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대 실적을 낸 회장이 연임에 실패했다. 9월11일 KB금융지주 회장후보추천위원회는 양종희 KB금융지주 회장 대신 이재근 글로벌부문장 겸 WM·SME부문장을 차기 회장 최종 후보로 추천했다.
금융권에서는 재임 기간 내내 사상 최대 실적을 새로 써온 양 회장의 연임이 유력하다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그 예상이 깨진 것이다.
회추위가 내세운 논리는 '과감한 변화'와 '세대교체'였다. 실적과 연임의 상관관계가 끊어지고 '세대교체'가 전면에 나선 것이다.
그 파장은 곧바로 연말 은행장 인사로 내려온다. 리딩뱅크를 되찾은 이환주 국민은행장조차 연임을 장담하기 어려워졌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실적만 놓고 보면 이 행장의 명분은 탄탄하다. 다만 세대교체를 앞세운 인사에서 은행장(1964년생)이 새 회장(1966년생)보다 나이가 많은 구도에 놓였다는 점, 그리고 외부 이슈들이 변수로 남는다. 자신을 평가하게 될 회장보다 '두 살 연상'인 행장이, 새 회장 체제의 첫 계열사 인사에서 평가대에 오르게 된 셈이다.
양종희 KB금융지주 회장이 연임에 실패했다. '세대교체'를 명분으로 내세운 변화가 이환주 국민은행장의 연임에 미칠 영향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래픽 허프포스트코리아
◆ 실적으로만 보면 연임 우세, 이환주의 명분은 탄탄하다
15일 금융권에 따르면 역대 최대 실적을 낸 양 회장이 연임에 실패하면서, 국민은행장 인사에서도 평가 항목이 순이익·자산성장을 넘어 AI·디지털 전환, 자본시장 중심 머니무브 대응, 내부통제·소비자보호로 넓어질 것이라는 시선이 나온다.
KB라이프 대표였던 이 행장은 2024년 11월 인사에서 KB국민은행장 후보로 추천돼 2025년 1월 취임했다. 비은행 계열사 CEO 출신으로는 처음 국민은행장에 오른 인물이다. 첫 임기는 올해 말 만료된다.
2026년 상반기에 KB국민은행은 경쟁사 신한은행과 비교해 조금 못미치는 성적을 냈다. 국민은행은 상반기에 2조2254억 원의 순이익을 냈는데 신한은행의 2조4585억 원에 다소 못미쳤다. 지난해 동기 대비 성장률 역시 국민은행 1.7%, 신한은행 8.5%로 뒤쳐졌다.
다만 취임 첫해에 '리딩뱅크 탈환'이라는 뚜렷한 성과를 낸 것을 살피면 실적 측면에서 연임명분은 충분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상반기에 신한은행과 비교해서 순이익이 뒤쳐졌다고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금융권에서는 리딩뱅크 평가 자체를 연간 기준으로 내리고 있기도 하다.
2025년 국민은행 순이익은 3조8620억 원으로 신한은행(3조7748억 원)을 제치고 순이익 기준 리딩뱅크 자리를 되찾았다. 순이익은 전년 대비 18.8%, 영업이익은 11.3% 늘었다. 리테일 중심이던 성장축을 기업금융·WM 등으로 넓히면서도 건전성 지표는 오히려 개선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임기 동안 경영진 개인의 사법 리스크가 부각된 사례가 없었고, 내부통제 역시 취임 직후부터 강화해왔다.
◆ 세대교체 기조 속 주목받는 회장과 행장의 나이, 대추위원은 회추위원과 상당부분 겹친다
문제는 시점과 기조다. 회추위는 이 부문장을 회장 최종 후보로 추천하면서 "과감한 변화와 세대교체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표현했다. 회추위가 세대교체를 전면에 내세운 만큼, 시선은 새 회장과 현재 행장의 '나이'에 쏠릴 수밖에 없다.
이 부문장은 1966년생, 이 행장은 1964년생이다. 새 회장이 두 살 연상의 행장을 평가해 거취를 정해야 하는 구도가 형성돼있는 셈이다.
특기할 만한 점은 KB금융지주 계열사대표이사후보추천위원회(대추위)의 구성이다. 이 부문장은 최종 후보 추천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계열사 대표들 선임을 위해 대추위가 있기 때문에 거기에서 같이 논의하면서 결정을 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대추위에는 최재홍·이명활·김선엽 독립이사가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회추위가 독립이사 전원으로 구성돼 있는 만큼 두 위원회의 위원 구성은 상당 부분 겹칠 수밖에 없다. 회장 선임 과정에서 나타난 세대교체 기조가 계열사 경영진 인사까지 이어질지가 다음 관건이라는 시선이 나오는 이유다.
현재 대추위의 구성에 양 회장(위원장)과 이 행장이 포함돼 있긴 하지만 이 구성은 행장 연임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11월 양 회장이 회장직에서 내려오면 대추위원장 자리 역시 차기 회장인 이 부문장으로 바뀔 확률이 높으며, 이 행장 역시 자신의 연임 여부를 심의하는 과정에서는 이해상충을 이유로 심의에서 빠질 가능성이 크다.
다만 나이가 결정적 변수가 되지 않을 여지도 있다. 이 부문장은 위 기자간담회에서 "세대교체라는 의미는 나이로 세대교체라는 그런 의미보다는 의사결정을 좀 더 신속하고 책임 있게 할 수 있는 인물이 필요하다는 의미"라고 선을 그었다.
◆ 명분 위에 겹친 변수 둘, 세무조사와 지배구조 개편
외부 변수도 있다. 첫 번째는 세무조사다.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은 8월13일 국민은행 신관에 조사요원 30여 명을 투입해 특별세무조사에 착수했다. 조사 기간은 연말까지로, 인사 시점과 정면으로 겹친다.
조사4국은 정기 조사가 아닌 기업 탈세 의혹을 다루는 부서로, 재계에서 '저승사자'로 불린다. 조사의 구체적 대상과 사유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금융권에서는 인도네시아 현지법인 등을 비롯한 해외사업 관련 사안도 조사 대상에 포함됐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금융당국의 금융권 지배구조 개선 요구 변수도 남아있다. 특히 최근 금융감독원이 금융지주의 은행장 인사 과정에서 은행 임원후보추천위원회(임추위)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고 지적한 점이 이 행장 연임의 변수가 될 수 있다.
금융감독원이 직접 지적한 대상은 하나금융지주였다. 금감원은 7월23일 하나금융지주에 제재조치를 요구하면서 "지주가 은행 최고경영자의 최종 후보군(숏리스트) 및 최종 후보 승인 시 은행 임추위의 의견 개진 절차가 없어 은행 임추위의 의견이 충분히 평가에 반영되지 않을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감독원은 이와 함께 "금융지주는 은행 최고경영자 경영승계 시 은행 임추위가 지주 그룹 임추위에 의견을 개진하는 절차를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기 바란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지적 대상은 하나금융지주 한 곳이었지만, 금감원의 이런 태도가 올해 연말 각 금융지주의 은행장 인사 과정 전반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이 행장의 임기는 올해 말까지다. KB금융지주는 2025년 12월 16일 대표이사 임기가 만료되는 계열사들의 인사를 발표한 바 있다. 다만 올해는 이 부문장이 11월 20일 임시주총에서 신임 회장으로 공식 선임된 뒤 처음 단행하는 인사인 만큼 인사 시기와 폭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