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3대 성모 발현지(포르투갈 파티마, 멕시코 과달루페, 프랑스 루르드) 가운데 한 곳인 프랑스 루르드 대성당 벽면이 천막으로 가려졌다. 교황 방문을 맞아 성폭력 혐의 사제가 그린 벽화를 가린 것이다.
노동자들이 교황 방문을 맞이해 프랑스 루르드 지역에 위치한 로사리오 대성당의 정면 벽화를 가리는 작업을 하고 있다. 해당 벽화는 교황 방문 이후에도 무기한으로 가려질 예정이다. ⓒAFP=연합뉴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지난달 26일(현지시각) 레오 14세 교황의 프랑스 루르드 지역 로사리오 대성당 방문을 앞두고 성당 벽화가 보이지 않도록 벽면이 천막으로 가려졌다고 보도했다. 교황 방문 이후에도 무기한으로 가려질 것이라고 성당 측은 밝혔다.
해당 벽화는 성폭력 혐의가 제기된 슬로베니아 출신의 마르코 루프니크 신부가 그린 작품이다. 벽화는 '세례 받는 예수'와 '최후의 만찬' 장면을 성당 정면 벽면에 가득 채운 거대한 작품이었다. 벽화는 교황 방문 전까지 관람객을 대상으로 공개되고 있었다.
루르드 교구의 수장인 장 마르크 미카 주교는 8월27일 프랑스 매체 파리 매치(Paris Match)와 나눈 인터뷰에서 "벽화를 가린 것은 교황의 직접 지시였다"고 알렸다. 실제 성당을 방문한 교황은 지난달 27일 "교회 내 깊은 상처와 고통스러운 잘못을 치유해야 한다"고 연설하며 루프니크 신부를 에둘러 비판했다.
루프니크 신부는 20명이 넘는 여성 수도자와 수녀들을 성적 및 심리적으로 학대해왔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피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루프니크 신부는 1986년부터 2018년까지 30여 년에 걸쳐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전해졌다. 신부 측에선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신부가 속해 있던 예수회(프란치스코 전 교황이 소속됐던 수도회)는 2023년 이러한 증언과 혐의를 받아들여 그를 제명했다. 다만 종교재판이 여전히 진행 중이어서 '교회법'상 유죄와 신부 제명이 최종 확정된 것은 아니다. 2023년에 시작된 종교재판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가톨릭 내 사제 성추문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프랑스의 독립조사위원회(CIASE)가 2021년 10월5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1950년부터 2020년까지 약 70년 간 가톨릭 성직자에 의한 성 학대 피해자가 프랑스에서만 약 21만6천 명에 달한 것으로 밝혀졌다. 가해자로 추정된 성직자 및 수도자는 약 3천여 명으로 알려졌다. 보고서는 가톨릭 내 성추문을 단순히 '사제 몇 명의 일탈'이 아닌 '교회 내 구조적 문제'로 진단했다.
사제 성폭력 사건이 지속적으로 이어져온 데엔 교회의 미온적 대응 방식이 주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CIASE는 교회가 피해 사실을 인지하더라도 가해 사제를 다른 지역으로 옮기는 등 구조적으로 피해 사실을 은폐해왔다고 전했다. 또한 피해자의 목소리를 본격적으로 인정하기 시작한 것이 2015년이란 사실은 교회의 의도적 사건 축소가 장기간 지속돼왔음을 보여준다.
교회법의 특수성도 요인으로 꼽힌다. 기존 교회법은 죄를 지은 성직자의 '처벌'이 아닌 '교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피해자의 권리 보호에 귀를 기울이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여기에 교회 내 위계관계가 피해자가 침묵하도록 만들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성직자는 종교적 권위를 가진 존재인 만큼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 사실을 문제 삼거나 권위에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프랑스 영화감독 프랑수와 오종의 영화 '신의 은총으로' 예고편의 한 장면. 사제의 아동 성폭행 실화 사건을 배경으로 한 작품으로, 제69회 베를린 국제 영화제에서 은곰상(심사위원대상)을 수상했다. 프랑스의 독립조사위원회(CIASE)는 사제 성폭력 사건 중 80%가 남자 아이를 대상으로 자행된 범죄였다는 충격적인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찬란 유튜브
가해 사제가 교회법에 따라 제재를 받는다 하더라도 '국가 형사법'의 처벌로 이어지지 못한다는 점도 한계로 꼽힌다. 교회법상 유죄가 인정되더라도 범죄 발생으로부터 시간이 오래 지나 공소시효가 만료된 경우가 많았고, 그럴 때마다 가해 사제는 형사처벌을 받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