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에는 'AI가 인간을 넘어설 수 있는가'를 물었다면, 오늘 우리는 'AI와 무엇을 만들 것인가'를 묻고 있다."
정재헌 SK텔레콤 대표이사 사장이 서울대학교 학생들에게 건넨 말이다. 그는 최근 인공지능(AI) 시대를 통과하는 기업 수장으로서 품고 있던 질문을 학생들과 직접 공유하는 자리를 가졌다.
정재헌 SK텔레콤 대표이사 사장이 9월1일 서울대학교 제1공학관에서 'AI 시대의 선택과 기회'를 주제로 특강을 진행했다. ⓒSK텔레콤
SK텔레콤은 정 사장이 9월1일 서울대학교 제1공학관에서 'AI 시대의 선택과 기회'를 주제로 대학(원)생 300여 명에게 특강을 진행했다고 9월2일 밝혔다.
이번 강연은 SK텔레콤이 서울대와 10년간 운영해온 AI 공동과정과 연계돼 이뤄졌다. 정 사장은 1987년 서울대 공법학과에 입학한 뒤 약 40년 만에 모교 강단에 섰다.
정 사장은 "기술을 가르치러 온 것이 아니라, AI 전환의 최전선에 있는 한 기업이 지금 무엇을 고민하는지 나누기 위해 왔다"는 말로 강연을 시작했다.
이어 그는 학생들에게 "우리는 지금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가"라고 물으며 AI가 등장하면서 누군가의 하루는 240시간이나 2400시간이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AI가 시간의 밀도를 바꿔놓으면서 기존의 원칙들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 사례로는 챗GPT의 확산 속도를 들었다. 대중화까지 자동차는 60여 년, 휴대폰은 10여 년이 걸렸지만 챗GPT는 단 1개월 만에 사용자 5천만 명을 넘어섰다.
정 사장은 과거 석유와 반도체가 그랬듯 AI 역시 기업을 넘어 국가 간 경쟁으로 번지고 있다며, 남의 기술에 기대면 가격도 조건도 스스로 정할 수 없기 때문에 '소버린 AI'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SK텔레콤이 1년 동안 AI 전환을 시도하며 발견한 'AX(AI 전환)의 J커브' 패턴을 소개하기도 했다.
'J커브'는 원래 환율과 무역수지의 관계를 설명하는 경제학 이론이다. 환율이 오르면 무역수지가 곧바로 개선될 것 같지만, 수출입 물량이 조정되기까지 시차가 있어 초기에는 오히려 악화되는데 이 궤적이 알파벳 J를 닮아 붙은 이름이다.
정 사장은 이 개념을 AX에 적용했다. AI를 도입하면 곧바로 효율이 높아질 것 같지만 재교육, 업무 재설계, 데이터·조직 정비 등 기술혁신과 생산성 사이의 시차로 되레 떨어진다. 그러나 이 침체기를 견딘 조직은 어느 순간 생산성이 가파르게 상승한다고 봤다.
그는 "불편함의 골짜기 앞에서 돌아서면 영원히 곡선의 왼쪽에 머물지만, 이를 견뎌낸 조직은 어느 순간 J자로 꺾여 올라간다"며 "낯설게 보기, 극한 마주하기, 불편해지기가 바로 이 골짜기를 건너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낯설게 보기'는 '이 일은 꼭 사람이 해야 하는가', '이 순서가 최선인가'처럼 당연하게 여겨온 전제를 의심해 새로운 가능성을 찾는 것이다.
'극한 마주하기'는 스스로를 극한 상황에 밀어 넣는 도전을 뜻한다. 기존 방식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목표를 설정해 동력으로 활용하는 방법이다.
'불편해지기'는 AI 전환 초기 단계에 발생하는 불편함을 이겨내는 것을 의미한다.
정 사장은 "AI가 모든 것을 결정할 것 같은 시대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며, "주도성을 가지고 스스로 방향을 정하는 통찰력과 공감 능력이 경쟁력"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기술은 AI가 점점 더 잘할 것이기에, 사람만이 가진 근육이 인재의 조건이 된다"며 "가치를 판단하고 결정하는 일은 끝까지 사람의 몫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