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전 학생 무상급식 논쟁은 서울시장직까지 걸 만큼 뜨거운 정치적 화두였다. 논쟁의 핵심은 "누구에게 무상급식을 제공할 것인가"였다.
15년이 지나 무상급식은 이제 공립학교의 일상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지방자치단체(지자체) 별로 무상급식에 투자하는 비용 차이가 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여기에 편식 지도를 학교가 맡아야 하는지, 급식을 먹을지 여부를 학생 개인의 선택에 맡겨야 하는지를 둘러싼 찬반 논쟁까지 더해졌다. 이제 화두는 '무엇을 어떻게 먹일까'로 옮겨간 셈이다.
학교급식 먹는 초등학생들. ⓒ연합뉴스
17일 정치권과 교육계 움직임을 종합하면 학교 무상급식의 지역 격차 문제가 수면 위에 오르고 있다. 전날 공개된 교육부의 '시도별 학교급식 식품비 지원 현황'에 따르면, 올해 3월 기준 초등학생 1인당 한끼 식품비는 서울이 4553원으로 전국에서 가장 높았고, 대전은 3620원으로 가장 낮았다. 두 지역의 격차는 933원으로, 대전 급식비의 약 4분의1 수준이다.
이 같은 격차가 발생하는 배경에는 학교 무상급식의 재원 구조가 있다. 학교급식 식품비는 시·도교육청이 편성하는 기본 식품비에 지자체의 추가 지원금이 더해지는 방식으로 마련된다. 지자체별 지원 규모에 따라 실제 학생들의 한끼에 투입되는 식재료비에도 차이가 생기는 것이다. 같은 '무상급식'이라 하더라도 어느 지역에 사느냐에 따라 학생들이 제공받는 급식의 질도 영향을 받는다.
물론 현재 지역별 '한끼의 질'을 따지는 단계까지 왔지만, 우리나라 학교급식이 지금처럼 자리를 잡는 데는 많은 고비들이 있었다.
1960년대 초등학교 점심시간. ⓒ연합뉴스
한국 학교급식은 한국전쟁 직후인 1953년 결식아동에게 외국 원조 식량을 제공하던 '구호급식'에서 출발했다. 당시에는 유니세프 등 외국 원조기관의 지원을 받아 빵과 분유 등을 나눠줬고, 별도의 구호급식 대상이 아니라면 학생들이 각자 집에서 도시락을 싸오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1973년 외국 원조가 중단된 뒤 자립급식으로 전환됐고, 1978년에는 학교 자체조리 급식이 시범 운영됐다.
1981년 학교급식법이 제정되면서 급식제도가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이후 1992년부터 학교급식 확대 정책이 추진되면서 1998년 전국 초등학교에서 전면급식이 실시됐고, 고등학교와 중학교로 순차 확대돼 2003년부터는 전국 초·중·고등학교에서 학교급식이 전면 실시됐다.
학교급식이 보편화되자 쟁점은 '유상급식 대 무상급식'으로 옮겨갔다. 지금으로부터 15년 전인 2011년 8월 그 논쟁이 정치권 전체를 흔들었다.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은 민주당이 다수였던 서울시의회와 서울시교육청이 추진한 전면 무상급식에 맞서 단계적 무상급식을 주장했다. 갈등 끝에 오세훈 시장은 주민투표를 발의했고, 오 시장은 같은 달 12일 차기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 데 이어 21일에는 주민투표 결과에 시장직까지 걸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2011년 8월21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에서 무상급식 주민투표 결과에 따른 시장직 진퇴 여부 연계 방침을 밝히는 긴급 기자회견을 하던 도중 무릎을 꿇고 투표 참여를 호소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사흘 뒤인 24일 치러진 주민투표의 최종 투표율은 25.7%에 그쳤다. 개표 요건인 33.3%에 미치지 못하면서 투표함은 열리지 않았고, 주민투표는 무산됐다. 오 시장은 이틀 뒤인 26일 결국 시장직에서 물러났다.
15년이 흐른 지금은 무상급식 자체가 익숙한 제도로 자리 잡으면서 고민의 내용도 달라졌다. 이번 교육부 자료에서 지역별 식품비 격차가 확인되면서, 같은 무상급식이라도 지역에 따라 학생들이 제공받는 급식에 차이가 있는 것 아니냐는 문제 의식이 커지고 있다.
여기에 학교급식의 역할 자체를 둘러싼 논쟁도 더해지고 있다. 최근 엑스(X, 옛 트위터)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학생이 싫어하는 음식까지 학교가 먹도록 지도할 필요가 있느냐는 문제 제기가 이어지고 있다.
급식을 먹을지 말지 역시 학생 개인의 선택에 맡겨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반대로 성장기 학생이 다양한 음식을 경험하고 균형 잡힌 식습관을 형성하도록 돕는 것 역시 학교의 역할이라는 반론도 나온다.
학생의 기호와 편식 문제는 실제 학교급식의 잔반 문제와도 맞물려 있다.
16일 현행 학교급식제도에 반대하는 의견들. ⓒ엑스(X, 옛 트위터) 갈무리
2019년 대한지역사회영양학회 학술지에 게재된 논문을 보면, 연구진이 경기도 학교 영양사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학교급식에서 가장 많이 발생하는 음식물쓰레기는 학생에게 제공됐지만 먹지 않고 버려지는 잔반이었다.
영양사들은 잔반 발생의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로 학생들의 편식을 꼽았다. 2022년 12월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의 협조를 받아 학부모와 학생들을 조사한 연구에서도 학생들은 생선류·채소류·잡곡류 등을 덜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학생이 먹고 싶은 것만 고를 수 있도록 할지, 학교가 다양한 음식을 경험하도록 이끌지는 단순한 선택권의 문제로만 보기는 어렵다. 현행 학교급식법은 급식의 목적으로 학생의 '건전한 심신의 발달'과 식생활 개선을 명시하고, 국가와 지자체가 영양 교육을 통해 학생이 올바른 식생활 관리능력을 기를 수 있도록 필요한 정책을 마련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해외에서도 학교급식은 단순한 식사 이상의 역할을 맡고 있다.
핀란드는 1948년부터 모든 의무교육 학생에게 무료 학교급식을 제공해온 대표적 국가다. 현재는 유치원과 초·중등학교뿐 아니라 일반·직업계 고등교육 단계 학생에게도 무료 학교 식사가 제공된다. 핀란드 교육당국은 학교급식을 단순한 영양 공급이 아니라 건강한 식습관과 지속가능성, 공동체 생활 등을 배우는 '학습 환경'으로 설명한다.
미국 뉴멕시코주 산타페이 지역 공립학교에서 점심 식사를 계산하는 학생. ⓒAP/연합뉴스
미국도 좋은 반면교사가 될 수 있다. 미국은 대한민국이나 핀란드와 달리 모든 학생에게 일률적으로 무료급식을 제공하지 않는다. 가구 소득에 따라 무료·할인급식을 지원하고, 취약계층 학생 비율이 높은 학교에서는 '지역사회 자격제도(CEP)'를 통해 별도 신청 없이 전교생에게 무료급식을 제공할 수 있다.
대신 미국에서는 학교에서 무엇을 먹이는지를 엄격하게 관리한다. 미국의 2~19세 아동·청소년 비만율은 2021~2023년 기준 21.1%로 5명 가운데 1명을 넘어섰다. 따라서 미국 연방정부는 학교급식에 과일·채소와 곡물 제공량은 물론 학년별 열량, 포화지방과 나트륨 등에 세부 기준을 두고 있다. 학교에서 먹는 한끼를 아이들의 식생활과 건강에 개입하는 정책 수단으로 활용하는 셈이다.
한국의 학교급식은 전쟁 직후 '굶는 아이에게 끼니를 제공하는 것'에서 출발해 모든 학생이 학교에서 같은 점심을 먹는 제도로 성장했다. 2011년에는 무상급식 찬반을 둘러싸고 서울시장직까지 거는 유례없는 정치적 격돌이 벌어지기도 했다.
무상급식이 보편화된 지금, 논쟁의 수준도 한 단계 더 나아가고 있다. 지역별 식품비 격차를 어떻게 줄일지, 학생의 선택권과 학교의 영양교육 사이에서 어떻게 합리적 균형점을 찾을지가 새로운 과제로 떠오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