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성중공업이 북미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시장에서 초고압변압기 수주 잭팟을 터뜨린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보호무역 기조가 오히려 효성중공업에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조현준 효성중공업 회장이 2020년 선제적으로 미국 현지에 초고압변압기 공장을 인수한 데 이어, 현재 증설까지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현준 효성중공업 회장의 초고압변압기 북미 현지화 전략이 '빅테크 직접 발주', '트럼프 자국우선주의 기조'라는 지원군을 만났다. ⓒ그래픽 허프포스트코리아
◆ 빅테크도 직접 찾기 시작한 초고압변압기, 증설로 대응
9월16일 증권업계와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DART) 등을 종합하면 북미 초고압변압기 시장의 꾸준한 성장이 전망되는 가운데, 조현준 효성중공업 회장은 미국 현지 공장 증설로 대응에 나섰다. 초고압변압기는 보통 154킬로볼트(kV) 이상을 변압하는 기기를 뜻한다.
효성중공업은 2건, 총 3865억 원 규모로 초고압변압기 등에 관한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고 9월15일 밝혔다. 2건 모두 계약 상대는 효성중공업의 미국 판매 법인 하이코아메리카세일즈엔테크(하이코아메리카)다. 하이코아메리카가 먼저 미국 빅테크 기업 2곳으로부터 프로젝트를 따내고, 이를 위해 필요한 제품 공급을 효성중공업에 맡기는 방식이다.
1건은 약 1665억 원 규모의 345kV 초고압변압기를, 다른 1건은 약 2200억 원 규모의 765kV 초고압변압기 등을 공급하는 계약이다. 효성중공업이 공급할 초고압변압기 등은 미국 남∙북부 지역에 건립되는 AI 데이터센터에 투입된다.
장남현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9월16일 보고서에서 이번 계약이 모두 하이퍼스케일러의 발주 물량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전력기기 기존 주요 고객인 유틸리티 기업뿐 아니라 데이터센터 운영 기업들까지 직접 발주에 나섰다는 것이다.
AI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는 급증하는 반면, 신규 송전망은 인허가와 건설에 오랜 시간과 많은 비용이 든다. 이 때문에 데이터센터 사업자들이 자체 발전원을 구축해 초기 전력을 확보하는 동시에, 장기적으로 필요한 계통 전력을 확보하고자 송전망·변전소 증설 비용까지 직접 부담하기 시작했다.
장 연구원은 "효성중공업의 수주는 이런 변화가 실제 초고압 전력기기 발주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며 "발전원 확보와 광역 송전망 투자가 동시에 확대되는 만큼 북미 초고압변압기 수요 증가세는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런 흐름에 맞춰 조현준 회장은 미국 현지 초고압변압기 생산능력을 키우고 있다.
조 회장은 2020년 미국 테네시주 멤피스에 위치한 초고압변압기 공장을 인수했다. 이 공장은 현재 미국에서 유일하게 765kV 초고압변압기를 설계∙생산할 수 있는 공장이다. 여러 리스크가 있다는 내부 우려에도 미국 현지 생산 거점이 향후 전력 인프라 시장 경쟁력의 핵심이 될 것이라 판단해 인수를 결정했다.
이후 2번의 증설로 생산 능력을 확장했으며, 현재 3번째 증설을 진행하고 있다. 효성중공업은 1억5700만 달러(약 2300억 원)를 투입한 이번 증설로 2028년까지 멤피스 공장의 초고압변압기 생산능력을 50% 이상 확대할 계획을 세웠다.
증설이 완료되면 멤피스 공장은 미국 내 최대 규모의 초고압변압기 생산능력을 보유하게 된다.
◆ 트럼프가 빗장 걸어도 조현준은 웃는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전력 분야에서 자국 우선주의 기조를 강화하며, 조 회장의 미국 현지화 전략은 더욱 힘을 받는 모양새다.
트럼프 대통령은 8월26일(현지시각) '미국 대규모 전력 시스템(Bulk-Power System) 보호를 위한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 명령에는 미국 관할권에 속하는 사람 또는 자산이 '외국산' '대규모 전력 시스템 전기 장비'를 취득·수입·이전·설치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이 담겼다. 외국산 전력 장비가 국가 안보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판단한 데 따른 것이며, 사실상 중국을 겨냥한 조치라고 평가된다.
명령에서 대규모 전력 시스템 전기 장비에는 변압기, 전압 조정기, 고압 차단기, 리액터, 배터리 에너지저장장치(ESS), 캐패시터, 대형 발전기, 발전 터빈, 무정전 전원 공급(UPS) 시스템 등이 포함됐다. 외국산은 미국에서 제조, 생산, 또는 조립되지 않은 제품으로 정의됐다.
이 명령에 관해 김태형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9월14일 전력 솔루션 분석 보고서에서 "미국 내 대형 변압기 생산능력을 가장 크게 확보하고 추가 증설을 진행하고 있는 효성중공업과 HD현대일렉트릭의 수혜 가능성이 제일 높다"고 판단했다. 김 연구원에 따르면 효성중공업의 2030년 미국 내 100메가볼트암페어(MVA) 초과 변압기 생산능력은 주요 전력기기 기업 가운데 1위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MVA는 전력변압기 등의 용량을 나타내는 단위로, 변압기가 안전하게 감당할 수 있는 총 전력 용량(피상전력)을 뜻한다.
손현정 유안타증권 연구원 역시 8월27일 이번 명령으로 미국 현지 생산의 전략적 가치가 상승했다고 평가했다.
손 연구원은 "이번 조치는 미국 전력망 공급망의 진입장벽 상승과 현지 생산 프리미엄 확대로 해석하는 것이 적절"하다며 "이미 미국 시장에서 높은 점유율을 확보한 한국 업체 가운데 현지 생산기지를 보유·확대하고 있는 효성중공업, HD현대일렉트릭의 경쟁우위가 더욱 강화될 수 있는 사건"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