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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당신은 인간입니까?”라는 질문에 답해야 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

[허프 생각] 로봇이 아닙니다 AI가 게임을 통과해 '인간 증명서'를 받았다 : 이제 인간이 '인간'을 증명해야 한다
AI와 인간이 '나는 로봇이 아닙니다'라는 질문을 바라보고 있다. AI 합성 이미지

샤리프 샤밈 오픈AI 개발자는 8일(현지시각)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인공지능 모델 GPT-6 아스트라에게 ‘로봇이 아닙니다’(I'm Not a Robot)라는 게임을 시킨 결과를 공개했다. 인간과 로봇을 가려내는 인증 절차 ‘캡차’를 소재로 만든 게임으로, 모두 48단계로 구성됐다. AI는 48개의 관문을 모두 통과했다. 그리고 마지막에 받아든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인간 증명서’였다. 

캡차는 인터넷 접속자가 사람인지 자동화 프로그램(봇)인지 구별하기 위한 인증 방식이다. 예를 들어 웹사이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로봇이 아닙니다’ 체크박스, 여러 장의 사진 가운데 신호등·횡단보도·오토바이를 고르는 문제, 찌그러진 문자를 알아보고 입력하는 것 등을 말한다. 기계는 캡차라는 문턱에서 걸렸고, 인간은 이건 인간만이 할 수 있다고 안심했다. 그런데 그 문턱이 사라지고 있다.

물론 게임 속 증명서가 AI에게 실제 인간성을 부여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묘한 질문 하나는 남긴다. 인간과 AI를 적어도 인터넷 상에서 구별할 수 없게 된다면, 우리는 무엇을 인간의 기준으로 삼아야 할까.

이미 사진만 보고 인간이 만든 것인지 AI가 만든 것인지 구별하기 어려워졌다. 영상도 그렇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카메라를 바라보며 말한다. 일어나지 않은 사건·사고가 실제 뉴스 화면처럼 움직인다. 목소리까지 복제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AI가 만든 이미지에는 흔적이 남았다. 손가락이 여섯 개이거나, 눈의 초점이 묘하거나, 배경 어딘가가 뒤틀렸다. 사람을 닮았지만 사람이 아닌 것 같은 기묘한 느낌, 이른바 ‘불쾌한 골짜기’였다. 그런데 이제 그 골짜기마저 빠르게 메워지고 있다.

흥미로운 건 AI의 흔적이 사라질수록 사람들이 오히려 ‘사람의 흔적’을 찾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MBC 괴담 예능 프로그램 ‘심야괴담회’에서 AI로 만든 영상이 등장했을 때도 그랬다.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AI 영상 대신 배우를 써달라는 항의 목소리가 나왔다. 프로그램은 배우가 연기하는 재연을 중심에 두면서 일부 장면에는 AI 영상을 활용하고 있다.

왜 굳이 사람이어야 했을까. 어쩌면 우리가 콘텐츠에서 보고 싶은 것은 완성된 결과물만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이 카메라 앞에 섰다는 사실, 누군가 표정을 만들고 몸을 움직이며 연기했다는 사실, 그 장면 뒤에 사람의 시간과 수고가 있었다는 흔적까지 우리는 함께 보고 있었던 것 아닐까. AI가 그럴듯한 결과물을 순식간에 만들어낼수록 역설적으로 ‘사람이 만들었다’는 사실 자체가 가치가 되기 시작한다.

이미 AI를 활용한 새로운 창작자가 빠르게 늘고 있다. 전문 기술 없이 AI로 영상을 만드는 사람, 몇 줄의 프롬프트로 이미지를 만드는 사람, AI와 함께 노래를 만들고 뮤직비디오까지 완성한다. 창작의 문턱은 낮아지고 결과물은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그러니 질문은 점점 복잡해진다. AI로 만든 작품은 누구의 작품인가. 사람의 창작은 어디까지이고 AI의 창작은 어디서부터인가. 둘의 결과물이 눈과 귀로 구별되지 않는 순간, 사람이 만들었다는 사실은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을까.

그런데 ‘누가 만들었는가’만큼 중요한 질문이 하나 더 생기고 있다. ‘누가 고르는가’다. 지금까지는 인간이 AI를 선택했다. 어떤 AI를 쓸지 고르고, 무엇을 물어볼지 결정했다. AI가 내놓은 답 가운데 무엇을 믿을지도 인간의 몫이었다.

그런데 AI는 어느새 ‘있으면 편리한 것’에서 ‘없으면 불편한 것’으로 넘어가고 있다. 그러면서 관계도 뒤집히기 시작했다.

검색창에 단어 몇 개를 입력하고 링크를 하나씩 눌러보는 대신 AI에게 묻는다. 쇼핑을 할 때도 수십 개의 상품을 직접 비교하는 대신 “나한테 가장 좋은 걸 골라줘”라고 말한다. 여행지를 고르고, 식당을 찾고, 보험을 비교하는 일도 AI에게 맡길 수 있다.

AI는 이제 인간의 손발을 대신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읽고, 비교하고, 판단하고, 마침내 선택하는 일까지 대신한다.

그러자 인간이 AI를 고르던 시대에서, AI가 인간(또는 인간의 생산물)을 고르는 시대로 가고 있다. 기업은 사람에게 발견되기 전에 AI에게 발견돼야 한다. 언론은 독자가 기사를 클릭하기 전에 AI가 그 기사를 읽고 인용해야 독자에게 닿을 가능성이 생긴다. 크리에이터의 콘텐츠도, 식당도, 호텔도, 상품도 마찬가지다.

그러면서 인간에게 두 가지 과제가 생긴다. AI가 만든 글과 인간이 쓴 글이 구별되지 않는 세상에서 내가 쓴 글과 찍은 사진, 영상이 ‘인간의 것’임을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수많은 정보와 상품 가운데 AI가 몇 개만 골라 인간에게 보여주는 세상에서 나는 어떻게 그 몇 개 안에 들어갈 것인가. 그 결과 ‘인간임을 증명하는 것’과 ‘AI에게 선택받는 것’.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아야 한다.

우리는 AI가 인간처럼 생각하고, 말하고, 만들기를 바랐다. 더 자연스럽게 말하고, 더 그럴듯하게 판단하도록 가르쳤다. 그런데 AI가 정말 인간처럼 보이기 시작하자 인간은 다급히 인간과 AI 사이의 선을 긋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선은 계속 흐려지고 있다.

그래서 앞으로의 질문은 ‘AI가 인간처럼 할 수 있는가’가 아닐지도 모른다. 이미 AI가 인간이 하던 많은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질문은 인간에게 돌아온다. AI와 구별되지 않는 세상에서 우리는 무엇으로 인간임을 증명할 것인가. AI가 선택하는 세상에서 인간은 무엇으로 선택받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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