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간선거 결과가 국내 증시에 미치는 영향이 심상치 않다. 이번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압승하는 이른바 ‘블루웨이브’에 따라 유가증권시장(코스피)을 떠받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가 이틀 연속 가파른 하락세를 피하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거품(버블)론’을 비롯해 다양한 우려에 직면했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지만 이번 충격은 미국의 정치 지형 변화가 AI 산업 투자와 규제 환경에 미칠 영향에서 비롯됐다는 점에서 새로운 변수로 꼽힌다. 민주당 중심으로 재편된 미국 의회 등에서 AI 산업에 관한 감독을 강화하고 데이터센터 투자에 제동을 걸 수 있다는 우려가 반도체 투자심리를 위축시키고 있는 것이다.
다만 미국과 중국의 AI 패권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미국이 AI 인프라 투자에 제동을 걸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도 나온다. 중국이 국가 차원의 지원을 앞세워 반도체와 AI 산업 육성에 속도를 내는 만큼 미국 역시 기술 주도권을 지키기 위해 투자를 이어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메모리반도체 가격 상승과 공급부족에 힘입어 역대급 실적을 예고하고 있다. AI 투자에 관한 시장의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서도 두 기업의 실적 전망은 오히려 상향되고 있어 단기 주가 변동과 별개로 기업가치를 뒷받침하는 경쟁력은 견고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 중간선거 결과가 민주당의 압승으로 끝난 가운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가 이틀 연속 약세를 면치 못했다. ⓒ허프포스트코리아
6일 미국 뉴욕증시를 보면 전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가 변동 요인으로 꼽히는 중간선거 결과에 따른 AI 규제 우려가 강하게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5일(현지시각) 뉴욕증시에서 나스닥종합지수는 직전 거래일보다 5.5% 급락한 2만4315에 거래를 마쳤다. 특히 인공지능(AI) 관련주들의 낙폭이 크게 나타났다. 엔비디아와 브로드컴은 각각 9%, 오라클은 7% 하락했다. 이날 기술주들의 하락 폭은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유안타증권은 이날 미국 주식시장 마감 시황 보고서에서 “S&P500 시가총액은 하루 만에 2조9천억 달러(약 4천조 원)가 증발했다”며 “민주당의 중간선거 압승 이후 AI 인프라 구축 속도 둔화 전망이 투자 심리를 압박했다”고 분석했다.
전날 각각 7%와 9% 넘게 급락했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는 이날도 약세를 이어갔다.
이날 삼성전자 주식은 1만2800원(6.35%) 내린 18만8700원, SK하이닉스 주식은 13만2천 원(10.44%) 하락한 113만2천 원에 거래를 마쳤다. 종가 기준 삼성전자 주식은 4월7일 이후 7개월여 만에 처음으로 10만 원대로 추락했다. SK하이닉스 주식도 4월20일 이후 다시 120만 원 밑으로 내려앉았다.
미국 중간선거에서 상·하원, 주지사까지 민주당이 압승하면서 AI 관련 규제가 강화해 투자 속도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민주당 중심 의회가 AI 기업 감독권을 강화하고 데이터센터 인프라 비용이 늘어나 기업 부담으로 돌아갈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상·하원 모두에서 다수당이 되면서 청문회 개최, 소환장 발부 및 조사 등을 통해 행정부와 기업에 관한 감독을 주도할 수 있고 각각의 위원회에서 의제도 설정할 수 있게 됐다.
당장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최종 입법에는 제약이 존재하지만 자본시장은 차기 대선 이후의 불확실성까지 내다보고 있는 것이다. 민주당은 데이터센터 투자에 적용되는 ‘100% 보너스 감가상각 혜택’을 축소하고 AI 초과이익에 세금을 부과하는 등의 법안을 6건 제안한 상황이다.
특히 데이터센터 승인 및 운영 요건은 주정부의 규제에 영향을 크게 받는데 데이터센터가 대규모로 분포된 공화당 우세지역에서도 민주당 후보가 당선된 데 적지 않을 영향을 받을 것으로 점쳐진다. 대표적으로 미국 신규 데이터센터 건설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텍사스에서조차 관련 규제 강화를 공약으로 내세운 민주당 주지사가 이번 선거에서 승리했다.
다만 미국 중간선거 결과에 따른 AI 규제 우려에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가 하락 폭은 과도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 중간선거 결과에 따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민주당 중심으로 미국에서 AI 규제가 강화되면 결과적으로 메모리반도체 수요가 감소할 것이라는 우려에 직면해 있다.
그러나 미국과 중국 사이의 AI 패권경쟁이 가속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에 어떤 권력이 들어서더라도 AI 데이터센터를 향한 규제를 적극적으로 실행에 옮기기에는 부담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중국이 전폭적으로 AI 산업을 지원하는 점을 고려하면 미국에서도 AI 관련 투자를 일정 수준 이상으로 제한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3일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NDRC)는 15차 5개년 계획으로 핵심산업에 관한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하면서 반도체, AI, 항공우주를 신흥 핵심산업으로 육성하겠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로는 이 분야의 생산 규모를 2030년까지 10조 위안(약 2천조 원)까지 확보하겠다는 공격적 목표다.
반도체 분석기업 세미애널리시스에 따르면 올해 말 기준 중국 데이터센터 가동 용량은 24GW(기가와트)인 데다 추가로 50GW 규모는 현재 건설되거나 계획이 추진되고 있다. 미국의 데이터센터 용량이 56GW라는 점을 고려하면 앞으로 두 나라 사이 규모의 경쟁이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김록호 하나증권 연구원은 이날 반도체산업 분석보고서에서 “(미국 중간선거 결과에도) 현재 이미 건설되고 있거나 허가가 완료된 데이터센터 관련해서는 변수가 제한적일 것”이라며 “글로벌 AI 기술경쟁이 국가 안보 및 경제 패권과 직결되어 있어 데이터센터를 향한 근본적 제한 가능성은 낮다고 판단한다”고 바라봤다.
당장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폭발적 메모리반도체 수요에 힘입어 역대급 실적도 거두고 있다. 실적에서 확인할 수 있는 두 기업의 기업가치와 비교하면 시장에서 제기되는 우려 역시 과도하다는 평가가 지속되고 있다.
전날 시장조사기관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3분기 글로벌 D램 시장 매출은 1년 전보다 369% 증가한 2천억 달러(약 268조 원), 역대 최대 규모로 집계됐다.
반도체 산업 특성상 공급량이 크게 늘지 못하는 상황에서 수요 증가에 따른 가격 상승이 시장 규모를 크게 키우는 것이다. 3분기 D램 출하량은 4% 증가했지만 평균판매가격(ASP)이 전체 매출 상승을 주도했다.
또 삼성전자는 점유율 38%로 1위를 지켰고 SK하이닉스도 전분기보다 3%포인트 늘어난 점유율 29%로 2위에 올랐다. 2027년에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이런 흐름을 이어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는 “장기공급계약(LTA)이 가격을 지지하고 있고 신규 대형 반도체 팹이 2028년에야 가동을 시작하는 만큼 공급부족도 계속될 것”이라며 “LTA 조건 차이로 기업별 단기 실적은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동일한 상승 추세를 따라갈 것으로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4분기 영업이익 전망치는 삼성전자가 128조5280억 원, SK하이닉스가 102조9770억 원으로 집계됐다. 두 기업의 올해 4분기 합산 영업이익이 지난해 국내 코스피 상장 기업 전체 연간 영업이익(약 244조 원) 수준으로 전망된 것이다. 2027년 영업이익 전망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합쳐 1050조 원에 이른다.
김동원 KB증권 연구원은 4일 반도체산업 분석보고서에서 “현재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메모리 재고가 10일 치 미만인 상태에서 내년 고대역폭메모리(HBM) 생산 비중 확대는 범용 메모리의 공급 절벽을 유발할 것”이라며 “현재 반도체 주가를 좌우하는 AI 관련 우려를 넘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기업가치에 시선을 둬야 할 시점이다”고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