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의 겨울 해빙(바닷물이 얼어서 생긴 얼음)이 올해 역대 세 번째로 좁은 면적에 그쳤다.
해빙이 줄면서 얼음 위에서 새끼를 키우는 황제펭귄도 번식지를 잃어가고 있다. 남극 해빙이 이렇게 계속 녹으면 해수면이 오르고, 인간이 살아갈 땅도 줄어든다.
황제펭귄들이 모여 있는 모습. ⓒ 픽사베이
4일 영국 가디언을 비롯한 외신보도와 연구를 종합하면 지구온난화에 따라 남극 얼음이 녹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어 인간과 동물 모두에게 치명적 위기로 다가올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호주 모나시대학교 소속 아리안 푸리치 박사는 최근 가디언에 "온난화에 따른 남극 해빙문제는 미래의 문제가 아니다"며 "인간과 지구 생태계와 관련된 지금 당장의 문제다"고 말했다.
일시적 변화 아닌 '구조적 위기'
해빙은 남극 주변 바닷물이 얼어서 생긴 얼음이다. 바다 위에 떠 있고, 겨울에는 넓어졌다가 여름에는 대부분 녹는다.
가디언에 따르면 올해 해빙은 9월14일 기준 1759만㎢를 기록했는데 이는 평균보다 약 100만㎢ 적은 면적이다. 스페인 면적(50만5990㎢)의 약 2배에 해당한다.
문제는 해빙의 겨울철 최대 크기가 역대 가장 작았던 4건의 사례가 모두 최근 4년 사이에 나왔다는 점이다. 미국 콜로라도대학교 빙설데이터센터 소속 월트 마이어 박사는 해마다 오르내림이 커서 발표를 미뤘지만, 이제는 "최고치에 도달했던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해빙의 크기가 줄어드는 현상이 한 해만 발생하는 일시적 현상으로 보기 어렵다는 연구도 이어지고 있다.
호주 남극국 수석과학자인 네릴리 에이브럼 박사 연구팀은 2025년 8월 남극에서 벌어지는 급격한 변화를 정리한 논문을 냈다.
에이브럼 박사는 "남극의 얼음과 바다, 생태계 전반에서 급격한 변화가 이미 감지됐고, 지구 온도가 조금 오를 때마다 더 악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남극의 황제펭귄이 갈라진 빙하를 넘어가기 위해 뜀뛰기를 준비하고 있다. ⓒ 세계자연기금(WWF) 한국본부=연합뉴스
무너지는 ‘얼음 방파제’, 사람도 동물도 위기
해빙과 빙붕, 빙하와 빙상의 개념도. AI 이미지
해빙이 줄면 왜 문제일까. 남극 대륙 위에는 거대한 얼음 덩어리인 '빙하'가 쌓여 있고, 이 얼음은 바다 쪽으로 천천히 밀려 나온다. 그리고 바다에 맞닿아 떠 있는 부분을 가리켜 '빙붕'이라고 한다.
빙붕은 뒤에서 밀려오는 남극의 육지 얼음을 빠르게 소실되지 않도록 막아 주는 일종의 '마개'나 '방파제'와 같다. 해빙은 그 앞에서 파도를 막아 주는 첫 번째 보호막이다.
에이브럼 박사는 "해빙이 줄면 떠 있는 빙붕이 파도로 인한 붕괴에 더 취약해진다"고 설명했다.
남극 해빙이 줄어든다고 바닷물이 직접 불어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해빙 감소로 바다에 떠 있는 빙붕이 파도와 해양의 영향을 더 크게 받으면서 약해질 수 있다.
빙붕의 지지력이 떨어지면 육지에 쌓여있는 빙하와 빙상(대륙을 덮고 있는 거대한 육지 얼음)이 바다로 흘러가는 속도가 빨라져 장기적으로 해수면 상승을 키울 수 있다.
영국 노섬브리아대학교 소속 이네스 오토사카 박사 연구팀은 올해 9월 그린란드와 남극이 지난 47년간 약 11조3천억 톤의 얼음을 잃었다고 발표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이 때문에 지구 해수면은 약 3.1cm 오른 것으로 파악된다.
언뜻 보기에는 3.1cm라는 숫자가 작아 보이지만 오토사카 박사는 1cm가 오를 때마다 매년 한 번 이상 침수를 겪는 사람이 200만~300만 명 늘어난다고 설명했다.
지구온난화가 가속화되면 현재보다 더 암울한 미래 시나리오가 나타날 수 있다는 연구도 있다.
홍콩시립대학교 소속 유청 린 교수와 러트거스대학교 소속 로버트 콥 교수 연구팀은 최근 네이처 지오사이언스에 게재한 논문에서 온실가스 배출량이 매우 많은 시나리오의 경우 남극 빙상만으로 2100년까지 해수면이 약 25cm 오를 수 있다고 분석했다.
호주 뉴사우스웨일스대학교 매슈 잉글랜드 교수는 남극의 빙붕이 약화되면 육지 얼음이 바다로 흘러드는 속도가 빨라져 해수면 상승을 키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서남극 빙상이 장기적으로 붕괴할 경우 해수면이 3m 이상 상승할 수 있다는 연구도 있다.
남극 쿨먼섬 번식지에서 발견된 새끼 황제펭귄 사체들. ⓒ 극지연구소=연합뉴스
황제펭귄, 번식지가 줄어든다
남극의 해빙이 사라지면 발생하는 또 다른 문제는 펭귄의 집이 사라지는 것이다. 황제펭귄은 해안에 단단히 붙은 얼음 위에서 알을 품고 새끼를 키운다. 새끼펭귄의 솜털이 물에 젖지 않게 되기 이전에 얼음이 깨지면 새끼는 바다에 빠져 살아남기 어렵다.
잉글랜드 교수는 "해빙 손실이 지속되면 황제펭귄의 멸종위험을 높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영국남극조사국(BAS)은 2024년 연구에서 2023년 말 해빙이 최저치로 줄면서 66개 번식지 가운데 14곳에서 황제펭귄이 번식에 실패했다고 밝혔다. 황제펭귄은 올해 4월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에서 '멸종위기종'으로 이름을 올렸다.
위성 기록에서는 황제펭귄이 터전을 잃지 않으려고 번식 장소를 옮기는 모습도 확인됐다.
캔터베리대학교 소속 미셸 라루 박사는 미국 항공 우주국(NASA)에 "2022년 번식에 실패했던 스마일리섬 펭귄집단이 다시 자리를 잡는 등 어느 정도 회복력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영국 더럼대학교 소속 그랜트 맥도널드 박사도 펭귄이 빙산이나 빙붕 위로 옮겨 번식하는 일이 지금까지 알려진 것보다 훨씬 흔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두 박사는 이런 적응만으로 얼음 감소의 장기적 충격을 막기는 어렵다고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