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조2580억 원 규모의 초대형 석유화학 시설 '샤힌 프로젝트' 가동을 앞두고 재무 부담이 가중되던 에쓰오일이 최근 글로벌 정유 시장의 겹호재 덕분에 한숨을 돌리게 됐다.
미국의 정제마진이 역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데다, 에쓰오일의 최대 수입 유종인 사우디아라비아산 원유의 공식판매가격(OSP)마저 구조적 약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에쓰오일이 200%에 육박하는 부채비율 속에서 정제마진 강세와 사우디아라비아의 원유 공식판매가격(OSP) 인하라는 호재를 맞았다. ⓒ에쓰오일
◆ 정제마진 강세로 수혜 예상
8월31일 KB증권에 따르면 미국 3:2:1 정제마진이 역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3:2:1 정제마진은 3배럴의 원유가 2배럴의 휘발유와 1배럴의 디젤로 정제된다는 가정 아래 산출된 원유와 석유 제품의 가격 차이를 뜻한다.
최근 정제마진이 강세를 보이는 이유는 원유 조달 여건이 개선된 반면 석유 제품 공급은 더딘 회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또 낮은 석유 제품 재고 수준 역시 정제마진 강세를 지지하고 있다.
이에 관해 이진명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8월28일 정유 산업 분석 보고서에서 "원유 조달 여건은 개선되고 있지만 제품 공급 회복은 더디다"며 "2014년 4월 이후 최저를 기록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상업용 석유 재고 등은 이번 정제마진 강세 사이클의 지속성을 높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시아 정유 기업들의 수익성 지표로 여겨지는 싱가포르 복합 정제마진 역시 최근 강세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에쓰오일은 비교적 높은 설비 고도화율로 이번 정제마진 강세 국면에서 수익성을 키울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고도화율이 높으면 수요가 강한 석유 제품의 생산 비중을 높여 실적에 빠르게 반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설비 고도화율은 상압증류시설(CDU) 대비 중질유 분해시설 비중을 뜻한다.
한국신용평가의 3월25일 보고서에 따르면 에쓰오일의 설비 고도화율은 39%로 국내 주요 정유 기업 4곳 가운데 2위였다. 1위는 HD현대오일뱅크(42%), 3위는 GS칼텍스(34%), 4위는 SK에너지(25%)였다.
◆ OSP 약세 국면 지속될 전망
여기에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에너지 기업 아람코(Aramco)가 원유 가격을 낮게 책정하려는 경향을 보이는 것 역시 에쓰오일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아람코는 에쓰오일의 최대 원유 조달처이자 모회사이기 때문이다.
아람코는 아시아향 아랍경질유(Arab Light) 공식판매가격(OSP)을 7월 +9.5달러에서 8월 -1.5달러, 9월 -2달러로 하향 조정했다. OSP는 기준 유가와의 배럴당 가격 차이를 뜻하며, 아람코는 두바이유·오만유의 평균 가격을 기준으로 삼고 OSP를 정한다. 아람코의 OSP가 -2달러라는 것은 두바이유·오만유 평균 가격보다 배럴당 2달러 저렴하게 팔겠다는 뜻이다.
이에 관해 황규원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8월28일 에쓰오일 분석 보고서에서 "9월부터 사우디 원유 OSP 하락 효과가 시작된다"며 "OSP가 1달러 하락하면 에쓰오일의 연간 영업이익은 3천억 원 늘어난다"고 내다봤다.
사우디의 이런 공격적 OSP 인하 기조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과 사우디 사이의 원유 패권 다툼이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8월29일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Truth Social)에서 "미국은 베네수엘라와 세계 역사상 최대 규모의 원유 계약을 체결했다"며 "베네수엘라 원유 650억 배럴에 관한 실질적 지배권을 확보했다"고 말했다.
이번 협정을 계기로 미국 석유 기업들의 베네수엘라 진출이 가속화해, 중장기적으로 베네수엘라의 원유 생산량은 크게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베네수엘라의 원유 매장량은 약 3030억 배럴로 세계 1위지만, 생산 인프라 부족 등의 이유로 2026년 7월 생산량은 하루 평균 116만 배럴에 그쳤다.
윤재성 하나증권 연구원은 8월31일 에너지·화학 분석 보고서에서 이번 미국·베네수엘라의 계약에 관해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균열을 유발하고 전통 에너지 중심의 패권 장악을 위한 미국의 노림수"라며 "베네수엘라 원유 생산량 확대로 아시아에 베네수엘라 원유가 직접 유입되거나, 미국 내에서 베네수엘라 원유 사용량이 늘어나며 기존 미국에서 쓰이던 캐나다·멕시코·사우디 원유의 아시아 유입이 확대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두 가지 사례 모두 사우디 및 중동 입장에서는 경쟁자가 늘어나는 구조"라며 "호르무즈 사태 이후 아시아의 중동 의존도 축소와 결합되면 사우디의 OSP는 구조적으로 약세를 시현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 재무 부담 있지만 완공 후에는 현금 창출 기대돼
샤힌 프로젝트는 에쓰오일이 2027년 1월 상업 가동을 목표로 울산에 건설 중인 세계 최대 규모의 석유화학 시설이다. 저부가가치 중유 제품들을 분해해 스팀크래커 원료로 전환하는 TC2C 공정이 세계 최초로 상업적으로 적용돼, 완공 시 기존 크래커 대비 경쟁력을 확보할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샤힌 프로젝트 진행과 동시에 에쓰오일의 재무 부담도 빠르게 불어났다는 점이다.
샤힌 프로젝트에 관한 에쓰오일의 자본적지출(CapEx)은 투자를 결정한 2022년 406억 원으로 시작해, 2023년 1조4636억 원, 2024년 2조6070억 원, 2025년 3조3560억 원까지 늘었다. 2026년 상반기에는 6550억 원을 지출했다.
에쓰오일의 연결기준 부채비율도 2022년 131.2%에서 2023년 138.7%, 2024년 181.2%, 2025년 198.8%까지 증가했다. 2026년 상반기에는 199.9%를 기록했다.
나이스신용평가는 6월25일 에쓰오일 평가 보고서에서 "샤힌 프로젝트 추진에 따라 대규모 투자부담이 발생하며 순차입금 규모가 확대됐다"며 "샤힌 프로젝트의 기계적 완공시점인 2026년까지는 투자 부담이 지속되는 가운데 잉여현금흐름은 마이너스를 기록할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도 "다만 샤힌 프로젝트 완공 이후 우수한 원가경쟁력 등을 기반으로 한 수익성 개선으로 현금흐름 창출력의 개선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