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잣집 딸이 어느날 백화점 명품관을 찾았다. 더 이상 살 게 없다. 얼굴에는 시큰둥한 표정이 확연하다.
최근 2030세대 사이에서 확산하는 '현백코어'는 이런 상황을 지칭한다.현대백화점의 '현백'과 노멀과 하드코어의 합성어로 '평범함에 진심'이라는 뜻의 '놈코어'를합친 신조어다. 값비싼 명품을 소유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여유로운 태도와 세련된 분위기까지, 2030세대가 새롭게 선망하는 모습이다.
명품 가방을 어떻게 마련한다고 해도, '진짜' 부유층이 가진 여유까지 가질 수 없는 냉정한 현실이 뒤에 숨어있다는 풀이도 나온다.
최근 2030세대 사이에서는 값비싼 명품을 소유하는 데 그치지 않고 부유층의 여유로운 태도와 세련된 분위기를 선망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현백코어'는 이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신조어로, 현대백화점의 '현백'과 노멀과 하드코어의 합성어로 '평범함에 진심'이라는 뜻의 '놈코어'를 합친 말이다. 사진은 AI 이미지.
6일 온라인 커뮤니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게시물 등을 살펴보면 2030세대를 중심으로 현백코어라는 표현이 관심을 얻으며 하나의 패션·라이프스타일 밈으로 확산하고 있다.
왜 하필 '현백'일까
유통업계에 따르면 올해 1~9월에 현대백화점에 방문한 전체 고객에서 20·30대가 차지한 비중은 46.7%다.
특히 더현대서울은 2021년 개점 이후 인기 브랜드 팝업스토어와 대형 전시 등을 선보이며 젊은 층이 찾는 트렌디한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같은 해 젊은 우수고객을 겨냥한 VIP 멤버십 '클럽 YP'도 도입했다.
2026년 기준 연간 구매 실적이 3천만 원 이상인 만 20~45세 고객 혹은 내부 선정 고객에게 전용 혜택을 제공한다. 젊은 고객층을 겨냥한 공간과 서비스 전략이 ‘현백’이라는 이름에 젊고 세련된 이미지를 더한 배경으로 풀이된다.
스타일의 완성은 '무심함'
현백코어의 핵심은 '무심함'이다. 화려한 로고를 드러내기보다 좋은 소재와 깔끔한 실루엣의 옷을 입고, 명품 가방과 주얼리를 자연스럽게 걸친다. 값비싼 옷과 액세서리를 갖췄지만 이를 특별히 의식하지 않는 분위기가 더해져야 완성된다.
현백코어가 보여주는 선망은 패션이나 소비 취향만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평일 낮 백화점을 여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시간, 가격표를 일일이 확인하지 않고 물건을 고를 수 있는 경제적 여유, 소비에 쫓기지 않는 심리적 안정감이 함께 투영돼 있다.
실제 청년들이 바라보는 현백코어는...
실제로 현백코어를 바라보는 청년들의 시선에는 단순히 옷을 잘 입고 싶다는 욕구를 넘어 부유층의 생활 방식에 대한 동경이 깊게 배어있다. 물론 그 뒤에는 이에 결코 다다를 수 없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안타까움'도 숨어 있다.
서울 성동구에 거주하는 30대 여성 이수연씨는 "현백코어가 개인적 취향은 아니라 매력은 잘 모르겠다"며 "어떻게 보며 사람들이 이제는 과하게 멋부리는 걸 넘어 소재나 좋은 옷의 근본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게 됐다는 흐름인 것 같기도 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현백코어는 빈부격차를 더 느끼게 하는 개념인 것 같다"며 "단순히 부자가 되는 것을 넘어 이제는 올드리치(오랜 기간 부를 축적하고 물려받은 계층)의 여유와 고상함까지 갖고 싶어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 은평구에 거주하는 30세 여성 이씨는 현백코어에서 옷이 주는 '여유로움'에 주목했다. 그는 "옷 자체보다는 옷에서 나오는 여유로움을 사람들이 동경하는 것 같고, 나 역시 그렇게 여유롭게 살고 싶다"고 말했다.
서울 동작구에 거주하는 28세 여성 고씨는 현백코어가 자신이 추구하는 아름다움에 가깝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유행에 따라 선망의 대상이 달라지는 현상일 수 도 있다고 바라봤다. 그는 "명품 가방 열풍이 불다가 주얼리로 관심이 옮겨가기도 했듯, 지금은 현백코어 같은 스타일과 분위기를 갖추는 것이 유행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현백코어 열풍에 풍자도
개그우먼 강유미는 10월30일 자신의 유튜브채널에 공개된 '현백코어'라는 제목의 동영상을 통해 최근 유행하는 '현백코어' 트렌드를 풍자했다. ⓒ유튜브채널 화면 갈무리
실제 개그우먼 강유미는 지난 달 30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현백코어'라는 제목의 영상을 올려 이 문화를 풍자하기도 했다. 강씨는 현백코어를 직접 체험하기 위해 현대백화점을 찾지만 실제 소비 여력에는 한계가 있는 젊은 세대의 모습을 그려냈다. 상품을 구매하기 전 온라인 최저가와 비교하며 망설이거나, 구매 대신 팝업스토어와 포토존을 찾는 방문객의 모습이 담겼다.
현백코어는 대놓고 부를 과시하기보다 부유함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방식에 가깝다. 당연히 그 자연스러움은 경제적 여건과 경험에서 비롯될 것이다. 좋은 소재와 디자인을 알아보는 안목은 다양한 상품과 문화를 접한 경험, 취향을 탐색할 시간과 자원을 통해 형성된다.
이에 현백코어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내는 이들도 있다. 일부 스레드 이용자들은 "하다 하다 이런 말까지 만들어낸다"며 "황금만능주의같다"는 의견을 내비쳤다. 부유층의 생활 방식과 분위기을 동경할 수도 있지만 결국 내 삶은 바뀌지 않는다. 각자의 개성과 처지에 맞춰 멋을 내고 맵씨를 뽐내는 것이 정답이라는 말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