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일까. 내게는 발견했다 하면 꼭 챙겨 보는 소재의 영화가 있다. 바로 '영화에 대한 영화'다. 정확히는 영화 제작에 대한 영화라고 해야겠다. 기자가 된 이후로 기자가 주인공인 영화들을 찾아보게 됐듯, 영화에 마음을 빼앗긴 이래로 나는 '영화에 대한 영화'들을 늘 곱씹었다. 이는 그 영화들로부터 소재 상의 연결보다 깊은, 어떤 공통된 주제의식이 있다고 느껴서였다. 로맨스 영화가 이별을 등지려 하고 전쟁 영화는 평화를 좇아 달리듯, '영화에 대한 영화'들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외면할 수 없다.
"(그래서) 영화란 무엇인가?"
왜냐하면 사실, 영화에는 실체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어떤' 영화들은 있다. 올해 초 천만 관객을 넘긴 <범죄도시2>가 있고 이정재가 감독한 <헌트>가 있으며 13년 만에 돌아온 <아바타 2>가 있다. 하지만 그것들 혹은 그것들의 총합이 영화의 정의가 되어주지는 못한다. 영화는 그들을 묶어주는 고무줄에 가깝다. 또 예술의 한 분과라고 하는 편이 정확하다. 그럼에도 영화가 있다면. 영화라는 실체가 존재해 카메라에 담을 수 있다면, 그것은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다. 영화는 (아직은) 사람에 의해 만들어지므로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을 찍으면, 그들의 이야기를 만들면 그것이 곧 '영화에 대한 영화'에 가장 근접하다는 말이다. '영화에 대한 영화'로 유명한 <홀리 모터스> <멀홀랜드 드라이브> <지옥이 뭐가 나빠>는 모두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다.
<크레이지 컴페티션>, 무려 3중 액자식 구조?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스 모션 픽처스
그리고 또 한 편의 '영화에 대한 영화'가 도착했다. 페넬로페 크루즈, 안토니오 반데라스, 오스카 마티네즈 등의 스타들이 기용된 <크레이지 컴페티션>은 무려 3중 액자식 구성을 취하고 있지만 그다지 복잡하지는 않다. 결국 중요한 것은 영화를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며 알려졌다시피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영화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다소간의 위험과 거짓,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말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에서 액자식 구성은 중요하다. 특히 3개의 중첩된 액자 중 가장 안쪽의 작은 액자가 중요하다. 이야기의 핵심이 거기에 압축되어 있고 일부는 '계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이렇게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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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노벨문학상 수상 소설의 판권을 사들여 영화를 만들려는 억만장자가 있다. 목표는 영화제 수상, 캐스팅은 당연히 초호화다. 그는 세계 영화제를 휩쓴 감독 룰라 쿠에바스(페넬로페 크루즈)에게 메가폰을 쥐여주고는 티스푼으로 아이스크림을 떠먹으며 묻는다. "그래서, 소설의 줄거리가 뭐요?" 룰라는 '그딴 걸 질문이라고 하냐'는 듯한 표정을 0.8초 정도 짓다가 친히 줄거리를 요약해준다. 소설 『라이벌』은 형제 싸움이다, 모범적인 형과 불안정한 동생이 서로를 떨쳐내려 하지만 둘은 하나의 가지에 매달린 두 쪽의 열매, 하나가 떨어지면 다른 하나도 떨어지는 운명 공동체로...
3중 액자 중 가상의 노벨상 수상작 『라이벌』은 가장 안쪽에 해당한다. 룰라는 이 소설을 각색해 영화 <라이벌>을 만들게 되는데 이것이 중간 액자다. 관객만 보는 <크레이지 컴페티션>이 가장 바깥쪽의 액자다. 제목과 내용으로 볼 때 이 세 액자를 관통하는 주제가 경쟁임은 자명하다.
피 튀기는 경쟁자: 형제, 배우 그리고 영화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스 모션 픽처스
영화와 마찬가지로 경쟁에도 실체가 없다. 다만 경쟁하는 사람들이 있을 뿐. 경쟁자는 누구겠는가. 액자의 가장 안쪽, 『라이벌』의 형제가 가장 먼저다. 바른 생활 사나이인 형 그리고 음주 운전으로 부모님을 죽게 한 동생. 한 여자를 둘러싼 두 사람의 신경전과 육탄전, 그리고 결말. 형제는 처음부터 끝까지 경쟁한다. 경쟁에 화해나 용서는 없다. 승자와 패자만 남을 뿐.
두 번째 경쟁자는 소설 『라이벌』과 영화 <라이벌>을 매개하는 두 배우 이반 토레스(안토니오 반데라스)와 펠릭스 리베로(오스카 마티네즈) 되겠다. 둘은 유명 배우라는 공통점으로 묶여 있지만 연기 스타일과 삶의 방식에서 정반대다. 이반은 할리우드에서도 위세를 떨치는 세계적인 스타다. 펠릭스는 '배우들의 배우'라는 별명을 가진 정통파 메서드 연기자다. 이반은 전 부인만 4명(혹은 5명)이고 펠릭스는 24년째 한 여자와 살고 있으니, 두 사람이 숨만 쉬어도 불편한 것은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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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경쟁자는 바로 완성된 영화 <라이벌>이다. 영화가 어떻게 경쟁자가 되냐고? 무슨 섭섭한 말씀. 많이 보지 않았는가. 특히나 요즘 같은 연말, 각종 영화와 영화인들이 수상자 자리를 놓고 좋던 싫던 서로 경쟁하는 풍경이 펼쳐지니 바로 시상식에서다. 그렇다. 영화도 경쟁한다. 이 영화 <크레이지 컴페티션>의 원제가 <Competencia Oficial>(공식 경쟁 부문)임을 떠올려보자. 또 칸 영화제 상징과도 같은 좌우대칭 월계수의 한쪽이 거꾸로 매달려 덜렁거리고 있는, 코믹한 포스터를 다시 한번 보자. 결국 액자의 가장 안쪽에서 가장 바깥쪽으로 나오며 우리가 확인하게 되는 것은 영화 제작이 경쟁으로 시작해 경쟁으로 끝난다는 결말이다.
경쟁 대신 '제4의 벽' 뚫고 나와 관객 도발하는 룰라
경쟁에 필수 요소는 두 가지다. 나 그리고 너. 대적할 상대방이 없으면 경쟁은 불가능하다. 패배하지 않아서 마음이 놓이는 한편 이길 수 없으니 답답하다. 그렇다면 이런 생각이 든다. 경쟁하지 않고 나의 가치/존재를 증명할 수 있을까? 나는 '나'라고 말할 수 있을까? 여기 이반과 펠릭스의 연기 경쟁을 한 발 떨어져 관찰하며 스스로 고립무원에 위치시키며 이 질문을 되뇌는 인물이 있다. 바로 앞서 언급한 감독 룰라 쿠에바즈다.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스 모션 픽처스
드니 디드로는 '제4의 벽'이라는 개념을 통해 관객과 배우 사이에 넘을 수 없는 가상의 벽이 있다고 주장했다. 대개의 극영화는 그 벽을 존중한다. 그리하여 관객과 배우를, 현실과 가상을 분리한다. 배우는 관객의 존재를 '모르는 척' 진심을 연기하고 관객은 배우들이 안다는 사실을 '모르는 척' 한다. 우리는 작심하고 속아주기로 결심하며 티켓을 끊는다. 혹은 넷플릭스에 카드를 등록한다. <크레이지 컴페티션>에서도 이 암묵적인 합의는 지켜진다. 룰라가 카메라 렌즈 즉 관객의 눈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라이벌』의 줄거리를 설명하기 전까진. 제4의 벽을 뛰어넘어 '나 자신이 누군지 아는 자'임을 선언하기 전까진.
룰라에게 '평범한' 캐릭터 이상의 자의식이 있다는 증거는 영화 곳곳에 등장한다. 분장실에서 이반을 달래는 척 그에게 스킨십을 하다가 거울 속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장면이 가장 대표적이다. 그리고 그 거울을 통해 반사된 룰라의 눈동자는 또 한 번 관객의 눈과 정면으로 마주치니, 이는 일종의 도발이다. 나(배우)는 너(관객)를 쳐다본다. 그것도 거울로. 약오르지? 거울을 통한 시선이 어딘가 불편한 이유는 바로 시차 때문이다. 내가 거울을 통해 나를 보는 시선을 발견했을 때 상대는 이미 나를 보았다. 필연적인 지연과 패배가 거울의 반사에 전제돼 있다. 이를 통해 룰라는 관객보다 우월적인 지위를 획득하며 경쟁하지 않고도 승리를 거둔다.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스 모션 픽처스
영화는 룰라의 마지막 대사 "하지만 어떤 영화는 결코 끝나지 않는지 모른다"와 함께 마무리된다. 그 영화는 숙명의 라이벌 이반과 펠릭스가 각축을 벌이는 <라이벌>도, <크레이지 컴페티션>도 아니다. 그 '어떤 영화'가 무엇인지는 12월 28일부터 극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