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천 명 넘는 목숨을 앗아간 대홍수를 겪은 네팔이 국제사회에 ‘기후 배상’을 요구하고 나섰다.
시시르 카날 네팔 외무장관. AFP/ 연합뉴스
기후위기에 거의 기여하지 않은 네팔이 막대한 인명·경제적 피해를 떠안는 것은 부당하다며 중국과 미국, 인도 등 주요 온실가스 배출국의 책임을 공개적으로 거론했다.
1일(현지시간) 네팔 일간 카트만두포스트에 따르면, 시시르 카날 네팔 외무장관은 칸티푸르TV 시사 프로그램 '파이어사이드(Fireside)' 인터뷰에서 "일반적인 홍수가 아니었다. 파고가 20~30미터에 달하고 속도가 시속 180킬로미터에 이르는 이 재해는 마치 토네이도와 같은 위력을 지닌 재앙이었다"며 "히말라야 쓰나미라고 부르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2026년 8월29일 네팔 누와콧 지역 데비가트의 트리슐리강 일대에서 발생한 돌발 홍수가 지나간 자리에서 구조대원들이 진흙과 잔해, 산사태로 뒤덮인 현장 속에서 생존자를 차고 있다. ⓒAP/연합뉴스
카날 장관은 "네팔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사실상 미미한 수준"이라며 "그런데도 우리는 우리가 만들어내지 않은 세계적 위기의 가장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빙하가 급속하게 녹고, 이처럼 파괴적인 '산악 쓰나미'가 발생하는 것은 전 지구적 기후변화의 직접적인 결과"라고 주장했다.
네팔이 기후 배상을 요구하는 배경에는 기후위기에 대한 책임과 피해 사이의 격차가 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공동연구센터에 따르면 2024년 네팔이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에서 차지한 비중은 0.08%에 불과하다.
네팔 정부는 외교의 틀을 '원조(aid)'에서 '정의와 보상(justice and compensation)'으로 전환하고 있다고 했다. 카날 장관은 "세계 최대 온실가스 배출국인 중국을 비롯해 2위인 미국, 3위인 인도와 같은 주요 산업 배출국들은 네팔과 같은 취약국에 보상해야 할 역사적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문명 자체의 생존이 걸린 문제"라며 "히말라야의 빙하가 사라진다면 갠지스강과 트리슐리강 같은 하천에 의존하는 남아시아 20억 명 이상의 물 안보가 영구적으로 위협받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단지 네팔만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다"며 "남아시아 문명의 생존을 위해 주장하고 있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네팔 정부는 실제 기후재원 확보에도 나섰다. 카트만두포스트에 따르면 네팔 정부는 국제 파트너들에게 기후 보상을 요구하는 공식 서한을 보냈다. 이와 별도로 기후변화로 피해를 본 개발도상국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 국제 ‘손실과 피해 대응 기금’에도 이번 재난 복구를 위한 긴급 자금 지원을 요청했다.
이번 재난은 지난달 26일 네팔 북부 히말라야 지역에서 발생했다. 대규모 암반과 빙하가 붕괴하면서 막대한 양의 얼음과 암석이 계곡으로 쏟아졌고, 이 과정에서 하천이 일시적으로 막혔다가 터지면서 거대한 물과 토사가 하류의 마을과 도로, 발전시설을 덮친 것으로 보고 있다.
2026년 9월1일(현지시각) 네팔 카트만두에서 네팔 경찰들이 돌발 홍수로 숨진 희생자들의 시신을 집단 매장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인명 피해 규모도 계속 불어나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1일 사망자가 1050명 이상으로 늘었고 약 4천 명이 실종 상태라고 보도했다. 실종자 가운데 외국인은 583명이다. 구조대의 접근이 어려운 산악지역도 남아 있어 피해 규모가 더 커질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네팔이 요구하는 ‘기후 배상’은 실제로 가능할까.
기후 배상 문제가 국제사법재판소(ICJ)의 판단을 받은 계기는 남태평양 섬나라 바누아투였다. 기후위기로 해수면 상승 등의 위협을 받아온 바누아투가 국제사회의 논의를 주도했고, 유엔총회는 2023년 국가들이 기후변화에 대해 어떤 국제법적 의무와 책임을 지는지 ICJ에 권고적 의견을 요청했다.
ICJ는 2025년 7월 내놓은 권고적 의견에서 국가가 기후체계를 보호하기 위한 국제법상 의무를 부담하며, 이를 위반할 경우 국가책임이 발생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문제는 기후변화의 책임을 특정 국가에 얼마나 물을 수 있느냐다. 기후변화는 여러 국가가 수십 년간 배출한 온실가스가 누적돼 발생하는 만큼 특정 국가의 배출이 특정 지역의 재난으로 이어졌다는 인과관계를 입증하기가 쉽지 않다.
ICJ 역시 실제 배상 책임은 개별 사안에서 국제법 위반과 구체적인 피해 사이의 인과관계를 따져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다만 여러 국가가 기후변화에 함께 영향을 미쳤다는 이유만으로 개별 국가가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봤다.
기후재난은 네팔 경제의 핵심인 수력발전 산업도 흔들고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번 홍수로 피해를 본 네팔의 수력발전 설비는 431MW에 달한다. 네팔 전체 발전능력의 약 10%에 해당한다. 네팔은 홍수 이후 전력 수출을 중단하고 인도에서 전기를 수입해야 했다.
경제적 피해도 막대하다. 로이터통신은 이번 재난에 따른 재건 비용이 40억~5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고 전했다. 네팔 국내총생산(GDP)의 약 10%에 해당하는 규모다.
네팔이 던진 이 질문은 기후위기로 피해를 보는 개발도상국들이 주요 온실가스 배출국에 책임을 요구해온 국제사회의 ‘기후정의’ 논쟁과도 맞닿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