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환경보호청(EPA)이 천연가스·석탄 발전소의 온실가스 배출량 제한 규정을 폐지했다. 그러면서 이 조치는 미국 국민들의 전기세를 낮춰주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환경단체들은 이번 방침의 목적이 데이터 센터의 전기비용을 낮추는 것이라며 비판했다.
리 젤딘 미국 환경보호청(EPA) 청장(가운데)이 2026년 9월14일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열린 G20 에너지 장관회의에서 기자회견에 참석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EPA는 14일 조 바이든 전 미국 행정부에서 제정된 신규 가스 발전소와 기존 석탄 발전소의 온실가스 배출량 제한 관련 규정을 폐지한다고 발표했다. 발전소는 미국에서 교통 다음으로 두 번째로 큰 이산화탄소 배출원이다.
이 규제에 따르면 석탄 발전소는 2039년까지 문을 닫거나, 2032년까지 배출량을 90% 감축하는 비싼 탄소 포집 기술을 도입해야 한다. 바이든 행정부 관계자들은 2024년에 이 규제로 기후 및 공중 보건 측면에서 3700억 달러(약 501조 원)의 이익이 발생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EPA는 이번 변경안 발표 성명서에서 규제 폐지로 향후 약 20년간 3100억 달러(약 420조 원)를 절감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로서 발전소 온실가스 배출 제한은 2015년에 제정된 기준으로 돌아가는데, EPA는 확정되면 기존의 모든 발전소 온실가스 배출 기준을 폐지하는 추가 규정을 제안했다.
리 젤딘 EPA 청장은 이날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열린 G20 에너지 장관 회의에서 이번 규제 폐지에 관련해 미국 국민들의 전기 요금이 인하될 것이라고 말했다.
젤딘 청장은 환경보호청 고위직을 전직 산업계 로비스트들로 채웠고, 산업계에서 반대했던 비소, 수은, 미세먼지 규제 등을 폐기하려 나섰다. 젤딘 청장 하에서 EPA는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 노력을 포기했으며 주 정부의 조치도 막았고, 공식적으로 석탄 산업을 옹호하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와의 입장과도 일치한다. 행정부 관계자들은 워싱턴포스트에 기존 온실가스 규제 기준을 모두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미국 발전소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지구 온난화에 크게 기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EPA는 발전소를 규제할 법적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다만 전문가들과 환경단체들은 이런 조치에 반발하고 있다.
질런 후버 전 EPA 고위 고문은 14일 언론에 보낸 보도자료에서 "발전소 오염 기준을 없앰으로써 트럼프 대통령은 충분히 예방 가능한 천식, 심장병, 사망까지 용인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후버 전 고문은 이어서 "데이터 센터 가동을 위해 석탄 및 천연가스 소비가 증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제에너지기구가 2025년 4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에서 데이터 센터에 공급되는 전력 가운데 40%는 천연가스 발전소에서, 15%는 석탄 발전소에서 나왔다. 그러나 국제에너지기구는 11일 미국에서 데이터 센터의 전기 수요 증가로 인해 석탄 발전량이 10%나 급등했다고 보도했다.
로이터는 지난해 12월 트럼프 대통령의 태양광·풍력 등 친환경 에너지 지원 중단과 AI 데이터 센터의 전기 수요 증가로 오래된 석탄 발전소들이 상시 가동을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이런 발전소들은 전력 수요가 급증하는 시간대에만 짧게 가동되도록 설계됐고 더 많은 오염 물질을 배출한다고 설명했다.
기후변화 대응 환경단체인 에버그린액션 피트 위코프 정책 담당 부사장은 14일 발표한 성명서에서 미국의 전력 발전 부문이 세계 5위 온실가스 배출국보다 더 많은 온실가스를 발표한다고 지적했다.
위코프 부사장은 이어서 "미국 가정은 (이번 규제 철폐로) 더 오염된 공기와 더 높은 의료비라는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며 "트럼프 대통령에게 기부금을 낸 화석 연료 기업들만 더 큰 이익을 거둘 것이다"고 비판했다.
환경방어기금, 천연자원보호협회 등 미국 내 환경단체들은 이번 규제 폐지에 대해 법적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