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상·하원을 모두 장악하면서 한화그룹과 HD현대그룹 등 국내 조선업계가 기대해 온 한미 조선협력 프로젝트 ‘마스가(MASGA)’에도 변화가 생길지 관심이 쏠린다.
반도체와 배터리, 자동차 등 다른 주요 산업이 미국의 보조금과 관세 정책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온 것과 달리 조선업은 트럼프 행정부의 우호적 태도에 힘입어 미국 시장 진출의 새로운 기회를 맞을 것으로 기대돼 왔다. 그러나 이번 선거로 의회 구도가 뒤집히면서 한국 조선사들이 구상해 온 사업 전략에도 새로운 변수가 등장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미국 해군 함정의 국내 조선소 건조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다는 점이 부담으로 지적된다. 해외 조선소 활용을 추진해 온 트럼프 행정부와 자국 조선업 보호를 우선시하는 민주당 사이에 이견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한화그룹과 HD현대그룹이 미국 현지 생산거점 확보에 속도를 내고 있다는 점은 다른 가능성을 보여준다. 미국 내 생산능력 확충과 일자리 창출이라는 공통의 정책 목표를 공화당과 민주당이 공유하고 있는 만큼 바뀐 의회 구도 속에서도 한미 조선협력이 이어져 온 만큼 사업의 연속성을 확보할 여지가 있다는 말이 나온다.
한화그룹과 HD현대그룹 등 국내 조선업계가 민주당이 압승한 미국 중간선거 결과에 따라 한미 조선협력 프로젝트 '마스가(MASGA)'에서 어떤 변화를 맞이할 것인지 주목된다. 사진은 한화그룹의 한화필리조선소 전경. ⓒ한화
5일 조선업계 안팎에 따르면 미국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상원과 하원을 모두 장악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강하게 추진해 온 마스가에도 정책적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번 선거는 민주당이 예상만큼이나 큰 승리를 거뒀다는 점에서 의미가 적지 않다. 공화당이 기존에 확보했던 상·하원 다수당 지위를 모두 내주면서 트럼프 행정부의 국정 운영에도 상당한 제약이 뒤따를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 추진력을 뒷받침하던 의회 권력이 야당으로 넘어갔다는 점에서 향후 미국의 산업·통상 정책에도 변화가 나타날 가능성이 농후하다.
국내 조선업계가 이번 선거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는 마스가가 트럼프 행정부의 적극적 지원 아래 추진돼 왔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조선업 재건을 위한 한국 기업과의 협력을 여러 차례 공개적으로 강조해 왔다. 반도체나 배터리, 자동차 등 다른 산업군에서는 보조금과 관세라는 당근과 채찍을 동시에 사용한 것과 비교해 조선업에는 강한 신뢰를 보여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이재명 대통령과 정상회담에서 한국 조선업을 언급하며 미국 조선업 재건에 협력하겠다는 뜻을 내놨다. 이어 한화그룹이 인수한 한화필리조선소를 두고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 조선소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지난해 12월에는 미국 해군의 신형 호위함 건조와 관련해 한화그룹과 협력하게 될 것이라고 직접 언급했다. 한화그룹의 한화필리조선소 투자 결정을 거론하며 좋은 기업이라고 평가하는 등 한국 조선사에 대한 신뢰를 공개적으로 나타냈다.
다만 이번 선거로 의회 권력 구도가 달라지면서 국내 조선사들이 기대해 온 사업 기회에는 변수가 생겼다는 평가가 나온다. 직접적 수혜가 기대됐던 미국 해군 함정의 국내 조선소 건조 가능성이 대표적이다.
미국은 법을 통해 자국 해군 함정의 해외 건조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이에 트럼프 행정부는 대통령각서로 미국의 부족한 조선 역량을 보완하기 위해 한국 등 동맹국 조선소를 활용하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민주당을 중심으로 의회에서는 자국 조선업과 일자리를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민주당 소속 재러드 골든 하원의원이 주도해 하원을 통과한 2027회계연도 국방수권법안(NDAA)에는 해외 조선소에서 건조하는 미 해군 전투함의 조달 계약에 국방 예산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반면 상원 군사위원회가 마련한 법안에는 트럼프 행정부의 방침과 동일하게 동맹국 조선소에서 벌크 연료선과 전략 수송선 등 비전투 지원함을 최대 2척까지 조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해외 건조를 둘러싸고 상·하원의 방향이 다른 셈인데 비우호적 의견을 지닌 민주당이 상·하원을 모두 장악하면서 국내 조선업계로서는 불확실성이 커진 것이다.
다만 하원에서 통과된 국방수권법안에는 미국의 조선 역량과 인력 양성을 위해 한국과 협력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는 법적 구속력이 있는 조항이 아니지만 민주당도 한미 조선협력의 필요성을 공식적으로 인정한다는 의미가 있다. 결국 연말 국방수권법안 통과와 관련해 상·하원 조율 과정에서 해외 건조 허용 범위가 어떻게 정리되는지가 한국 조선업계의 주요 변수로 남게 됐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는 이날 발간한 ‘2026 미국 중간선거 결과 및 시사점’ 보고서에서 중간선거 이후 ‘레임덕 회기’ 주요 미처리 입법현안으로 국방수권법안을 꼽으며 “국방수권법안은 함정 건조와 방산 조달 등 주요 조항의 양원 사이 조정이 필요하다”며 “기존 제도를 준수하면서 후속 입법·규제 변화에 맞춰 (국내 기업들의) 단계별 대응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10월22일(현지시각) 미국 휴스턴에서 HD현대그룹 및 미국 최대 건설·엔지니어링·인프라기업 키윗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조선 합작법인 설립'을 위한 계약 체결식이 열린 모습. ⓒHD현대
그러나 한화그룹과 HD현대그룹을 중심으로 드라이브가 걸린 미국 현지 생산거점 확보 전략을 통해 마스가의 추진 동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시각도 나온다. 미국 조선업의 생산능력을 회복하고 자국 내 일자리를 늘리는 일은 공화당과 민주당 사이 이해관계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사안이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에서 선박을 건조하고 인력을 양성하는 사업은 민주당도 뜻을 함께하는 부분이다.
과거 민주당의 조 바이든 대통령 시절인 2024년 카를로스 델 토로 해군 장관은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의 조선소를 방문해 미국과 한국 사이 조선업 협력확대 방안을 모색했다. 이후 같은 해 한화그룹이 한화필리조선소 인수를 결정하자 환영한다는 입장을 나타내기도 했다.
국내 조선업계에서는 한화그룹과 HD현대그룹을 중심으로 미국에 조선소를 직접 갖추는 전략이 진행되고 있다. 이는 의회 권력이 바뀌는 데 따른 정책의 불확실성을 극복하게 하는 무기로 평가된다.
한화그룹은 한화필리조선소를 확보한 데 이어 50억 달러 규모의 시설투자 계획을 발표하며 미국 내 생산능력 확대에 속도를 높인다. 여기에 호주 조선업체 오스탈의 미국 조선소(오스탈USA) 인수도 추진하면서 현지 사업 기반을 지속해서 확장하고 있다.
HD현대그룹 역시 미국 건설·엔지니어링 기업 키윗과 합작법인을 설립해 신규 조선소를 건립하고 2029년 가동을 목표로 한다. 미국 최대 건설사 가운데 하나인 키윗과 협력하는 점은 권력구조 변동 속에서도 현지 사업의 안정성을 높여주는 부분이다.
한화그룹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미국 자회사인 한화디펜스USA를 통해 지난달 29일 한화필리조선소가 건조할 미국 해군 중형상륙함(LSM) 1척 건조계약을 따내기도 했다. 한화필리조선소 인수 뒤 처음으로 미 해군 함정 건조사업을 수주한 것이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에서 추진하는 해외 함정 건조(핀란드) 모델과 별개의 프로젝트로 미국 조선소를 활용해 실제 수주성과를 쌓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중간선거 결과에 따른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요소로 평가된다.
강경태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2일 조선산업 분석보고서에서 “한화그룹은 필리조선소 인수를 통해 민주당 의회가 강조하는 ‘자국 노동자 보호 정책’ 기조에 부응하고 있으며 HD현대그룹도 현지 기업과 합작 파트너십을 통해 조선소를 구축하는 방식으로 시장에 대응하고 있다”며 “이런 현지화 전략은 중간선거 결과나 의회 지형 변화와 무관하게 미국 군함 사업의 지속성과 안정성을 보장하는 방어막으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내다봤다.
조선업계 한 관계자는 “미국 의회가 향후 법안 세부 내용을 어떻게 결정해 나갈지 예의주시해야 할 것”이라면서도 “미국 조선업 재건에 한국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놓고는 민주당에서도 이견이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한미 조선협력은 중간선거 결과에 따른 영향이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