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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릉이 빼앗긴 인재' 우리가 운동뚱 김민경의 사격 국가대표 선수 선발에 과몰입할 수밖에 없는 이유

여성을 향한 외모 규범이 가혹한 이 사회에서 운동뚱은 아주 각별하다.

'민경 장군' 운동뚱 김민경 ⓒ운동뚱 
'민경 장군' 운동뚱 김민경 ⓒ운동뚱 

코미디언 김민경이 사격 국가대표 선수로 선발되었다는 소식이 화제입니다. 지난 5월 김민경이 국가대표 선발전을 치르는 모습을 담은 웹 예능 <시켜서 한다! 오늘부터 운동뚱>(이하 운동뚱) 132회는 지난 16일 영상을 공개한 지 하루 만에 유튜브 조회수만 130만을 훌쩍 넘었습니다(17일 오후 기준).

‘국대’ 김민경의 탄생 과정을 담은 <운동뚱> 과거 회차들를 ‘복습’, ‘몰아보기’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김민경이 처음 사격을 배우기 시작한 <운동뚱> 63회는 2021년 6월2일에 공개됐는데요. 해당 영상 아래에 달린 다음 댓글이 ‘성지’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진짜 멋있다…. 나 이 언니가 대회 나가서 금메달 따는 거 죽기 전에 한번쯤 꼭 보고 싶음. 존중하며 버티기 들어갑니다!”

최신 댓글들 역시 국대 선발 소식을 접한 누리꾼들의 축하와 응원으로 가득한데요. “눈물이 난다”는 반응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김민경과 <운동뚱>에 과몰입할 수밖에 없는 이유, 그들의 도전과 성취가 지닌 의미를 되짚어봤습니다.

 

‘체중 낙인’ 부순 ‘민경 유니버스’

시작은 ‘벌칙’이었습니다. <운동뚱>은 2020년 1월 아이에이치큐(IHQ)채널(옛 코미디티브이)의 먹방 예능 프로그램 <맛있는 녀석들> 제작진이 방송 5주년을 맞아서 기획한 스핀오프 프로젝트입니다. 제작진이 시청자들에게 바라는 점을 물었더니, 댓글 1100여 개 가운데 45%가 “운동해서 더 건강해지자”였다고 하죠. 이에 제작진은 <맛있는 녀석들> 출연진 ‘뚱4’(유민상·김준현·김민경·문세윤) 가운데 한 사람 뽑아 <운동뚱>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김민경은 당시 5주년 맞이 기자간담회 현장에서 아령 들기 복불복을 통해 <운동뚱> 출연자가 됐는데요. 김민경은 제작진이 책상에 붙여둔 단 하나의 아령을 선택하고 말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운명이고 다행인 일이지만, 그때는 ‘벌칙 분위기’가 역력했습니다.

결국 해내버린 민경장군 ⓒ운동뚱 
결국 해내버린 민경장군 ⓒ운동뚱 

김민경은 헬스 트레이너 양치승 관장과 함께 <운동뚱>을 시작했는데, 이때 태어나 처음 운동(헬스)을 해본 것이라고 합니다. 1981년생인 그의 나이 마흔을 앞둔 때였죠. 과체중이어도 건강 문제가 전혀 없는, “이 삶도 나쁘지 않은”(운동뚱 1회 중 김민경이 한 말) 상태였지만 “이왕 시작하는 것 열심히 해보겠다”는 거였어요.

이렇게 <운동뚱>은 ‘지속가능한 먹방’과 콘텐츠 확장 목적에서 비롯했지만, 전혀 예상하지 못한 ‘선한 영향력’의 아이콘으로 입소문을 타게 됩니다. 알고보니 ‘근수저’인 김민경의 숨겨진 운동 재능이 속속 드러나면서죠. 사격은 그가 재능을 드러낸 숱한 운동 종목 가운데 하나에 불과합니다. 헬스, 필라테스, 팔씨름, 골프, 축구, 야구, 종합격투기 등등 <운동뚱>에서 김민경을 가르친 모든 선생님의 표정에 경이로움과 감탄이 빠지지 않았습니다. <운동뚱> 팬들은 ‘본인만 몰랐던 운동 천재’ 김민경의 성장 서사에 환호하며 ‘민경 유니버스’라고 이름 붙였죠. 마블 유니버스 같은 슈퍼히어로물을 볼 때 느끼는 쾌감이 가득했어요. “태릉이 빼앗긴 인재”, “기억 잃은 특수 요원”이라는 평가도 어색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재능 발견이 ‘선한 영향력’과 연결되는 이유는, 우리 사회의 ‘체중 낙인’에 균열을 냈기 때문입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비만을 21세기 인류의 공중건강 과제 가운데 하나로 정의했는데요. 사실 연구자들은 비만 그 자체보다, 뚱뚱한 몸을 개인의 통제력·의지력 부족, 게으름, 나쁜 건강, 폭식 등과 연결시키는 사회적 편견을 훨씬 위협적으로 본다고 합니다. 2020년 국제학술지 <네이처 의학>(Nature Medicine)에 36명의 전문가가 각 사회에 뿌리 깊게 박힌 ‘체중 낙인’을 없애야 한다는 공동 선언문까지 실을 정도라고요.

사격 처음 하는 사람이 맞다... ⓒ운동뚱 
사격 처음 하는 사람이 맞다... ⓒ운동뚱 

강석기 과학 칼럼니스트가 <동아사이언스>에 쓴 글을 보면, 학계에서는 ‘개인이 식단과 신체활동 수준을 바꿔서 자신의 몸무게를 쉽게 조절할 수 있다’는 인식을 구시대적 오해로 본대요. 또 건강의 기준이 되는 몸무게를 획일적으로 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날씬한 몸’이 곧 모두에게 건강함을 의미하는 건 아니랍니다. 그러니 날씬한 몸과 건강을 결부시킨 강박적 믿음이나 뚱뚱한 몸에 대한 편견은 정신건강에 해롭기만 하고 비만 해결에 도움이 전혀 안 된다는 거죠.

<운동뚱>은 뚱뚱한 사람은 운동을 잘 못할 거라는 편견을 와장창 부숩니다. 날씬한 몸을 운동 목표로 삼지도 않았습니다. <운동뚱> 1회는 첫 운동 뒤 짜장면을 먹고 “잘 놀고 잘 먹었다”고 상쾌하게 말하는 김민경의 모습으로 끝납니다. 이 표현이 <운동뚱>의 좋은 취지를 보여준다는 시청자 감상 댓글에 많은 분이 ‘좋아요’를 눌렀습니다. “단순히 몸무게나 신체의 모양(에 집착하는 게) 아니라 건강하게 운동하고 먹고 싶은 거 먹는 게 진짜 건강!”

 

“이 여성의 운동은 여성운동이다!”

‘날씬한 몸’을 향한 외모차별주의, 뚱뚱한 몸에 대한 편견과 낙인을 가장 강화하는 기제 중 하나는 바로 미디어입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나의 몸을 포함한 다양한 몸들을 미디어에서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감격 그 자체.. ⓒ운동뚱 
감격 그 자체.. ⓒ운동뚱 

뚱뚱한 몸이 미디어에 등장할 때는 코미디나 예능 프로에서 희화화되는 장면이 많았죠. 특히 뚱뚱한 여성은 마른 여성과 나란히 등장해서 ‘여성스럽지 못한’ 일탈적 존재, 낮은 서열을 차지하는 존재인 듯한 차별적 인식을 강화했는데요. 문제는 이러한 인식이 외모 규범으로 작용해서 연예인, 방송인이 아닌 여성들한테도 실질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겁니다.

한국 여성들이 다른 나라 여성보다 객관적으로는 마른 편인데도 살빼기를 원하는 강도나 날씬한 몸을 이상적인 체형으로 삼는 수위가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는 사실, 알고 계신가요? 사회학자 임인숙·백수경이 2016년 발표한 논문 ‘이상적 체형과 체중 감량 선호에 관한 국제비교연구’인데요. 대한민국 안에서도 남성들이 실제 자신의 객관적인 몸 상태에 따라 체중 감량 여부를 결정하는 것과 달리, 여성들은 ‘이상적 체형’의 영향을 더 강하게 받는 걸로 나타났다고 해요.

연구자들은 국가의 성평등 수준이 이런 결과에 영향을 줬다는 분석도 내놨습니다. “성평등 수준이 낮은 국가일수록 여성의 가치를 외모로 평가하고 사회적 자원과 권력 획득의 기회를 제한하기 때문에” 여성들이 외모 규범에 큰 영향을 받고 불안감을 강하게 느낀다는 겁니다. ‘홈트’를 위한 유튜브 운동 영상을 찾아본 분이라면 다음 같은 불안형 댓글을 곳곳에서 보셨을 겁니다. “이거 하면 OOO(신체 부위) 두꺼워지지는 않나요?”

여성들에게 외모 규범이 한층 가혹한 사회에서 <운동뚱>이 지닌 의미는 각별할 수밖에 없습니다. 싱어송라이터 신승은은 2020년 말 <여성신문> 창간기획에서 대중매체 속 ‘올해의 캐릭터’로 <운동뚱> 김민경을 꼽으며 “이 여성의 운동은 여성운동이다!”라고 평가하기도 했는데요.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주류 미디어는 여전히 ‘이상적 체형’에 대한 이미지를 공고히 하는데 큰 역할을 하잖아요.

김민경은 지난해 <한국방송>(KBS)의 개그 프로 <개승자>에도 출연했는데, 웹 예능 <운동뚱>에서 보여준 ‘바디 포지티브’(몸 긍정주의) 메시지를 찾아보기는 어려웠습니다. 다행히 ‘운동뚱 열풍’의 영향으로 남성 위주 예능판에 <골 때리는 그녀들>(SBS), <언니들이 뛴다-마녀체력 농구부>(JTBC), <씨름의 여왕>(tvN 스토리, ENA) 같은 여성 스포츠 예능 프로들이 새로 생겨나게 됐죠.

 

‘선플’과 함께 성장하다

김민경은 <운동뚱>으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한 뒤 각종 인터뷰에서 ‘댓글’을 자주 언급했습니다. “(댓글 중에) 재미난 것도 많지만 제가 제일 기분 좋게 읽었던 댓글은 ‘언니로 인해 저 용기 내서 운동 시작했어요’ 같은 내용이에요”(2020년 7월 <유 퀴즈 온 더 블럭>), “너무나 감사하게도 저를 응원해주는 댓글이 가득해요. 힘들 때마다 댓글을 일부러 찾아서 봐요. 힐링이 필요해서 그 댓글을 일부러 본다는 분들도 있고요. 서로 치유가 되는 느낌이죠.”(2020년 11월 <아시아투데이>)

 

물론 <운동뚱>이 칭찬만 받은 건 아닙니다. 1회에서 김민경이 운동하며 힘들어하는 장면에 성희롱성 자막을 넣어 시청자들에게 뭇매를 맞기도 했죠. 그래도 이러한 비판은 콘텐츠에 대한 기대와 애정에서 비롯한 겁니다. <운동뚱>에는 웃음과 힐링을 함께 얻는다는 시청자들의 감사와 격려 댓글이 우세합니다. <운동뚱>은 이러한 시청자들의 ‘선플’을 먹고 자랐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운동뚱>은 2020년 한창 인기를 끌던 때보다 조회수·화제성이 떨어진 상태였지만, 이번 사격 국가대표 선발로 다시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김민경 선수는 오는 19일부터 태국에서 열리는 ‘2022 IPSC 핸드건 월드 슛’ 대회에 출전하는데요. 이 대회 도전기는 다음 달 중에 4회에 걸쳐 공개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김민경이 순위권에 들지 못하면 어떻습니까. 그는 이미 우리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듬뿍 선물했는 걸요. 저는 <운동뚱> 아래 다음 댓글이 다음번 ‘성지’가 되는 날을 존중하며 버텨보기로 했습니다. “영화계는 민경 언니를 주인공으로 영화 <스파이> 한국판 만들어줘라. 한국의 멜리사 맥카시로 액션코믹 가능하다 진짜”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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