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상반기 자살사망자가 지난해보다 12.7% 줄었다는 통계가 나왔다. 감소한 숫자는 910명이다.
자살 통계의 숫자 하나하나에는 한 사람의 삶과 그 곁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다. 오랫동안 높은 자살사망률이라는 무거운 숙제를 안고 있는 한국에서 이 변화가 더욱 반가운 이유다.
나종호 미국 예일대 의과대학 정신의학과 교수가 8월27일 엑스 계정에 통계 자료를 올렸다(왼쪽). 나종호 교수는 2023년 1월18일 방송된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했다. ⓒ나종호 엑스 계정/tvN
나종호 미국 예일대 의과대학 정신의학과 교수는 지난 27일 엑스(X·옛 트위터)에 ‘2026년 상반기 자살사망자 수 통계’를 올리며 "작년에 비해 910명, 12.7% 감소했다"고 전했다.
이어 "온 국민이 기뻐해야 할 내용이라 생각한다"며 "하지만 이 문제마저 정파적으로 접근하고 온 국민의 성원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앞으로 어떤 정부, 어떤 정치인도 이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이렇게 빨리 결과가 나올 수 있는 일이었는데, 지난 20년을 방치했나 안타깝기도 하다"며 "사랑하는 이를 자살로 잃은 모든 이들께 깊은 위로를 전한다"고 말했다.
앞서 나 교수는 지난 26일 엑스에 "자살률 감소가 단순히 한 정부의 성과가 아니라 자살 위험의 최전선에서 노력 중인 현장의 활동가, 그동안 꾸준히 여론을 환기한 각계각층의 전문가, 그리고 이 문제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은 국민 전체가 함께 만들어낸 성과로 기억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8월28일 엑스에 글을 올렸다. ⓒ이재명 엑스 계정
이재명 대통령도 나 교수의 글에 반응했다. 이 대통령은 28일 나 교수의 글을 공유하며 "현재 자살자 수의 절반은 더 줄여야 한다"며 "인력, 조직, 예산 등 현실적 대응조치도 중요하지만, 가장 근본적인 대책은 희망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고, 희망만들기의 가장 핵심은 먹고 사는 문제 즉 민생 개선"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나 교수는 같은 날 다시 엑스에 글을 올렸다. 그는 "대통령께서 제 포스팅을 공유해주셨다"며 "저는 한국 자살문제 대응을 위해 윤석열 전 대통령께도 간곡히 조언드린 바 있고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누구라도 만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자살을 막기 위한 저의 진심은 정치적 논리에 갇히기엔 너무 간절하다"며 "이 감소세가 계속 이어지길 간절히 기원한다"고 말했다.
나 교수가 자살 문제를 두고 목소리를 내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특히 언론과 사회에서 널리 쓰이는 ‘극단적 선택’이라는 표현을 두고 꾸준히 문제를 제기해왔다.
나 교수는 2023년 1월18일 방송된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해 "언론에서 자살을 보도할 때 중요한 것이 자살이 선택의 일부인 것처럼 보여지면 안 된다"고 말했다.
그가 문제 삼은 것은 ‘극단적 선택’이라는 말 속에 들어 있는 바로 그 ‘선택’이라는 단어다. 자살을 개인이 의지를 갖고 선택한 행위로 표현할 경우, 힘든 상황에 놓인 사람이 택할 수 있는 하나의 가능성처럼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정신질환으로 세상을 떠난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도 짚었다. 나 교수는 자살로 사망한 사람 가운데 정신질환을 앓았던 사람이 많다고 설명했다. 암으로 사망한 사람에게는 병과 싸웠다는 의미에서 ‘투병했다’고 표현하면서, 정신질환으로 세상을 떠난 사람에게는 죽음을 ‘선택했다’고 표현하는 것이 부정적인 뉘앙스를 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선택’이라는 단어는 남겨진 사람들에게도 무거운 말이 될 수 있다. 나 교수에 따르면 자살 유가족들이 실제로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 가운데 하나가 ‘네 가족이 왜 그런 선택을 했냐’라는 질문이다. 가족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으로 괴로워하는 유가족에게 ‘극단적 선택’이라는 표현이 그 죄책감을 더욱 가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살이라는 단어를 직접 쓰지 않는 것이 자살 예방에 도움이 될까. 나 교수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자살이라고 표현하고 있다"며 "완곡한 표현이 자살을 예방한다거나 자살을 줄이는 데에 도움이 된다는 근거가 별로 없다"고 말했다.
‘선택’을 강조하는 표현이 사람들의 인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살펴본 연구도 있다. 나 교수는 2022년 7월20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독일에서 진행된 한 연구를 소개했다. 연구 참여자들에게 같은 내용의 기사를 보여주되 한쪽에는 ‘자살’, 다른 쪽에는 ‘자유사’라는 표현을 사용한 뒤 각각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 살펴본 연구였다.
나 교수는 "개인의 의지를 중요시하는 느낌의 '자유사' 용어를 접한 사람들이 오히려 자살을 지지하고, 가능한 옵션(선택)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보였다"며 "그런 면에서 극단적 선택이라는 표현이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결국 그가 강조하는 것은 불편한 단어를 다른 말로 바꾸는 것만으로 문제가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나 교수는 에세이에서 ‘극단적 선택’이라는 용어를 두고 "자살을 외면하려는 자세가 반영된 신조어일지 모른다"며 "그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지 않는 이상, 이 문제는 영원히 해결될 수 없을 것"이라고 글을 남기기도 했다.
나 교수는 서울대 심리학과를 졸업한 뒤 서울대 의학전문대학원에 진학했으며, 하버드 보건대학원과 뉴욕대 레지던트 과정을 거쳐 현재 예일대 의과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정신과·중독정신의학 전문의다. 저서로 ‘뉴욕 정신과 의사의 사람 도서관’과 ‘만일 내가 그때 내 말을 들어줬더라면’이 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 또는 SNS 상담 ‘마들랜’(마음을 들어주는 랜선친구)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