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암살자(들)'을 두고 국민의힘 및 극우 진영에서 상영 중단과 법적 대응까지 거론하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출연배우에 대한 악플은 기본이고 다른 전직 대통령을 불러내 폄훼하는 '패러디물'까지 나온다. 역대 어떤 역사 소재 영화에도 극우 진영이 이처럼 격렬하게 반응한 적이 없다. 이들은 왜 이렇게 흥분할까.
영화 '암사자(들)'과 관련한 논란이 커지면서 국민의힘 및 극우 진영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AI로 생성한 이미지.
지난 24일 개봉된 '암살자(들)'은 1974년 8월15일 발생한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본격적으로 다뤘다. 특히 기존에 알려진 사건 경위와 다른 해석을 암시하는 장면이 등장하면서 보수 진영은 '역사 왜곡'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반면 제작진은 영화가 특정한 역사적 사실을 새롭게 확정하기보다 하나의 가설과 의문을 제시한 창작물이라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실존 사건을 소재로 한 만큼 역사적 사실과 영화적 상상력을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지를 두고 의견이 엇갈리는 셈이다. 여기까지는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논란으로 여러 차례 벌어졌던 '익숙한 풍경'이다. 그런에 이번 논란은 다르게 전개됐다.
국민의힘이 본격 등판하고, 인터넷 부대가 뛰어들면서,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논란의 수준을 넘어섰다. 현재는 '진영의 생존'이 걸린 문제처럼 보일 지경이다.
출연 배우에 대한 악플 세례, 노무현 전 대통령 폄훼 '패러디물' 등장
주진우 국민의힘 의원이 배우 유해진을 겨냥한 비방글에 '북한상'이라고 댓글을 달았다. ⓒ스레드
영화를 둘러싸고 비판적 관객이 '나쁜 감상평'을 쓰는 일은 일반적이다. 그러나 출연 배우 개인을 모욕하는 '악성 댓글'은 차원이 다르다. 이 영화에 출연한 배우 유해진을 두고는 그의 과거 출연작을 거론하며 북한이나 반일, 군사정권 비판 소재의 영화에 출연해왔다는 취지의 게시물이 확산됐다. 특히 외모를 겨냥한 인신공격성 발언과 함께 "그냥 북한 가서 살아. 자유대한민국에서 꼴값 떨지 말고"라는 내용까지 등장했다.
직접 출연하지 않은 배우마저 인신공격의 대상이 됐다. 배우 김고은은 '암살자(들)'을 두고 "현재에 대한 감사함을 많이 느꼈다"며 "꼭 함께 봐주시고 느껴달라" 취지의 추천사를 남긴 뒤 악성 댓글과 성희롱성 표현 등에 시달리고 있다.
악성 댓글은 극우 성향의 누리꾼에 그치지 않았다. 정치인이라면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토론을 이끌어야 함에도, 주진우 국민의힘 의원은 유해진을 겨냥한 게시물에 '북한상'이라는 댓글을 달았다. 북한 사람과 닮았다는 '저질' 외모 비판이 아닐 수 없다. 주 의원은 김고은 관련 글에도 "그 감사한 현재를 박정희 대통령님이 만들어주신 것이다"는 취지의 댓글을 남겼다.
SNS에 확산 중인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과 관련한 패러디 콘텐츠. ⓒ스레드
극우 진영은 이번 영화를 계기로 '갑자기' 노무현 전 대통령을 불러냈다. '패러디물'이라는 형식으로 그의 죽음을 조롱하는 표현물이 생산됐다. 특히 이런 표현물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문재인 전 대통령과 관련이 있는 것처럼 암시하는 영화 포스터와 AI로 제작된 예고편도 있다. '부엉이바위의 진실', '부엉이(들)', '미는자(들)' 등의 제목을 붙인 해당 콘텐츠에는 "부엉이바위에서 있었던 그날의 진실", "누구도 말하지 않은 그날의 이야기" 등의 문구가 담겼다.
여기에는 "5월18일 개봉"이라는 말까지 붙어, 서울 배제고 학생들의 '탱크데이' 논란까지 떠올리게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조롱해 왔던 일베 문화가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는 셈이다.
'암살자(들)'이 육영수 여사 피격사건을 영화적 상상력으로 재구성한 것처럼,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도 재구성할 수 있다는 '형식 논리'로 자신들의 행위를 합리화한다. 국민의힘 일각에서도 이를 옹호하는 듯한 발언이 나온다.
심지어 중국 자본 투자설까지 등장했다. 영화 제작에 중국 자본이 들어갔다는 '가짜뉴스'인데, 부정선거에 중국 간첩이 개입했다는 극우 진영의 주장과 닮아있다.
'암살자(들)'은 극우의 심장을 쐈다?
연설하는 박정희 전 대통령. ⓒ연합뉴스
극우 진영은 왜 이렇게 전례 없이 격렬한 반응을 보일까. 전두환의 12·12 군사반란을 소재로 한 영화 '서울의 봄'이 개봉했을 당시에도 정치적 논란은 있었지만, '암살자(들)'을 둘러싼 논란은 수준이 완전히 다르다. 정치권까지 나서 상영 중단과 법적 대응, 국정감사 증인 채택 등을 요구하면서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 영화가 전두환이 아니라 박정희를 정조준했다는 점을 그 원인으로 꼽는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70년대 산업화를 이끈 지도자로 보수 진영에서 추앙받고 있다.
일찍이 이승만 초대 대통령을 '국부'로 추앙하려 했지만 독재와 4·19 혁명으로 쫓겨났다는 점에서 한계가 뚜렷하다. 전두환의 '명예 회복'을 위해 이진숙 국민의힘 의원이 국회에서 토론회를 열었으나 여론의 역풍이 숨을 죽이고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민주 진영 출신이고, 이명박 윤석열 전 대통령은 감옥에 갔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희망이었으나 역사상 처음 탄핵을 당했다. 요컨대 보수 진영에서 유일하게 내세울 수 있는 전직 대통령은 박정희가 유일하다.
여기에 '암살자(들)'은 단순히 박정희 정권의 권위주의를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의 배후 가능성을 영화적 상상력으로 제기한다. 이는 보수 진영이 자랑하는 '박정희의 인간적 면모'까지 훼손할 수 있다.
이와 별도로 온라인 공간에서 세력을 구축한 일베 세력이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이어온 부정선거 시위에 이어 이번 영화를 새로운 전쟁터를 삼았다는 분석도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폄훼하는 표현물 등에는 일베 세력의 솜씨가 여러 곳에서 보인다.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좋은 토론'의 계기가 될 수 없을까
일단 더불어민주당은 이번 영화가 허구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창작물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고 있다. 국민의힘의 공세를 정치적 압박으로 규정하며 맞서는 가운데, 역사적 사건을 다룬 창작물에 대한 표현의 자유를 어디까지 보장할 것인지를 두고 여야의 입장 차이도 선명해지는 모습이다.
최민희 더불어민주당 의원 역시 페이스북을 통해 "장동혁 대표는 싸우다 싸우다 영화와 싸우나"라며 "픽션인 영화에 긁어 부스럼 만들어 좋을 게 뭐 있을까"라고 했다.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DJ(김대중 전 대통령)는 문화예술인들을 간섭하면 창작력이 후퇴하니 '지원은 하되 간섭은 말라'고 하셨다"며 "영화도 가위질하지 못하게 하고 영화인들에게 맡기라고 하셨다"고 적었다.
영화는 논란 속에서도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암살자(들)'은 극우 진영의 '평점 테러' 속에서도 개봉 후 불과 7일 만에 누적 관객 160만 명을 넘어섰다. 한 사회가 표현의 자유에 대해 보여주는 태도는 그 나라 민주주의가 얼마나 성숙한지 보여준다. 극우 진영의 흥분이 오히려 영화를 더욱 홍보해주는 '역효과'를 낼 수도 있겠지만, 결국 이번 논쟁은 관객들의 집단지성이 승패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