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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경기 성남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이모 공군 중사 분향소를 찾은 추모객들이 조문하고 있다. 2021.6.8
8일 경기 성남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이모 공군 중사 분향소를 찾은 추모객들이 조문하고 있다. 2021.6.8 ⓒ뉴스1

“솔직하게 말할까요. 성폭력으로 목숨을 끊는 여군들은 주기적으로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새삼스럽게 왜 이번만 이슈가 되는 걸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전직 육군 장교 ㄱ씨에게 성추행 피해 신고 뒤 극단적인 선택을 한 공군 이아무개 중사 사건에 관해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ㄱ씨만이 아니다. <한겨레>가 만난 6명의 전·현직 여성 군인들은 이 중사 사건에서 보인 피해 신고 후 조직적 회유와 부실 수사, 2차 가해와 고립의 과정이 너무나도 익숙하다고 답했다. 언론과의 인터뷰에 응하는 것을 망설이기도 했으나 용기 낸 이유는 하나다. 더는 군의 자정을 믿지 않고, 이번만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업무에선 열외, 높은 분 식사 땐 꽃처럼 취급”

성폭력·성추행 등 성범죄는 낮은 성인지 감수성에서 싹튼다. 집단 내 소수(2020년 기준 전체 7.4%)인 여군은 성인지 감수성이 높지 않은 군 내부에서 옴짝달싹 못 한다. ㄱ씨는 여군이 겪는 성차별에 대해 `모 아니면 도’라고 표현했다. 너무 어렵게 대하거나, 쉽게 대하거나 둘 중 하나라는 것이다. ㄱ씨는 “처음부터 여군을 조심스러워하면서 업무나 회식에서 제외해 소속감을 느끼지 못할 때가 많았다”며 “그러다 보면 열외되기 싫어 적극적으로 나서기도 한다. 그러면 ‘얘는 이런 걸 좋아하나 보네? 이래도 괜찮은가 보네?’라며 바로 선을 넘어버리는 행동과 말을 시작한다”고 말했다.

전직 장교 ㄴ씨는 군의 여군에 대한 인식을 ‘꽃’, ‘데커레이션(장식)’이라고 표현했다. ㄴ씨는 “부대에 흔히 말하는 ‘높으신 분’들이 방문해 식사하면 어린 여군들이 차출된다. 방문이 예정된 날부터 ‘넌 그날 나와서 ○○○ 옆에 앉아라’라는 식이다”라며 “그런 걸 보면서 진급하고 싶은 남군들은 높은 분들이랑 식사해서 부럽다고 말한다”고 씁쓸해했다.

여군 인터뷰 내용.
여군 인터뷰 내용. ⓒ한겨레

신고하는 순간 ‘관심병사’ 낙인에 신상 공유

성폭력이 벌어져도 신고를 꺼리는 이유는 많다. 그중에서도 피해자에게 쏠리는 시선과 ‘사고가 난 관심병사’라며 따라오는 낙인이 가장 큰 장벽이다. <한겨레>가 전·현직 공군 여군 부사관 39명을 상대로 실시한 긴급 설문조사(9~8일 진행)에서도 신고를 꺼리는 이유로 ‘주변의 시선’이 41%로 가장 높았다. ㄱ씨는 “성폭력 사고가 한 번 나면 군인들이 있는 단체 메신저 방에 이름과 사진 등 신상이 돌고 나도 몇 번 본적이 있다”며 “인사 기록에는 남지 않더라도 알 사람들은 다 누가 피해자라는 것을 알게 된다. 군에 있는 이상 꼬리표로 계속 남는 셈”이라고 말했다. ㄴ씨는 성폭력 피해로 선임이 전역한 뒤 수사관이 자신에게 한 말을 떠올렸다. 그는 “이미 부대에는 관련 내용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수사관이 나한테 와서 사건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 ‘너는 그럴 일 없게 하라’고까지 했다”며 “이런 상황에서 내가 피해를 봐도 신고할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

성폭력 예방을 위한 교육과 제도가 내실 있게 운영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왔다. ㄴ씨는 “성평등 교육은 꼬박꼬박 잘한다. 그런데 검증되지 않은 강사가 와서 강연의 집중도를 높이려고 성폭력 상황을 희화화하는 말을 하고, 그걸 듣고 남군들은 ‘와’하면서 깔깔대고 웃는 분위기”라고 밝혔다. 전직 장교 ㄷ씨는 성추행 피해를 본 한 후배가 성고충전문상담관을 믿지 못하겠다며 찾아온 사례를 들려줬다. 상담관에게 남군이 앉아있는 자신에게 공문 작성법을 알려준다면서 뒤에서 포개듯이 안은 피해 경험을 이야기했으나 ‘이 정도는 괜찮지 않냐’는 반문이 돌아왔다고 한다.

매뉴얼과 제도가 있어도 지휘관 등 남성 상급자들의 개인적 인식에 따라 성범죄 사건이 회유·은폐 등으로 흐를 가능성이 크다. 현역 부사관 ㄹ씨는 “지휘관이 관심 있게 사건을 보느냐에 따라 고충처리 방식과 속도가 달라진다”고 말했고, 전직 장교 ㅁ씨는 “여군이 배치되는 순간 지휘 부담이 높아진다며 여군을 부대의 짐으로 취급하는 지휘관도 있으니 성폭력이 발생해도 여군이 군에 폐를 끼치는 존재로 스스로를 자책하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군이 있으면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커지고 본인의 진급을 위한 평가에 불이익을 받는다며 원인과 결과를 뒤바꿔서 생각하는 지휘관이 많다(ㄴ씨)”는 의견도 있었다. 현역 장교 ㅂ씨는 “이 중사 상관의 경우 피해 사실이 밝혀지는 순간 부대는 불명예를 입게 된다는 개인적인 욕심이 더 컸던 것 같다. 결국 지휘관 역할이 제일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여군들이 서로의 용기가 되길”

여군들은 매뉴얼과 제도는 이미 충분하며 이제는 군 스스로 변하기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입을 모았다. 성폭력 사건 등은 군대 내 사법기관에서 담당하지 못하도록 해 가해자를 더 엄격히 처벌해야 한다는 것이 공통된 생각이었다. <한겨레> 긴급 설문조사에서 한 응답자는 “군 내 성폭력 사례는 무수히 많지만 형사처벌의 첫 단계인 수사부터 이뤄지지 않고 가해자의 군생활에 전혀 영향이 없는 징계 수준에서 끝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ㄷ씨는 “군 내부에서 성 관련 사건을 처리하는 시대는 이제 끝난 것 같다. 학연, 지연, 혈연 없는 외부에서 다루는 게 더 깨끗하지 않을까 싶다”라고 말했다.

인터뷰에 응한 여군들은 무엇보다 이번 사건으로 여군이 더욱 위축되거나 고립되지 않을까 걱정하기도 했다. ㄴ씨는 “이중사 사건과 관련해 ‘재수가 없었다’, ‘별것도 아닌데 저 부대 불쌍하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주변에 많다. 안 그래도 차별받는 여군들이 더 고립될까 봐 걱정된다”며 “부디 여군들이 서로의 용기가 될 수 있었으면, 가해자는 처벌받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우연 장예지 장필수 기자 az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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