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을 마주한 대중의 감정이 불과 몇 년 새 급격히 변했다. 이전엔 신기함이나 놀라움이 주류 정서인 듯했는데 이젠 뚜렷한 공포감이 확산하는 분위기다.
미국 선두 AI 업계에서 제기된 속도조절론이 하루이틀 만에 정치 어젠다로 부상했다. AI 발전에 제동장치가 필요하다는 이 주장은 우리 내부의 'AI 패닉'을 부채질하며 급속도로 퍼졌다. 2016년 알파고, 2022년 챗GPT, 2026년 미토스의 등장을 분기점으로 인류는 그 어느 때보다 자신을 초라하게 느끼고 있다.
인류는 그 어느 때보다 자신을 초라하게 느끼고 있지만 소설가 벵하민 라바투트는 "문학은 AI로부터 완전히 안전하다"고 단언했다. 라바투트가 9월10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2026 서울국제작가축제 기자간담회에서 질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최고로 똑똑한 사람들도 예외는 아니다. 다리오 아모데이 앤트로픽 최고경영자(CEO)가 자기 블로그에 속도조절론을 끄적거리기 하루 전, 수학계의 노벨상 '필즈상' 수상자 25인은 AI가 수학계에 해를 끼치고 있다는 비판 성명을 냈다.
이들은 AI가 "지적 노동에 대한 위협"이 되고 있으며 결국 "수학의 근간을 훼손한다"고 지적했다. 수학은 해답을 내는 것이 전부인 학문이 아니며, 문제를 푸는 과정 속에서 얻는 이해와 통찰이 오히려 수학의 본래 목적에 가깝다는 것이다. 그들은 AI로 참과 거짓을 대량 생산하는 행위가 결국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인간의 지적 능력을 파괴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고상한 말로 표현됐지만 이들의 우려는 일자리를 잃을까 전전긍긍하는 여느 일반인의 걱정과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올해 8월 수학자들이 40년 동안 쩔쩔맸던 난제를 AI가 단 두 달 만에 풀어버리는 일이 있었다. 이를 발표한 논문에선 "기적"이라는 표현이 사용됐다. 인간의 속도가 아닌 AI의 속도로 도달한 경지에선 일반적 과학의 언어도 소용없는 것처럼 말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문학계는 좀 다른 목소리를 낸다. 9월11일부터 16일까지 열린 서울국제작가축제에서 칠레 작가 벵하민 라바투트는 "문학은 AI로부터 완전히 안전하다"고 단언했다. 공포와는 거리가 멀고, 어쩌면 인간에게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 있을 자신감이 되겠다고 선언하는 듯한 목소리였다.
라바투트가 꼽은 자신감의 근원은 문학의 우수함이나 우월함이 아니라 '인간의 경험'에 있었다. 인간의 경험은 AI가 대신할 수 없기에 "AI가 훌륭한 산문을 써낼 수는 없으며 사람들은 실제 경험이 묻은 소설과 책을 찾는다"는 것이다.
글쎄, 그러나 그의 확신을 증명할 데이터는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 AI 작가가 몰래 책을 써서 출판한 뒤 인간 작가와 판매 실적을 비교해본 적도 없다. 다만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인간의 문장과 AI의 문장을 다르게 감각해낼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을지는 의문이다.
얼마 전 유튜브에서 작가들이 재밌는 시합을 했다. 인간이 쓴 문장과 AI가 쓴 문장을 가려내는 거였다. 작가들조차 인간의 문장과 AI의 문장을 헷갈려하는 지경에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정도라면 결국 매우 소수의 감식안을 가진 사람만이 AI와 인간의 차이를 알아볼 것이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 둘을 구분할 필요조차 못 느끼게 되지 않을까.
대학 교수로도 일하고 있는 신형철 평론가는 한 인터뷰에서 AI가 쓴 문장은 문학 수업에서 잘 쳐줘도 B+ 정도의 성적만 줄 수 있는 수준이라고 했다. 그는 AI 문장의 특징이 '매끄럽게' 느껴지는 것을 넘어 "미끄럽게" 느껴지는 것이라며, '거침'이나 '어려움'이 없다는 것이 AI의 가장 큰 결점이라고 지적했다.
그런데 그가 느끼는 이 감각이 몇십 년 뒤에도 살아남을 수 있을까. AI의 문장과 인간의 문장을 구분하는 능력 따위는 불과 한두 세대를 거치면서 퇴화할 불필요한 감각 아닐까. AI가 자극하는 공포감 속에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동안 잃어버릴 뻔했던 감각들을 되살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