고 말했다.
크래프톤은 기업지배구조보고서에서 이사회 구성에 대해 "장병규 이사회 의장은 대표이사를 겸직하지 않으며 이사회를 건설적으로 이끌고 상호 견제와 균형을 통하여 기업경영의 효율성을 높이고 있다"며 "사외이사의 독립성과 객관성을 보장하기 위하여 이사회 구성원의 71%를 사외이사로 구성하고, 이사회 내 모든 위원회는 사외이사가 위원장을 맡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외이사 비율을 높여 이사회 독립성을 확보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크래프톤은 7명의 이사 가운데 5명을 사외이사로 구성해 사외이사가 과반 이상이다. 문제는 이들 사외이사도 독립성 측면의 비판을 피해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염동훈 메가존클라우드 대표이사는 올해 정기 주주총회에서 새로 사외이사로 선임됐다. 크래프톤 이사회는 염동훈 대표를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하면서 "크래프톤의 중장기 성장 전략과 기술 기반 사업 방향에 대해 균형 잡힌 관점을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사유를 밝혔다.
하지만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는 이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연구소는 "최근 3년 사이 염 후보가 대표이사로 재직 중인 메가존클라우드와 크래프톤 사이에는 용역 거래가 존재한다"며 "재직 중인 법인과 회사가 용역 등 거래가 있을 경우 회사로부터 독립성이 결여되었다고 판단된다"고 지적했다.
더 큰 문제는 염 이사가 이번 주총에서 이사회 내 감사위원회 위원으로도 선임됐다는 것이다. 감사위원은 경영진 감시 기능을 해 더욱 엄격한 독립성이 요구되는 자리다.
이번 주총에서 단행된 정관 변경도 지배구조를 후퇴시킨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문제가 된 것은 자사주 관련 조항과 이사 정원 관련 조항이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올해 3월 '일반주주 권익 침해가 우려되는 정관 개정안을 공시한 기업들 명단'을 공개하며 여기 크래프톤을 포함시켰다. 자사주 처분 관련 정관이 자사주 소각을 피하는 데 남용될 소지가 크고, 이사 최대 정원을 축소한 것이 대주주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크래프톤의 이사회 구성에서 분명히 개선된 점도 눈에 띈다. 장 의장의 이사회 내 위원회에 개입된 정도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지난해까지 장 의장은 사외이사를 추천하는 이사후보추천위원회에 소속돼 있었다. 하지만 올해부터 위원회 구성에서 빠지면서 ESG위원회에만 속하게 됐다.
크래프톤은 이사회의 독립성 확보라는 해묵은 과제를 남긴 채, 주주환원 정책을 예고대로 시행하겠다고 발표했다. 오는 27일 크래프톤은 3362억 원 규모의 자사주를 소각한다.
증권업계는 크래프톤의 자사주 소각 계획이 실제로 이행되면 주가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기대한다. 남효지 SK증권 연구원은 "과거 자사주 취득 기간 보였던 주가 상승을 감안하면 이번 자사주 취득 기간에도 주가 상승이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