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인터넷 매체가 10.29 참사(이태원 참사) 희생자 155명의 이름을 유가족 동의없이 무단으로 공개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인터넷 매체 '시민언론 민들레(민들레)'는 더탐사와 함께 14일 10.29 참사 희생자 155명의 명단을 인터넷에 올렸다. 명단 공개를 원치 않는다는 뜻을 전해온 유족 측 의사에 따라 해당 매체는 희생자 10여 명의 이름을 명단에서 삭제하기도 했다.
민들레는 "얼굴 사진은 물론 나이를 비롯한 다른 인적 사항에 관한 정보 없이 이름만 기재해 희생자들이 구체적으로 특정되지는 않는다"며, "위패도, 영정도 없이 국화 다발만 들어선 기이한 합동분향소가 많은 시민들을 분노케 한 상황에서 희생자들의 실존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최소한의 이름만이라도 공개하는 것이 진정한 애도와 책임 규명에 기여하는 길"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민들레는 "희생자들을 익명의 그늘 속에 계속 묻히게 함으로써 파장을 축소하려 하는 것이야말로 오히려 재난의 정치화이자 정치공학"이라며 "희생자들을 기리는 데 호명할 이름조차 없이 단지 '158'이라는 숫자만 존재한다는 것은 추모 대상이 완전히 추상화된다는 의미"라고 주장했다.
민들레는 "유족들께 동의를 구하지 못한 점에 대해서는 깊이 양해를 구한다"면서, "이름도 공개를 원치 않는 유족께서는 이메일로 연락을 주시면 반영토록 하겠다"고 밝혔다.
"트라우마를 겪는 유가족, 돌이킬 수 없는 권리 침해"
2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 참사현장 앞에 마련된 추모공간에 시민들이 남긴 추모의 글이 남겨져 있다. ⓒ뉴스1
한편, 세월호 참사 생존자의 트라우마를 연구했던 김승섭 서울대 보건대학원 환경보건학과 교수는 참사 희생자 명단 공개에 "멈추셨으면 좋겠다"며 철회를 촉구했다.
김 교수는 14일 페이스북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들에게는 그날의 기억이 어쩔 수 없이 거대한 트라우마로 남아있다"며 "트라우마를 경험한 이들이 그 이후 시간을 견디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정"이라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참사를 두고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가장 크게 상처받은 사람들을 돌보는 일"이라며 "지금 상황에서 그 이름 공개로 유가족들이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저는 모르겠다"고 밝혔다. 이어 김 교수는 "만약 그 공개가 사회정의를 실천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신다면, 그 정의가 누구의 자리에서 바라본 정의인지 한번 생각해보셨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10.29 참사' 진상규명 및 법률지원 TF는 14일 성명을 통해 희생자 유가족의 동의 없는 명단 공개에 깊은 우려를 표하며, 명단 공개 철회를 요청했다. 민변의 변호사들은 일부 희생자 유가족의 위임을 받아 법률적 대리인을 맡은 상황이다.
민변은 "헌법과 국제인권기준이 정한 프라이버시에 대한 권리 보호의 원칙에 따라 희생자들의 명단이 유가족들의 동의 없이 공개되지 않도록 하는 적절한 보호조치가 취해져야 한다"며 "국가의 적극적인 보호도 필요하지만, 언론과 시민들의 희생자 유가족들의 프라이버시에 대한 사회적 존중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민변은 "희생자 유가족이 합치된 의사를 표명할 수 없는 현재의 상황에서, 동의 없는 명단 공개는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유가족의 돌이킬 수 없는 권리 침해를 야기할 수 있다"며 "명단을 공개한 언론사에는 희생자 유가족들의 권리와 입장을 고려하여 명단 공개를 철회할 것을 요청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