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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가 배우에게 즉석 질문을 던지면 어떨까? 평소에는 낯간지러워 묻기 힘든, 예기치 못한 질문 말이다. 허프포스트코리아가 이런 상황을 직접 만들었다. 코너명은 '배우 vs 배우'. 배우가 배우를 서로 인터뷰하는 코너다. 매 회, 특정 키워드를 공유한 배우 두 명이 쌍방 간 탐구하는 시간을 가지되, 질문은 사전에 공유되지 않는다. 인터뷰 현장에서야 질문을 확인할 수 있다. 

사진 촬영 중 박호산과 김정영 배우, 넷플릭스 '더 글로리'에서 '주여정 엄마' 역 김정영 배우, tvN '나의 아저씨'에서 '박상훈'역 박호산 ⓒ허프포스트코리아, 넷플릭스, tvN
사진 촬영 중 박호산과 김정영 배우, 넷플릭스 '더 글로리'에서 '주여정 엄마' 역 김정영 배우, tvN '나의 아저씨'에서 '박상훈'역 박호산 ⓒ허프포스트코리아, 넷플릭스, tvN

지난주에 이어 '배우 vs 배우', 제3막이 열렸다. '배우 vs 배우' 시리즈 3회차 키워드는 ‘연극/배우’다. 72년생 51세 동갑내기 배우 박호산과 김정영이 3회차의 주인공이다. 

연극/영화보다 더 극적인 박호산과 김정영 배우의 인생

마곡 스튜디오에서 인터뷰 중인 김효정 평론가, 박호산 배우, 김정영 배우 ⓒ허프포스트코리아
마곡 스튜디오에서 인터뷰 중인 김효정 평론가, 박호산 배우, 김정영 배우 ⓒ허프포스트코리아

연극 무대가 인재 발굴의 장이 되었던 시대가 있었다. 2000년대 초반, 각기 다른 컨셉의 대형 오디션들이 대학로에서 열렸고, 이 오디션을 통해 많은 연극배우들이 스펙트럼을 넓혀 영화에서도 활약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각자 데뷔의 과정은 다르지만 오늘 마주 앉은 두 사람 역시 대학로 연극 무대에서 시작해 영화와 드라마에서 종횡무진 활약하는 배우들이다.

더군다나 이들 두 배우, '더 글로리'의 김정영, '슬기로운 감빵생활'의 박호산은 대학로 연극 씬에서 두터운 커리어를 가지고 영화와 드라마로 확장했지만 현재까지도 연극 무대를 향한 끊임없는 애정과 에너지를 보여주는 아티스트들이기도 하다.

이들이 지난 22일, 실로 오랜만에, 대학로가 아닌 서울 마곡의 한 스튜디오에서 만나 인터뷰를 나누었다. 

인터뷰 후 사진 포즈를 취하는 박호산 배우와 김정영 배우 ⓒ허프포스트코리아 
인터뷰 후 사진 포즈를 취하는 박호산 배우와 김정영 배우 ⓒ허프포스트코리아 

20년 넘는 종횡무진 커리어

긴 시간 동안 알고 지낸 사이지만 서로를 어떤 배우로 생각하고 있냐는 물음에 박호산은 “김정영은 연기를 정말 잘 하는 배우다” 라고 대답하며 대화를 시작했다. 김정영은 “예전에도 박호산은 정말 바쁜 배우였다. 워낙 출중한 연기로 일찍부터 인정을 받았고, 초반부터 주연을 도맡아 했다.”라며 서로에 대한 존중을 표현했다. 박호산과 김정영은 동갑인데다가 데뷔 시기도 비슷하다. 박호산은 1997년 영화 '블랙잭'으로, 김정영은 2000년 '실제상황'으로 데뷔했다.

또한 두 사람은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놀라울 정도로 많은 작품을 해왔다. 특히 박호산의 경우 1년에 6작품에서 10작품 (공연)까지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그는 “연극배우는 대본이 없고 공연이 없으면 실업자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더욱 공연에 매달렸다. 알바가 하기 싫었기도 하다”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김정영은 “(연극배우는) 인류에서 가장 오래된 비정규직과 같은 것”이라며 농담을 던졌다.

[배우 vs 배우 ③]   ''조연과 주연의 차이..? 51세 동갑내기 배우 박호산과 김정영의 롱런 비결은 아낌없이 박수가 나온다
김정영 배우 ⓒ뉴스1

두 배우의 '인생의 터닝 포인트'는 모두의 예상을 깬다

인생의 반 이상을 배우로 살아온 두 사람인 만큼 이들에게 분명 변곡점이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필모그래피로 보면 박호산은 '낙원의 밤' (박훈정, 2021)으로, 김정영은 '경아의 딸'(김정은, 2022) 이라는 작품으로 대중에게 얼굴을 알렸다. 그럼에도 박호산은 (연우 무대를 떠나 극단 우인에서 했던 공연) '즐거운 인생', '연극 이', 김정영은 '그들만의 산'을 터닝포인트로 꼽았다.

좀 더 많이 알려져 있는 드라마나 영화로 답변을 할 것을 기대했기에 의외의 답이기도 하다. 박호산은 그 두 공연들의 관객 반응이 뜨거웠고, 이후로 대학로에 얼굴이 알려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정영의 경우 출산 후, 거의 공연을 하지 못했을 때 기회를 얻게 된 작품이었다고 회고했다.

상대방의 행보를 잘 알고 있는 두 배우들이라 서로의 어떤 작품들을 좋아하는지도 궁금했다. 김정영은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박호산은 드라마 '안나'를 언급했다. “'나의 아저씨'의 호산은 청년 같았다. 그런 ‘청년’의 이미지가 너무 좋았다.” 박호산 배우는 “'안나'에서 정영을 오랜만에 봤다. 반갑기도 하고, (분량이 많지는 않았지만) 역시 연기가 탁월하다고 생각했다”라며 감상을 공유했다.

[배우 vs 배우 ③]   ''조연과 주연의 차이..? 51세 동갑내기 배우 박호산과 김정영의 롱런 비결은 아낌없이 박수가 나온다
영화 '경아의 딸', 드라마 '더 글로리'에 출연한 김정영 배우 ⓒ네이버영화, 넷플릭스 

김정영 배우에게 '연기의 원동력'은 마르지 않는'갈증'

‘대학로’라는 같은 공간에서 지내왔던 두 배우가 서로에 대한 질문을 내놓는 이번 ‘배우 vs 배우’ 인터뷰는 더욱 설렜다. 그리고, 역시 이들의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박호산의 (김정영을 향한) 첫 질문은 작품을 하는 ‘원동력’의 원천이다. 다작을 해왔던 김정영 배우에게 알맞은 질문이다.

이에 김정영은 “갈증”이라고 답한다. “연기할 때가 가장 재미있다. 특히 (돈이 필요한) 가정사가 있을 때 드라마가 들어오면 너무 좋다 (일동 웃음). 그렇지만 이 일을 떠나지 못하고 계속하는 이유는 더, 원 없이 하고 싶기 때문이다. 할수록 더 하고 싶다.”

김정영이 박호산에게 던진 첫 질문은 배우로서의 일상이다. 배우 박호산의 하루는 어떨까. 맥주를 크게 한 모금 들이키고 박호산은 “매니저의 브리핑으로 하루를 시작한다”고 말한다. “그날 하는 일이 드라마라고 한다면 현장에서 바뀌는 것들이 많기 때문에 대사에 갇히지 않으려고 한다. 차에서 대본을 보면서 모든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캐릭터에 대한 고민과 모드에 더 집중하는 편이다”라고 덧붙였다.

tvN '슬기로운 감빵생활', SBS '모범 택시2', tvN '나의 아저씨'에 출연한 박호산 배우 ⓒtvN, SBS
tvN '슬기로운 감빵생활', SBS '모범 택시2', tvN '나의 아저씨'에 출연한 박호산 배우 ⓒtvN, SBS

"대본 안 봐(?!)" 박호산 배우의 상상초월 탁월한 답변

비슷한 맥락에서 김정영 배우는 “공연이나 촬영 직전에 어떤 준비과정을 거치는지?” 묻는다. 박호산은 (앞서 언급한 대로) 대본을 되도록 보지 않으려고 하고, 정서적 준비에 치중하는 편이라고 답변했다. 음악을 듣거나, 담배를 피우거나, 그날 캐릭터에 해당하는, 맞는 태도나 성격에 집중하는 편이 더 큰 도움이 된다고 답했다.

“배우라는 직업은 창작자와 관객을 연결해 주는 ‘통로’다. 본인의 예술이 아닌, 남의 예술을 잘 해석해서 관객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배우들이 하는 것이다.”

박호산은 이어 배우 김정영이 했던 작품들 중 가장 행복했던 캐릭터는 어떤 것이었는지 물었다. 김정영은 역시 참여했던 공연 중 하나, '우리 읍내'를 꼽았다.

“당시 연출이 나에게 많은 조언과 칭찬을 해줬다. 뭔가를 보여주면 늘 좋은 커멘트는 해주는 사람이었다.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후두염으로 정작 본 공연 때 목소리가 안 나올 정도였다. 그럼에도 공연 기간 두 달 내내 늘 행복했다.” 당시를 회상하며 말하는 김정영배우의 얼굴에 웃음이 퍼진다.

"3년만 지나도 촌스러워...", 박호산이 생각하는 배우라는 직업의 키포인트

이어 그는 박호산에게 묻는다. “세월이 흘러 어떤 배우로 기억되고 싶은지 (혹은 잊히기를 원하는지.)” 짧은 질문이지만 박호산의 대답은 흥미롭고 문학적이다.

“배우라는 직업은 창작자와 관객을 연결해 주는 통로 같은 것이다. 본인의 예술이 아닌, 남의 예술을 잘 해석해서 관객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배우들이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3년 전 작품만 봐도 연기가 촌스럽게 느껴진다. 배우의 역량 때문이 아니라 관객이 늘 바뀌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는 (관객도 중요하지만) 동료들, 그러니까 작가나 감독,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좋게 기억하는 배우로 남고 싶다.”

배우를 ‘대중과 예술의 매개’로 정의하는 박호산의 배우론이다.

박호산 배우 ⓒ뉴스1
박호산 배우 ⓒ뉴스1

"서러움 느낄 때조차..", 김정영이 뽑은 고마운 한 사람

다음 질문은 박호산이 던진다. “수많은 작품에 참여한 배우 김정영에게 기억에 남는 현장이 있었는지.” 김정영은 망설임 없이 안판석 감독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밀회', '하얀 거탑' 등의 감독)의 현장을 언급한다.

“감독님은 아주 작은 역할을 하는 스탭과 배우의 이름도 다 외우고 불러준다. 사실 드라마 현장에서 연극배우들이 겪는 서러움이나 어려움이 적지 않을 시기였는데 감독님은 그런 위화감을 전혀 느끼지 않도록 세심히 배려를 해줬다. 감독님이 그래서 그런지 현장의 모든 스탭들까지도 상냥하고 친근했다. 서로를 존중하는 분위기를 주도하는 감독이었고, 현장이었다.”

주연과 조연의 처우 차이에 대한 박호산 배우의 단단한 멘탈 관리법

박호산 배우가 (김정영이) 거쳐갔던 캐릭터와 작품에 대한 관심이 컸다면 김정영 배우는 ‘배우’라는 존재의 일상과 태도에 대한 질문들이 주를 이룬다. 김정영의 다음 질문이자 고백은 그런 의미에서 매우 현실적이고 공감이 된다.

“현장에서는 웬만하면 연기에만 집중하고 싶지만 주, 조연의 차이를 너무 극심하게 두는 분위기의 현장에 놓이면 정말 난감하다. 호산은 그런 경우에 어떻게 멘탈을 관리하는가.”

박호산 배우는 답한다. “(주연) 배우 자체의 인격이 나빠서 그런 분위기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결국엔 산업과 시스템이 그런 일종의 상, 하 구조를 만든 것 같다. 이런 상황에 감정적으로만 대응하지 않으면 된다. 물론 그것도 노력이 필요하지만 이젠 그런 (외적인 이슈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

박호산, 김정영, tvN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방영 장면 중 이병헌과 고두심 ⓒ허프포스트코리아, tvN
박호산, 김정영, tvN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방영 장면 중 이병헌과 고두심 ⓒ허프포스트코리아, tvN

박호산 배우와 김정영 배우가 감탄한 또 다른 배우는? '이병헌과 고두심'

두 배우의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여러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제법 많은 양의 맥주가 사라지고, 마지막 질문이 남았다. 박호산 배우의 마지막 질문은 “나왔던 작품들 중에서 해보고 싶었던 역할이 있었는지”다.

김정영은 개인적으로 정치에 관심이 많다며 '퀸 메이커'나 '정직한 후보'에서의 주인공들처럼 정치인 역할이 해보고 싶은 캐릭터라고 답했다. 우아한 말투와는 반대로 날카로운 눈을 가진 김정영 배우에게 과연 잘 어울리는 역할들이다.

김정영이 박호산에게 던지는 마지막 질문 역시 비슷하다. “존경하는 배우가 있는지?” 박호산은 배우의 이름이 아닌 인상 깊었던 캐릭터로 답을 대신했다. “영화 '프라이멀 피어'의 사이코 패스, ‘아론’ 캐릭터 (에드워드 노튼),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의 ‘이동석’ 캐릭터 (이병헌) 그리고 ‘현준희’ 캐릭터 (고두심) 의 연기를 보는 것은 경이로운 경험이었다”고 극찬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인터뷰 중인 김효정 평론가, 박호산 배우, 김정영 배우 ⓒ허프포스트코리아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인터뷰 중인 김효정 평론가, 박호산 배우, 김정영 배우 ⓒ허프포스트코리아

두 시간 넘게 진행된 이번 인터뷰는 김정영, 박호산 배우의 영화 같은 여정을 들여다볼 수 있었던 시간뿐 아니라 대학로 역사의 한 단락, 그리고 그 단락에 존재했던 수많은 공연들을 회고하고 (뒤늦은) 찬사를 보내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말미에 두 배우는 “대학로를 위하여” 건배를 나누고 오랜만의 재회를 축하했다. 정말로 연극 무대를 좋아하는 사람들, 연기를 사랑하는 사람들, 이 두 배우가 있어 관객들은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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