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백화점의 공간 전략이 기존 점포를 다시 활용하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그동안 '타임빌라스'를 앞세워 새로운 복합쇼핑몰을 확대하는 데 힘을 줬다면, 최근에는 이미 확보한 점포를 다시 설계해 경쟁력을 높이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정현석 롯데쇼핑 백화점부문의 대표이사 부사장이 핵심 점포를 키우고 기존 점포의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그래픽 허프포스트코리아
17일 롯데백화점의 전략을 종합해보면 최근의 투자는 이미 성과가 확인된 점포로 향하고 있다. 롯데백화점은 지난 8일 이사회에서 본관인 잠실점 리뉴얼에 800억 원가량을 투입하는 안을 승인했다. 롯데백화점은 이르면 올해 안에 공사를 시작해 지하 식품관부터 명품·패션 매장까지 순차적으로 손본다.
인천점에서는 2023년부터 3년 동안 식품·뷰티·키즈·여성·럭셔리 상품군을 단계적으로 재단장해왔다. 리뉴얼의 방향은 프리미엄 수요를 잡는 데 맞췄다. 지난해 우수고객 매출은 약 20% 늘었고, 럭셔리 상품군 매출 비중은 2024년 25%에서 올해 1분기 30% 이상으로 높아졌다. 피아제·불가리·티파니·부쉐론·그라프 등 고가 브랜드를 순차적으로 들이고 몽클레르 매장을 국내 최대 규모로 확대했다.
공간을 새로 확보하는 것보다 기존 공간의 쓰임을 넓히는 사례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롯데백화점이 그동안 내놓았던 공간 확장 구상과 비교하면 차이가 더 뚜렷하게 보인다.
롯데백화점은 그동안 타임빌라스를 앞세워 기존 백화점의 공간을 복합 쇼핑몰로 바꾸거나 새로운 쇼핑 공간을 확보하는 방안을 추진해왔다. 백화점 중심의 점포 운영에서 벗어나 복합 쇼핑몰을 새로운 성장축으로 키우기 위해 공간을 넓혀가는 움직임으로 관측됐다. 2030년까지 7조 원을 투자해 13개 타임빌라스를 확보한다는 청사진도 이런 흐름에서 나왔다.
다만 올해까지 타임빌라스 사업 진행 상황을 보면 당초 제시한 청사진과 실제 일정 사이에는 차이가 나타나고 있다. 사업이 일제히 중단된 것은 아니지만, 일부 신규 개발 사업은 공사와 인허가 과정에서 일정이 늦어졌고 기존 점포의 타임빌라스 전환도 당초 계획보다 속도가 더딘 상황이다.
2025년 타임빌라스 전환을 추진했던 롯데몰 군산점은 리뉴얼을 상당 부분 마쳤지만 아직 타임빌라스 브랜드로 전환하지 않았다. 2026년 신규 출점을 예정했던 송도는 하도급 공사비 갈등으로 14개월가량 공사가 중단됐다가 지난 7월 재개돼 현재 2028년 말 준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대구 수성은 공사가 중단된 것은 아니지만 현재 지상층 골조공사를 진행하고 있고, 2027년 3월 준공·6월 개장을 목표로 해 당초 제시했던 2026년 6월 준공·9월 개장보다 9개월가량 늦어졌다.
이러한 변화가 정현석 롯데쇼핑 백화점부문 대표이사 부사장의 의지만으로 만들어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롯데백화점 역시 기존 점포 재단장에 힘을 싣는 동시에 신규 점포 확장도 이어가고 있다는 입장이다. 어느 한쪽에 비중을 두기보다 두 가지 전략을 같은 중요도로 보고 함께 추진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다만 현실적 여건이 이런 속도 차이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은 있다. 대규모 복합쇼핑몰을 새로 만드는 데는 많은 투자비가 필요한 데다 백화점 시장에서도 점포별 성과 차이가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점포를 여러 곳 늘리는 것보다 이미 건물과 상권, 고객 기반을 갖춘 점포 가운데 성장 가능성이 높은 곳에 투자를 집중하는 것이 투자 효율을 높일 수 있는 환경이다.
실제로 롯데백화점은 전국에 여러 점포를 운영하고 있지만 모든 점포가 같은 성장세를 보이는 것은 아니다. 잠실과 본점처럼 매출 규모가 큰 핵심 점포가 있는 반면 일부 지역 점포는 상권 변화와 고객 수요에 따라 성장세가 제한적이다. 이에 따라 점포마다 같은 규모의 투자를 집행하기보다 매출 성장세와 상권 경쟁력에 따라 투자 우선순위를 달리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잠실 본관과 에비뉴엘·월드몰을 합친 거래액은 2024년 3조 원을 넘어섰고 지난해에도 3조3천억 원 이상을 기록했다. 인천점도 지난해 매출 8300억 원을 기록했고 올해 1분기에는 20%대 성장세를 보였다. 반면 전국 백화점 점포별 매출 순위에서도 하위권에 속한 롯데 상인점과 관악점의 지난해 매출은 각각 1184억 원, 1065억 원에 그쳤다. 잠실과 관악점의 매출 규모만 비교해도 28배가량 차이가 난다.
롯데그룹의 재무 여건도 대규모 신규 투자에 신중할 수밖에 없는 배경으로 꼽힌다. 주요 계열사의 차입금은 줄고 있지만, 지주사를 중심으로 신사업 투자와 계열사 지원에 들어가는 자금은 계속 늘고 있다. 특히 롯데바이오로직스 송도 바이오캠퍼스에 대한 투자가 본격화하면서 롯데지주의 출자 부담도 커지고 있다. 롯데지주는 지난해 1680억 원을 출자한 데 이어 올해 4월 912억 원, 8월 1550억 원을 추가로 지원했다.
계열사 지원과 신사업 투자에 따른 재무 부담도 이어지고 있다. 롯데지주의 별도 기준 순차입금은 올해 6월 말 3조6489억 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3.8% 늘었다. 자회사 투자·출자 부담을 보여주는 이중레버리지비율도 167.4%를 기록했다. 별도 기준 종속기업·관계기업·공동기업 투자액은 8조4971억 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2.7% 증가했다.
이런 가운데 정현석 대표가 과거 사업에서 보여준 점포 효율 개선 경험도 눈에 띈다. 정 대표는 2020년부터 FRL코리아 대표를 맡아 수익성이 낮은 점포와 사업을 정리하고 온라인 사업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실적 개선을 이끌었다.
당시 160개가 넘었던 유니클로 매장은 120여 개로 줄었지만, 적자였던 영업실적은 2021년 529억 원의 영업이익으로 돌아섰다. 매장 수를 늘리는 대신 점포 효율을 높여 수익성을 회복한 사례다.
롯데아울렛에서도 기존 점포 효율을 높여 성과를 끌어올린 경험이 있다. 2025년 아울렛 사업을 맡은 정 대표는 프리미엄 브랜드를 확대하고 야외 공간을 활용해 가족 단위 고객을 끌어들이는 등 기존 점포의 상품과 공간을 다시 구성했다.
그 결과 롯데아울렛은 지난해 매출 4조3895억 원으로 1년 전보다 2.6% 성장했고, 정 대표는 1년 만에 백화점 대표로 자리를 옮겼다. 기존 자산을 어떻게 바꾸고 활용할 것인지에 집중했던 경험이 현재 백화점의 점포 재편 전략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