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환주 KB국민은행장이 지난해 1월 취임식에서 한 말이다. 이 행장의 첫 임기가 두 달도 남지 않은 11월4일, 이 행장의 취임 전에 판매된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의 불완전판매 과징금이 확정됐다. '신뢰'를 저버린 은행권 과징금의 절반 가까이는 바로 국민은행의 몫이었다.
특기할 만한 점은 가장 큰 과징금을 물게 된 국민은행에서는 정작 제재가 확정된 4분기에 이익이 늘어날 여지가 생겼다는 것이다. 과징금에 대비해 앞서 비용으로 잡은 충당부채 가운데 일부를 되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순이익 1위 은행을 뜻하는 ‘리딩뱅크’를 놓고 경쟁하는 신한은행은 과징금 부담이 줄어드는 효과를 이미 상반기 실적에 일부 반영했다. 올해 3분기까지 신한은행에 누적 순이익 기준으로 1074억 원 뒤져있던 국민은행으로서는, 4분기 충당부채 환입으로 격차를 만회할 기회가 생긴 셈이다.
국민은행은 이 행장 취임 첫해인 지난해 리딩뱅크를 되찾았다. 하지만 올해 이 행장이 연임 심사 전 마지막으로 받아든 3분기 성적표는 '2등'이었다. 이 행장의 연임 심사가 이뤄지는 연말에는 경쟁의 최종 결과를 담은 성적표가 아직 나오지 않는다.
이환주 국민은행장이 2026년 리딩뱅크 경쟁에서 '충당금 환입'이라는 긍정적 변수를 손에 넣었다. ⓒ 그래픽 허프포스트코리아
◆ 은행권 과징금의 47.6%가 국민은행 몫, 4분기에는 앞서 반영한 비용 되돌릴 여지
6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민은행은 금융위원회 정례회의에서 확정된 은행권 홍콩ELS 불완전판매 과징금 3619억6천만 원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1723억3400만 원의 과징금을 내야 하지만, 4분기 손익에는 오히려 개선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제재와 관련해 국내 은행들은 제재가 확정되기 전에 지급할 것으로 예상하는 금액을 충당부채로 잡고 그만큼을 비용으로 반영해 놓았다. 최종 부담액이 예상보다 적으면 초과 반영한 비용을 환입해 해당 분기 이익이 늘어난다.
국민은행의 반기 연결재무제표 주석에 따르면 6월 말 기타충당부채 가운데 ELS 과징금 등과 관련한 금액은 3608억9400만 원이었다. 다만 KB금융그룹의 반기 연결재무제표 주석은 같은 금액을 설명하면서 주택담보대출비율(LTV) 관련 과징금도 함께 언급한 만큼, 공시 금액과 이번 제재액의 차이를 그대로 홍콩 ELS 환입액으로 잡기는 어렵다.
KB금융은 지난 7월 상반기 실적발표에서 금융당국의 최종 결정을 확인한 뒤 환입 여부와 규모를 판단하겠다며 2분기에는 환입분을 반영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과징금이 확정된 뒤 증권가에서는 KB금융의 4분기 충당부채 환입 규모가 약 1900억 원에 이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 국민은행 3분기에 신한과 격차 1257억 원 좁혔다, 남은 차이는 1074억 원
두 은행의 분기 실적을 살펴보면 이미 ELS 과징금 부담을 반영한 시점의 차이가 드러나 있다.
국민은행은 올해 1분기 과징금에 대비해 충당부채 976억 원을 추가로 쌓았다. 당시 순이익은 1조1010억 원으로 신한은행(1조1571억 원), 하나은행(1조1042억 원)에 이어 3위였다. 반면 신한은행은 예상 과징금이 낮아지자 2분기에 기존 충당부채 가운데 837억 원을 환입했다. 이 금액은 이미 신한은행의 상반기 실적에 반영됐다.
상반기까지 누적 순이익은 신한은행이 국민은행보다 2331억 원 많았다. 3분기에는 국민은행이 1조3509억 원, 신한은행이 1조2252억 원의 순이익을 냈다. 국민은행이 한 분기에 1257억 원을 더 벌면서 두 은행의 누적 격차는 절반 아래로 줄었다.
9월 말 누적 순이익은 신한은행 3조6837억 원, 국민은행 3조5763억 원이다. 국민은행이 4분기에 신한은행보다 1074억 원 넘게 더 벌면 두 은행의 연간 순위가 바뀐다. 금융권에서는 4분기에 국민은행 약 1900억 원, 신한은행 약 300억 원의 충당금이 환입될 것으로 보고 있다. 물론 각 은행들의 4분기 영업실적, 대손비용, 희망퇴직 비용 등은 여전히 중요한 변수다.
◆ 연임 심사 때 공개된 마지막 성적표는 누적 2위, 리딩뱅크 수성 여부는 내년 초에
KB금융지주는 11월20일 임시주주총회에서 이재근 KB금융지주 회장 내정자를 사내이사로 선임하는 안건을 다룬다. 이 내정자가 예정대로 회장에 취임하면 KB금융지주 계열사대표이사후보추천위원회 위원장으로 차기 국민은행장 후보 추천을 이끌게 된다.
이 내정자는 이 행장의 전임 국민은행장이다. 이 내정자는 국민은행 이사회가 홍콩 ELS 투자자의 손실에 대해 자율배상을 결정한 2024년 3월에 행장을 맡고 있었던 인물이다. 당시 배상에 나섰던 사안의 과징금이 후임 행장의 임기 마지막 해에 확정됐고, 그에 따른 환입은 후임의 연간 실적에 영향을 줄 변수가 됐다.
이 행장은 2025년 리딩뱅크 탈환 성적표, 2026년 3분기 누적으로 신한은행에게 리딩뱅크 경쟁에서 뒤처졌던 성적표, 그리고 2026년 4분기 과징금 환입으로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가능성이 적힌 성적표를 모두 들고 연임 심사대 앞에 서게 되는 셈이다.
지난해 KB금융지주는 12월16일에 연말 임기 만료를 앞둔 6개 계열사의 대표이사 후보를 추천했다. KB금융지주는 은행장 임기 만료 3달 전에는 승계 절차를 시작하도록 권고하고 있는 금융감독원의 지배구조 모범관행에 따라 올해 9월 말 대추위를 열고 계열사 대표이사 CEO 승계 절차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