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교회들이 농담과 말장난이 담긴 재치 있는 간판을 달고 있다. 종교에 대한 무관심이 커지는 가운데 종교계는 요즘 앞다퉈 젊은 세대에 다가가려 ‘힙함’을 내세우고 있다.
미국 미네소타주의 한 침례교 교회가 입간판에 “일기예보 / 하나님이 다스리신다 / 예수님이 빛난다”는 문구를 적어 놓고 있다. ⓒ커뮤니티 캡처 이미지
AP통신은 29일(현지시각) 미국 미네소타주의 한 교회에 눈길을 끄는 재밌고 유쾌한 간판이 등장했다고 보도했다. 교회 입간판에는 “일기예보 / 하나님이 다스리신다 / 예수님이 빛난다”(Forecast / God reigns / Son shines)라고 문구가 적혀 있다. 미국인의 눈길을 사로 잡는 언어유희가 숨어 있다.
‘reign’(다스린다)은 ‘rain’(비)과 같은 발음에 철자가 다르다. ‘Son’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의미하지만 ‘sun’(태양)과 발음이 같다. 비와 햇빛을 예보하는 일기예보의 표현을 빌려 하나님(God)과 예수(Son)의 존재를 재밌게 표현한 것이다.
미국 교회의 재치 있는 입간판은 다른 곳에서도 만나볼 수 있다.
미국 앨라바마주의 한 교회 앞엔 운전 중 휴대전화 사용을 막기 위해 “예수님을 만나고 싶다면 운전 중에 문자를 하라”(Text while driving if you want to meet Him)고 쓰인 간판이 걸렸다. 운전 중 핸드폰 사용이 사망에 이를 수 있다는 섬뜩한 경고를 익살스럽게 표현한 것이다.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경적을 울려라, 예수님을 만나고 싶다면 운전 중 문자를 보내라" 문구를 담은 교회 간판 ⓒ커뮤니티 캡처 이미지
미국 뉴욕의 한 침례교회에선 2023년 폭염으로 지친 주민들을 달래고자 “주님, 뭘 굽고 계신진 모르겠지만, 이제 다 된 것 같은데요”(Lord, whatever you are baking, it's done!)가 쓰인 간판이 등장했다. 해당 교회의 홍보 담당자 엘리자베스 푸스팅거는 29일 AP통신에 "간판을 교체할 때마다 사람들이 멈춰 서서 간판에 대해 질문하고, 그중 일부는 나중에 예배에 참석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주님, 뭘 굽고 계신진 모르겠지만 이제 다 된 것 같은데요!" 문구가 달린 교회 간판 ⓒ커뮤니티 캡처 이미지
엄숙하게만 느껴지는 교회가 재치 있는 농담으로 미국 내에서 이목을 끌고 있다. 특히 종교가 젊은 세대에 도달하고 유입층을 넓히기 위해 음악, 밈(인터넷과 SNS를 통해 대중 사이에서 놀이처럼 패러디되거나 유행되는 텍스트나 이미지), SNS, 패션 등 현대 문화의 문법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사례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미국에선 스트리트 패션(도시 길거리와 힙합 등 하위문화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지는 패션 스타일)을 입는 목사들이 SNS에서 화제를 모았다. 미국의 목사 어윈 맥머너스는 정장 대신 에어 조던, 이지(Yeezy), 피어 오브 갓(Fear of God)과 같은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를 입고 설교하는 모습이 이목을 끌었다. 이를 계기로 미국 내에서 목사들의 유행 패션을 모아놓은 인스타그램 계정 '프리처스 앤 스니커즈'(PreachersNSneakers)도 덩달아 주목받았다.
명품과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의 의류와 신발을 착용한 목사들과 착장 정보를 모아놓은 인스타그램 계정 '프리처스 앤 스니커즈'(PreachersNSneakers). 2026년 9월 기준 팔로워는 약 32만 명에 달한다. ⓒinstagram=preachersnsneakers
미국의 칼 렌츠 목사는 아예 뉴욕 맨해튼의 록 공연장 어빙 플라자(Irving Plaza)에서 예배를 열기도 했다. 딱딱하고 엄숙한 분위기가 아닌 조명과 밴드가 있는 콘서트 같은 분위기였다고 한다.
프랑스에선 최근 젊은 층의 가톨릭 유입이 늘고 있다. 프랑스는 유럽 내 다른 국가와 비교해 가톨릭 신자 비율이 낮아 '가톨릭의 무덤'이라고도 알려졌지만 최근 상황은 조금 달라졌다. 프랑스 주교회의(CEF)가 2025년 4월10일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5년 부활절에 프랑스에서 세례를 받은 성인 10명 중 4명이 18~25세 연령이었다고 한다.
프랑스 가톨릭 사제들의 인스타그램과 유튜브 등 소셜미디어(SNS)를 통한 젊은 층과의 적극적이 소통이 신도가 늘어난 배경 중 하나로 꼽힌다.
프랑스 지방 릴의 리오넬 드와브랭 신부는 인스타그램에서 약 4만6천 명, 틱톡에서 9만 명의 팔로워를 거느린 '인플루언서 신부'다. 그가 프랑스 시험기간에 학생들에게 기도를 권하는 영상은 틱톡에서 2백 만 조회수를 기록했고 세속적 욕망을 위해 기도하는 모습이 참신하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프랑스 릴의 리오넬 드와브랭 신부가 시험기간 공부 중인 학생들을 위해 기도하는 영상. 해당 영상은 틱톡에서 2백 만 조회수를 기록하며 큰 주목을 끌었다. 동영상에는 "고등학생, 대학생 여러분. 여러분의 시험을 위해 기도합니다. 파이팅!"이라 적혀있다. ⓒinstagram=perelioneldewavrin
'유튜버 신부'도 있다. 약 70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프랑스 도미니코회 수사제 폴 아드리앵은 매일 아침 실시간 방송을 진행하며 구독자와 소통한다. 그는 구독자들과 '문신한 사람은 세례를 못 받는지', '기독교인이 요가로 마음을 비워도 되는지', '프랑스 축구 결승을 위해 기도해도 되는지' 등 일상의 가벼운 주제와 종교의 만남에 대해 소통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프랑스 라디오 방송국 에르테엘(RTL)은 이를 두고 20일(현지시각) 폴 아드리앵 신부가 소셜미디어를 통해 신앙을 새롭게 재해석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한국 개신교는 이런 흐름에 한 걸음 물러나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종교 인구는 고령화되고 있고 젊은 층에서의 종교 이탈이 뚜렷하다. 특히 한국 개신교는 신자 고령화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한국리서치의 2025년 종교인식조사에서는 개신교 신자 중 절반 가까이가 60대 이상으로 밝혀져 교회의 고령화가 뚜렷하게 드러났다. 또한 한국갤럽이 2025년 발표한 종교 조사에 따르면 2025년 20대 종교인 비율은 24%에 불과했다. 같은 조사에서 2004년 20대 종교인 비율이 45%에 달했던 것에 견주면 21년 사이 반토막이 난 셈이다.
다만 한국 불교는 '힙'한 유행을 주도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지난 4월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국제불교박람회’에는 약 25만 명에 가까운 관람객이 방문하며 불교박람회 역대 최다 관객 수를 기록했다. 그중 2030 관람객 비율이 전체의 73%를 차지했고 불교 관련 굿즈는 불티나게 판매됐다.
한국 불교가 2030세대의 주목을 받는 것은 교리를 받아들이지 않아도 쉽게 경험해볼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한 요인으로 꼽힌다. 세례를 받거나 교육을 들어야만 하는 타 종교와 달리 언제든 절에서 명상을 하거나 '템플 스테이'를 통해 절에서 하룻밤 묵어볼 수 있다. 지나친 경쟁과 끝이 없는 불안에서 불교가 젊은 층을 중심으로 '안식처'가 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