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디젤 수출 규제' 카드를 들고 세계를 위협 중이다. 규제가 시행될 경우, 미국도 피해를 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한국은 수출 제한 정책을 시행하고 있어 디젤 확보에는 큰 문제가 없지만, 디젤 부족으로 인한 세계적 물가 상승의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26년 10월2일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 남쪽 잔디밭에 헬기 '마린 원'을 타고 도착하고 있다. ⓒAP통신=연합뉴스
2일 뉴욕타임스 등 외신을 종합하면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디젤 수출 규제 조치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이들은 전 세계 경제가 큰 타격을 입고 물가가 급등할 것이며, 미국 연료 공급에도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경고했다.
◆ 트럼프, 미국산 디젤 수출 금지·제한 검토 : 미국·세계 경제 모두 타격 우려
뉴욕타임스는 1일(현지시각) "트럼프 대통령이 캐나다, 멕시코, 유럽 등 12개 지역에 수출되는 미국산 디젤 수출을 금지하거나 제한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다"며 "석유업계 경영진과 세계 지도자들은 이러한 조치가 식료품부터 항공유에 이르기까지 전반적 물가 급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점점 더 심각하게 경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트럭들이 2026년 9월28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윌리엄스의 5번 주간 고속도로를 따라 휘발유와 디젤 가격을 광고하는 표지판 앞을 지나가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자동차협회(AAA)에 따르면 미국·이란 전쟁이 시작된 이후 미국 내 디젤 평균 가격이 70% 급등해 1일 기준 갤런당 6.38달러(약 8600원)를 기록했다. 디젤 가격 급등에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전통적으로 공화당을 지지해 온 농민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9월30일 백악관에서 "(디젤 수출 금지 조치를) 여전히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에너지 전문가들은 미국 디젤 수출 금지 조치가 세계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세계적 경제 전문 연구소 캐피털이코노믹스는 9월23일 미국 디젤 수출 금지가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럽에서 발생했던 천연가스 위기와 유사한 충격을 초래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당시 유럽중앙은행에 따르면 천연가스 가격은 180% 이상 급등했다.
릭 조스윅 S&P 글로벌의 석유 분석가는 뉴욕타임스에 "(미국의 디젤 수출 금지 조치는) 중남미 국가들에 가장 큰 타격을 줄 것이다"고 말했다. 조스윅 분석가는 특히 중남미에 자체 정유 시설이 없는 나라들이 있어 디젤 수입이 어려워지면 심각한 위기에 처한다고 강조했다.
이미 동남아시아에서는 디젤 등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물가 상승이 심화하고 있다. 아시아개발은행은 9월23일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개발도상국에서 물가 상승률이 지난해 3%에서 올해 4.2%로 높아진다고 전망했다.
미국의 디젤 수출 금지 조치는 미국에도 경제적 타격을 줄 수 있다.
미국 대형 정유회사 시트고의 대변인은 1일 "디젤 수출을 즉시 금지하면 하루 약 130만 배럴의 수출처가 사라지면서 심각한 저장시설 부족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며 "제품 저장 문제로 정유소들은 원유 처리량을 줄여야 할 것이고, 이는 결국 전체 연료 공급에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잭 발라지아 전 엑슨모빌 부사장은 9월24일 미국 텍사스주에서 열린 시사 페스티벌에서 "디젤 생산량이 줄면 항공유와 휘발유 생산량도 줄어들고, 저장시설이 가득 차면 (항공유와 휘발유도) 가격이 오를 것이다"고 말했다.
◆ 한국은 어떤가: 디젤 가격 급등은 없겠지만 수입 물품 가격은 상승 가능성
한국 정부는 석유 최고가격제를 시행해 석유와 디젤 가격의 과도한 상승을 억제하고 있다. 재정경제부는 2일 석유 최고가격제가 9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0.6%포인트 억제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재정경제부는 9월 물가상승률은 2.9%였는데, 최고가격제가 없었다면 3.5%에 달했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2026년 9월27일 서울 서초구 만남의광장 주유소에 유가가 표시돼 있다. ⓒ연합뉴스
한국은 아시아의 주요 디젤 수출국이지만, 한국 정부는 3월 최고가격제를 시행하면서 정유사의 수출 물량을 지난해 같은 기간의 100% 수준으로 제한했다. 이에 한국 정유업계는 내수 공급을 우선한 뒤 남은 물량을 수출하는 '선내수 후수출' 원칙을 지키고 있다.
다만 문제는 전 세계적 디젤 부족으로 인한 물가 상승이다. 뉴욕타임스는 미국이 디젤 수출을 금지하면 향후 몇 달간 중국이 경유를 얼마나 수출할지가 관건이라고 봤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우드맥켄지의 수샨트 굽타 아시아·태평양 석유 시장 담당 연구이사는 1일 뉴욕타임스에 "중국은 현재 원유를 추가로 정제해 디젤을 생산할 능력을 갖춘 유일한 국가다"고 말했다.
그러나 로이터 통신은 1일 소식통을 인용해 "중국 정유업체들이 정부의 추가 공지가 있을 때까지 홍콩과 마카오를 제외한 지역으로의 석유 제품 수출을 중단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미국의 디젤 수출 금지 조치가 시행되면 한국 역시 전 세계적 물가 상승의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굽타 이사는 "세계는 이미 디젤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아시아든 유럽이든 모두 이어져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