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산하기구인 유니세프는 전 세계 21개국의 12~17살 아동 및 청소년 5명 가운데 1명이 디지털 성착취 또는 성학대를 경험하는 조사 결과를 내놨다. 특히 SNS 외에 게임을 통한 디지털 성착취라는 '새로운 형태'가 확산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유니세프가 3일 정책보고서를 통해 "인터넷을 이용하는 21개국의 12~17살 아동 및 청소년 20%가 디지털 기술을 이용한 성적 학대 또는 착취를 경험했다"는 조사결과를 내놨다. ⓒAP통신/연합뉴스
유니세프(유엔아동기금)는 3일(현지시각) 정책보고서를 통해 전 세계 21개국의 12~17살 아동 및 청소년 약 2천만 명이 한 해 동안 최소 한 가지 형태의 디지털 성착취 및 성학대에 노출됐다고 밝혔다. 조사 대상자 5명 중 1명 꼴로 피해를 당한 셈이다.
해당 조사는 캄보디아, 에티오피아, 인도네시아, 브라질, 멕시코 등 21개국에서 인터넷을 사용하는 12~17살 아동 및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로 진행됐다.
유니세프 보고서를 보면 약 1500만 명 이상의 아동 및 청소년이 원치 않는 성적 콘텐츠에 무방비로 노출되었고, 900만 명은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성적인 대화를 강요받은 적 있었다. 특히 400만 명의 아동이 자신의 성적 이미지가 동의 없이 유포된 것으로 추산됐다.
전체 사례의 57%는 또래, 연인, 친구, 가족 구성원 등 주변에서 알고 있던 사람에 의해 피해를 입었다.
온라인 성착취는 절반 이상이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틱톡 등 소셜미디어 플랫폼을 통해 이뤄졌다. 다만 14%는 게임 공간에서 이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대상자 중 300만 명에 가까운 수치다.
미국의 경영 컨설팅 업체 베인앤컴퍼니가 2024년 발표한 분석에 따르면 2살에서 18살 사이의 전 세계 인구 80%가 게임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세계 인구 중 약 15억에서 18억 명에 달하는 수치다.
게임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다르게 ‘소통’이 아닌 ‘놀이’를 위해 온라인 공간에 접속한다. 게임을 함께 하면서 가상공간에서 자연스럽게 친밀감이 쌓이는데, 가해자들이 이를 악용해 아동 및 청소년을 대상으로 성착취를 자행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게임의 다양한 기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많은 게임에서는 채팅, 친구 추가, 선물 교환 등 다양한 형태의 ‘사회적 관계 맺기’가 가능하다. 사회적 관계가 구축되는 만큼 악용의 가능성도 높아질 수 있다. 유니세프는 게임 공간을 통한 성착취 사례를 두고 “새로운 형태의 온라인 착취”라고 바라봤다.
실제 우리나라에서도 2022년 4월 게임 아이템을 미끼로 초등생을 꾀어낸 뒤 성 착취물을 제작한 남성이 붙잡혀 재판에서 실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가해자는 게임 채팅방을 통해 피해자와 친밀감을 쌓았고, 게임 아이템과 승급 방법 등으로 유인했다. 이렇게 신체 일부 사진이나 동영상을 넘겨받아 온라인에 올려 유포했다.
아동 및 청소년 대상 성착취는 심각한 후유증을 남긴다. 유니세프는 보고서를 통해 “디지털 성 착취에 노출된 아동은 그렇지 않은 아동에 비해 자살 충동이나 자해를 경험할 가능성이 4배 더 높으며 불안 수준 또한 유의미하게 높다”고 분석했다.
실제 멕시코나 북마케도니아에서는 학대를 경험한 아동의 자살 충동이나 행동 위험이 8배 이상 높았고, 파키스탄에서는 자해 위험이 7배 이상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캐서린 러셀 유니세프 사무총장은 “이 보고서는 가슴 아픈 현실을 드러낸다”며 “2천만 명이 넘는 아동이 친구들과 소통하는 디지털 공간에서 성적 괴롭힘을 경험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러한 경험은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초래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며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