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여당이 지역에 첨단기업을 유치하기 위한 '초광역특구법', 이른바 '메가특구특별법'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수도권 집중을 완화하고 지역에 새로운 성장 기반을 만들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법안에 포함된 '주 52시간 노동시간 상한 예외' 등 특례를 두고 사회적 갈등이 커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정부와 양대 노총이 참여하는 '초광역특구법 관련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가 9월 시작됐다. 여섯 차례 실무협의를 거쳐 11월2일 첫 차관급 운영협의체에서 앞으로 집중적으로 논의할 의제와 순서를 확정했다. 제7차 실무협의체는 6일 진행된다. 핵심 쟁점에 대한 본격적인 협상은 이제 시작하는 단계다.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 후보이던 2025년 4월30일 서울 구로구의 한 스튜디오에서 열린 '슬기로운 퇴근생활' 직장인 간담회에서 직장인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 연합뉴스
그런데 그 와중에 더불어민주당은 노동특례를 담은 초광역특구법안을 10월20일 발의했다. 박상혁 의원이 대표발의한 법안(지방 주도형 초광역특구 특별법)에는 근로소득 상위 3%인 관리자·전문가 등에 대해 노동시간 상한과 휴게·휴일 규정을 달리 적용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른바 '화이트칼라 이그젬션'이다.
법안에는 기간제 노동자 사용기간을 현행 2년에서 최대 4년으로 늘리고 선택적 근로시간제 정산기간을 최대 6개월로 확대하는 내용도 담겼다. 외국인투자기업에는 파견 대상 업무와 기간을 확대하는 특례를 허용한다. 애초 강조되던 고소득 연구개발직의 집중근무 필요성을 넘어, 훨씬 광범위한 규제 완화 내용이 법안에 들어간 것이다.
다만 민주당은 주요 노동특례를 제외한 법안도 함께 발의(최기상 의원)했다. 두 법안을 병행 논의해 최종안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노동계는 본격적인 쟁점 협상을 시작하기도 전에 정부여당이 노동규제 완화를 담은 법안을 제시한 데 대해 강력하게 반발했다. 한국노총은 "협의도 끝나지 않은 노동 특례 입법을 추진하는 건 사회적 대화를 요식행위로 전락시키는 처사다"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 재계와 노동계의 주장
문제는 이재명 대통령과 민주당이 주 52시간 노동시간 상한을 푸는 것이 메가특구에 꼭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설득력 있는 답변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대통령은 민주당 대표 시절인 2025년 2월 반도체특별법 토론회에서 고소득 연구개발자가 동의한다면 특정 시기에 집중해서 일할 수 있도록 허용하자는 주장에 공감을 나타냈다. 그는 당시 "기업이 살아야 나라 경제가 산다. 총 노동시간을 늘리지 않으면서 한쪽으로 좀 몰아서 일하게 해 달라는데 '안 된다' 이렇게 하기가 너무 어렵다"라고 말했다. 이는 당시 대선을 앞두고 재계의 요구를 듣던 상황에서 나온 발언으로 이해된다.
특례 입법을 요구하는 경제6단체 등 재계의 논리는 두 단계로 요약된다. 즉 △첨단산업은 개발 일정이 몰리는 시기에 핵심 연구인력이 집중해서 일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돼야 하고 △그런 여건을 지방 특구에서 보장해야 기업이 연구개발 기능을 지방에 둘 유인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같은 논리를 무색하게 하는 조사 결과가 최근 나왔다. 민주당 박해철 의원이 9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로부터 받은 서면 답변 자료에 따르면, 정작 특구의 핵심 주체인 두 기업은 노동시간 상한 규제 완화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에 따르면 두 기업은 '현행 노동시간 제도 한계로 인해 기술 개발에 실패하거나 심각한 경영상 손실을 입은 사례가 있느냐'는 질문에 모두 "업무량이 급증하는 구간에서는 현행법 테두리 내에 있는 '특별연장근로'를 활용해 무리 없이 대응하고 있다"고 답했다.
특별연장근로는 재난, 설비 고장, 업무량 폭증, 국가적 연구개발 등 불가피하고 특별한 사정이 발생했을 때 고용노동부 장관의 인가와 노동자의 동의를 받아 주 52시간 한도를 초과해 추가로 연장노동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제도다. 정부는 2025년 3월 반도체 연구개발 분야를 대상으로 특별연장근로 1회 인가 기간을 기존 3개월에서 6개월로 연장하는 지침을 시행하기도 했다.
기간제 사용기간 연장에 대한 두 기업의 반응도 적극적이지 않았다. 삼성전자는 기간제 노동자가 극소수여서 해당 사안에 입장이 없다고 했고, 연구개발 인력 파견 활용 의향도 없다고 답했다. SK하이닉스는 전체 인력 중 기간제 비율이 0.5% 미만, 연구개발 인력 중에서는 0.1% 미만이라며 현재로서는 판단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를 두고 박해철 의원은 "첨단산업 경쟁력 확보를 위해 기간제와 파견을 늘려야 한다는 정·재계의 논리가 실제 기업 현장과는 철저히 괴리돼 있음이 입증된 것이다"라면서 "메가특구 노동규제 특례는 정작 개별 기업의 요구는 크지 않은데 경제단체들이 이때다 싶어 주장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노동계는 특구에서 시작한 예외가 다른 지역과 업종으로 확대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지역들이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경쟁하는 상황에서, 한 지역에 노동규제 완화를 허용하면 다른 지역도 같은 혜택을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과정을 거쳐 주 52시간 노동시간 상한 규제를 형해화하고 근본적으로 철폐하려는 것이 재계의 의도라고 본다.
화이트칼라 이그젬션과 관련해 연구개발 부문과 생산 현장의 관계도 따져봐야 한다. 핵심 연구인력이 더 오래 일하면 시험·검증과 생산, 협력업체 업무에도 추가 노동이 발생할 수 있다. 노동시간 특례가 연관 업무의 노동시간 증가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과 정부·여당이 이런 우려를 해소할 근거를 충분히 제시하지 않은 채 특례 입법을 추진한다면, 재계의 요구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는 의심을 피하기 어렵다.
◆ 이재명 대통령에게 묻는다
이재명 대통령은 당선 전부터 노동시간 단축을 강조했다. 당선 이후에는 '주 4.5일 근무제 추진'을 국정과제에 담았다.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근로기준법 적용 확대와 포괄임금제 개선 역시 약속해 온 노동개혁 과제다.
대선후보 시절인 2025년 4월 열린 직장인 간담회에서도 "절대 노동시간을 줄여야 한다"며 "노동시간이 길다고 생산성이 높은 시대는 지나갔다"고 말한 바 있다. 기술 발전과 생산성 향상의 성과가 노동자의 삶을 개선하는 데 쓰여야 한다는 철학으로 읽힌다.
그런데 지금 정부 노동정책 논쟁의 중심에는 '주 52시간 예외'가 놓여 있다. 과거 이 대통령의 노동철학에 기반한 과제들은 이 이슈의 파괴력에 묻혀 존재감이 사라졌다.
이 대통령은 지금 추진되는 규제 완화 특례가 자신의 노동철학과 모순되지 않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철학이 바뀌었다면 왜 바뀌었는지 국민에게 설명해야 한다. 철학이 바뀌지 않았고 지금의 행보가 그 철학과 모순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그 이유를 국민에게 알려야 한다. 지금 국민이 묻는 것은 원칙을 바꿀 만큼 '주 52시간 예외'가 필요한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