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청해부대의 작전구역과 병력을 확대하기로 하면서, 조국혁신당 등 범여권 내부에서 거센 반발이 나온다.
국방부는 해적 활동 증가에 따른 선박 보호 조치라고 설명했지만, 외교부는 미국이 요구해온 호르무즈 해협 안정화 기여와도 연관성이 있을 수 있다고 밝혔다.
조국혁신당과 진보당에 이어 시민사회까지 '전쟁 개입 가능성'을 우려하고 나선 가운데, 더불어민주당이 정부 방침에 어떻게 대응할지 주목된다.
5월15일 부산작전기지에서 청해부대 48진(왕건함) 출항 환송식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6일 정치권 움직임을 종합하면, 정부가 전날 차관회의에서 청해부대의 작전구역 확대와 추가 전력 파견을 담은 수정동의안을 의결하면서 범여권 내부의 반발이 본격화하고 있다.
민주당은 이번 조치가 미국-이란 전쟁을 맞아 호르무즈 해협 파병과 무관하다는 입장이지만, 조국혁신당은 사실상의 '우회 파병'이라며 당론으로 반대하고 나섰다. 정부가 오는 10일 국무회의를 거쳐 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할 예정인 만큼, 민주당이 병력 확대의 필요성을 검증하면서 범여권의 이견을 조율할 수 있을지가 관건으로 보인다.
정부는 현재 소말리아 아덴만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청해부대의 작전구역을 오만 남방 외해까지 약 2배 넓힌다는 계획을 내놨다. 병력도 기존 320명에서 395명으로 증원하고, 해상초계기 P-8A 1대와 폭발물처리반(EOD), 무인 기뢰 제거 장비 등을 추가 파견한다. 이번 수정동의안에는 '국제 해상교통로상 항행의 자유 회복 지원'이라는 새로운 임무도 포함됐다.
이에 대해 국방부는 해적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정빛나 국방부 대변인은 전날 브리핑에서 "중동 상황이 장기화하면서 아덴만 일대에 전력 공백이 발생했다"고 말했다.
국방부에 따르면 소말리아 인근 해역의 해적 관련 사건은 지난해 11건에서 올해 36건으로 3배 이상 증가했다. 그러나 공개된 해적 사건 증가 수치만으로 작전구역을 2배 넓히고 초계기와 기뢰 제거 장비까지 추가해야 할 필요성이 충분히 설명됐는지 의문이 제기된다.
특히 추가 파견되는 무인 소해전력과 폭발물처리반은 해상 기뢰를 탐지·제거하는 임무에도 활용할 수 있어 논란의 중심이 됐다. 노정현 진보당 수석대변인도 전날 논평에서 "해적 잡는 목적의 청해부대에 기뢰 제거 장비와 폭발물처리반, 최첨단 대잠 초계기가 도대체 왜 필요하느냐"라고 비판했다.
실제 외교부의 설명에서는 대미 외교에 따른 고려의 흔적이 읽힌다. 외교부 당국자는 전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청해부대 확대가 미국에 호르무즈 해협 안정화를 위한 실질적 기여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에 대해 "그런 차원에서 연관성이 있을 것 같다"고 밝혔다.
조국혁신당은 정부가 해적 대응을 명분으로 사실상의 파병을 추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준형 조국혁신당 원내대표는 4일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에서 "청해부대 작전 지역 확대는 파병이며, 묘수가 아니라 꼼수다"라며 파견 연장 수정동의안에 당론으로 반대하겠다고 밝혔다.
김준형 원내대표는 이튿날 최고위원회의에서도 "해적을 막으라고 보낸 부대를 전쟁의 바다로 보낼 수는 없다"며 "이란이 적대 행위로 보는 순간 우리는 전쟁의 당사자가 된다"고 경고했다. 정부가 비전투 임무라고 설명하더라도, 이란이 한국군의 활동을 적대 행위로 받아들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진보당의 반발도 이어지고 있다. 윤종오 진보당 원내대표 등 소속 의원 4명은 전날 기자회견에서 정부의 결정을 우회 파병으로 규정하고 전면 철회를 촉구했다. 또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의 경질까지 요구하며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을 비판했다.
홍성규 진보당 대변인은 이날 별도 논평에서 "전쟁을 끝내자는 목소리가 나오는 마당에 우리 국회가 파병안을 논의할 수는 없다. 미국이 끝내려는 전쟁을 한국이 이어서 수행할 수는 없는 일이다"라며 청해부대 확대 방침의 철회를 거듭 촉구했다.
참여연대가 참여한 시민단체 '미국침략전쟁중단 한국군파병반대 긴급행동'도 전날 공동성명에서 "정부는 이러한 시민사회의 우려를 외면·무시할 것이 아니라 청해부대 작전범위 확대 및 추가 전력 파견을 전면 철회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반면 민주당은 정부 방침을 옹호하고 있다. 전은수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전날 정책조정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임무 구역이 호르무즈까지 가지 않는다"며 "이게 호르무즈 우회 파병이라고 비판하시는 것 같은데 그런 것이 절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다만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사안인 만큼 향후 관련 논의가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3일(현지시각) 이란 테헤란 중심부에서 작업자들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부터)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JD 밴스 미국 부통령을 부상당하고 옷이 찢어진 모습으로 묘사한 대형 광고판을 설치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한편 정부가 군사적 역할을 확대하려는 시점도 주목된다. 미국 공화당은 3일(현지시각) 치러진 중간선거에서 상·하원 다수당 지위를 모두 민주당에 내주는 참패를 당했다.
미국 유권자들이 이란 전쟁을 주도한 트럼프 행정부에 사실상 심판을 내렸다는 평가가 나오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미국의 호르무즈 해협 안정화 요구에 부응해 군사적 기여를 확대하는 것이 적절한지 의문이 제기된다.
특히 민주당이 미 의회 양원을 장악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안보 정책에 대한 견제도 강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이번 결정의 외교적 실익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란의 반응도 변수다. 에스마일 바가이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9월7일(현지시각) 엑스(X, 옛 트위터)에 한국어 입장문을 올려 다른 국가의 페르시아만과 호르무즈 해협 군사작전 참여 가능성을 두고 "침략 행위의 당사자를 직접적으로 지지하는 것으로 간주될 수밖에 없으며,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라고 경고한 바 있다.
이번 확대 결정에 대한 이란의 새로운 공식 반응은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지난 9월 한국의 군사적 참여 가능성에 강경한 경고를 보냈던 만큼, 이번 조치를 미국에 대한 군사적 지원으로 받아들여 양국 간 외교적 마찰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국회 의결에 필요한 의석수만 놓고 보면 민주당은 다른 정당의 협조 없이도 수정동의안을 처리할 수 있다. 현재 국회 국방위원회 위원 17명 가운데 민주당 소속은 위원장인 진성준 의원을 포함해 9명으로 과반이다. 국회 전체 의석에서도 민주당이 과반을 확보하고 있다. 수정동의안은 국방위 심사를 거쳐 본회의에서 재적 의원 과반 출석과 출석 의원 과반 찬성으로 의결된다.
문제는 의결 이후의 정치적 파장이다.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은 최근 '내년 1월 합당론'을 둘러싸고도 갈등을 빚어왔다. 조국혁신당은 민주당이 충분한 사전 협의 없이 통합을 거론하고 있다며 양당 간 신뢰 회복과 상호 존중을 요구하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민주당이 이번에도 의석수 우위를 앞세워 정부 방침을 관철한다면, 이미 불거진 소통 부족과 일방적 의사결정에 대한 비판이 더욱 거세질 가능성이 크다.
범여권 연대와 통합을 추진해야 하는 민주당으로서는 또 다른 갈등을 자초할 수 있는 셈이다. 민주당이 국회 통과를 위한 표 계산에만 머무르지 않고, 조국혁신당을 비롯한 범여권의 반대 목소리를 얼마나 수용하고 조율할 정치적 수완을 발휘할지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