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시대에는 '토큰'이 곧 돈이 된다. AI가 글을 읽고 쓰는 기본 단위인 토큰이 경제의 중심이 된다는 '토크노믹스(토큰 경제)'는 실리콘밸리를 넘어 국내 AI 업계의 화두다.
이는 얼마 전 김성훈 업스테이지 대표가 AI 기업의 성공 전략으로 강조한 개념이기도 하다. 그는 "토큰이 얼마나 많이 소비되게 할 수 있느냐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며 "더 많은 토큰 소비가 곧 성공"이라고 말했다.
업스테이지가 16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 호텔에서 열린 '업스테이지 미디어 데이'에서 '업스테이지 컴퍼니'로의 도약을 선언했다. 왼쪽부터 김성훈 업스테이지 대표이사, 진윤정 CFO, 이건수 AXZ 대표이사, 김대환 타임리 대표이사. ⓒ허프포스트코리아
이 믿음은 업스테이지가 하루 1천만 명이 접속하는 포털 사이트 '다음'을 인수한 결정적 배경이 됐다. 전성기를 지났다는 평가를 받는 다음이지만, 김 대표의 시선에는 매일 1천만 명이 머무는 플랫폼의 '규모' 그 자체로 가치가 있었던 것이다. 그의 눈에 다음은 거대언어모델(LLM) '솔라'의 토큰을 대량으로 소비해 줄 수 있는 보장된 시장이나 마찬가지였다.
우려되는 것은 토크노믹스의 부작용이다. AI의 본래 목적은 사용자의 문제를 가장 빠르고 저렴하게 해결해 주는 것이어야 한다. 하지만 토큰을 소비할수록 이윤이 남는 구조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기업이 토큰 소비의 '효율'보다 소비 규모에 치중하면 1천만 명의 포털 사용자들은 기업의 토큰 소비량을 떠받치는 '캡티브 마켓'으로 전락할 수 있다.
문제는 기업의 이러한 수익 구조가 정부가 강조하는 '모두의 AI'나 '소버린 AI' 육성 기조와 얽혀 있다는 점이다. AI를 학습하고 운영하는 데는 천문학적 자원이 들어간다. 국민의 세금으로 직간접적 지원을 받는 GPU 인프라, 방대한 국민의 일상 데이터, 데이터센터에 투입되는 막대한 비용 등은 모두 사회의 몫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이 막대한 외부 비용을 딛고 파생된 막대한 기업 가치와 토큰 수익은 민간 사기업이 독점하는 수직계열화 구조가 완성되고 있다. 우리는 이미 해외에서 비슷한 씁쓸한 사례들을 목격했다. "인류 전체의 이익을 위한다"며 출발했던 오픈AI는 결국 막대한 수익을 좇는 영리 기업으로 변모했다. 프랑스의 미스트랄도 초기에는 소버린 AI를 강조했지만, AI 규제법에서 오픈소스 예외 조항을 이끌어내며 규제망을 빠져나갔다.
업스테이지 역시 어디까지나 공공성을 좇을 수만은 없는 민간 기업이다. 국가경쟁력을 앞세운 소버린 AI라는 거창한 담론이, 실제로는 기업의 수익 창출을 돕고 규제를 회피하는 방패막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
모두의 AI라는 구호가 공허한 외침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이제는 추상적 지원을 넘어 조건이 명확히 명문화된 공공 계약 설계가 필요하다.
공공의 자원과 인프라 혜택을 받은 기업이 그에 합당한 사회적 책임을 질 수 있게 해야 한다. 일반 사용자들을 위한 AI 토큰 단가 인하를 의무화하고, 거대 플랫폼의 독점을 막기 위해 정보 소외 계층을 위한 'API 접근 할당제'를 도입하는 등 구체적 안전장치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
국민이 떠받친 인프라가 기업의 주머니만 불리는 '토큰 파이프라인'으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토크노믹스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장치를 준비해야 한다. 정부는 AI 기업을 향한 지원 이면에서 합리적 청구서를 내밀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