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대응을 논의하는 세계 최대 국제회의가 개막을 앞둔 가운데 회의를 주도하는 튀르키예와 호주가 오히려 화석연료 산업을 확대하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제3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31)의 개최국 튀르키예와 협상 의장국 호주가 모두 석탄 산업에 깊이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후변화의 주범인 화석연료를 줄여야 할 국제회의를 '화석연료 과다 소비' 국가가 주도하는 모순적 상황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
제30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30) 사전회의 개막식이 2025년 10월13일 브라질 브라질리아에서 열리고 있다. ⓒ AP통신=연합뉴스
8일 가디언과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영국 하원 조사자료 등을 종합하면 COP31은 9일(현지시각)부터 20일까지 튀르키예 안탈리아에서 개최된다. 11~12일에는 세계 정상들이 참석하는 정상급 회의도 열린다.
◆ 개최국 튀르키예, 유럽 최대 석탄 발전국
이번 회의에서 가장 큰 논란은 튀르키예와 호주가 기후위기 대응 국제회의를 주도하면서도 자국의 화석연료 산업을 유지하거나 확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튀르키예는 유럽에서 석탄을 이용해 가장 많은 전력을 생산하는 국가이다. 에너지 안보와 경제성장을 이유로 석탄 발전을 유지하는 동시에 천연가스 공급 거점으로서의 역할도 강화하려 하고 있다.
영국 가디언은 올해 10월5일 튀르키예가 2035년까지 석탄과 가스를 이용한 발전설비 용량을 약 30% 확대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국제사회가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려는 상황에서 정반대의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셈이다.
호주 역시 세계적인 석탄·천연가스 수출국이다. 재생에너지 보급을 확대하고 있지만 석탄광산의 운영 기간 연장을 승인하는 등 화석연료 수출 산업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기후정책 연구기관 클라이밋 애널리틱스의 빌 헤어 최고경영자는 가디언에 "호주 노동당 정부가 2022년 집권 이후 석탄·가스 등 수출용 화석연료 개발사업 37건을 승인했다"고 지적했다.
호주 석탄광산이 가동되고 있다. ⓒ EPA=연합뉴스
◆ 튀르키예와 호주가 나눠 맡은 기후협상, 이해충돌 우려
올해 COP31은 개최국과 협상 의장국을 분리한 이례적 구조로 운영된다. 2025년 개최권을 둘러싼 튀르키예와 호주 양국의 대립 끝에 튀르키예가 공식 의장국을 맡고 호주가 협상을 주도하는 절충안이 마련됐다.
이에 따라 튀르키예의 무라트 쿠룸 환경도시화기후변화부 장관이 COP31 의장으로, 호주의 크리스 보언 기후변화에너지부 장관이 협상 의장으로 나선다.
문제는 두 나라가 화석연료 퇴출에 관한 국제적 합의를 적극적으로 이끌 수 있느냐다.
가디언에 따르면 환경단체들은 튀르키예와 호주가 석탄 퇴출 시한과 화석연료 전환 계획을 명확하게 제시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특히 태평양 섬나라들은 호주의 석탄산업 확대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해수면 상승으로 국가의 존립 자체를 위협받는 상황에서 호주가 화석연료 산업을 유지하는 것은 기후위기 대응의 신뢰를 훼손한다고 주장한다.
남태평양에 위치한 섬국가 바누아투의 랠프 레게반누 기후변화부 장관은 가디언에 “호주가 COP31 협상을 주도하면서 대형 석탄광산의 수명을 연장한다면 태평양 국가들에 매우 실망스러운 일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 화석연료 퇴출 놓고 국제사회 다시 시험대
이번 회의의 핵심 쟁점은 화석연료에서 청정에너지로 전환하기 위한 구체적 실행방안을 마련할 수 있느냐 여부이다.
2025년 브라질에서 열린 제30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30)에서는 산유국들의 반대로 '화석연료 퇴출 로드맵'에 관한 강력한 합의가 무산됐다. 결국 관련 논의를 이어간다는 자발적 합의에 머물렀다.
이후 57개국 정부가 2026년 4월 콜롬비아에서 별도의 회의를 열어 화석연료 전환 방안을 논의할 정도로 국제사회의 불만이 커졌다.
COP31은 이러한 교착 상태를 해소하고 기존 기후협약을 실질적인 정책으로 연결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그러나 회의를 주도하는 튀르키예와 호주가 자국의 화석연료 산업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다른 국가들에 더 강력한 온실가스 감축을 요구하기도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결국 COP31의 성패는 먼저 회의를 주도하는 튀르키예와 호주가 자국의 에너지 정책과 국제적 약속 사이의 간극을 좁힐 수 있느냐에서 출발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독일 환경단체 우르게발트의 헤파 슈킹 이사는 환경 전문매체 에코비즈니스와 나눈 인터뷰에서 "튀르키예와 호주가 국제무대에서 환경문제와 관련해 주장하는 바를 자국에서 실천하지 않는 한, 두 나라 모두 단호한 기후행동을 촉구할 신뢰할 만한 주체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슈킹 이사는 "호주의 기후 리더십을 입증하는 것은 COP31에서의 연설이 아니라 국내에서의 실천이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