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보수 정치인들이 왕실을 겨냥한 비방을 처벌하는 ‘불경죄’의 부활시키려 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마이니치신문은 21일, 지난 7월 개정 왕실전범 통과 이후 일본 보수진영 의원들을 중심으로 왕실과 왕족을 비방·명예훼손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법적 장치를 마련하려는 움직임이 확산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일본의 나루히토 일왕과 마사코 황후가 2026년 8월15일 일본 도쿄 부도칸에서 열린 제2차 세계대전 종전 81주년 기념 추도식에 참석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번에 개정된 왕실전범은 1947년 왕족에서 제외된 옛 11궁가 출신의 남계 남성을 양자로 받아 왕족이 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양자 대상은 옛 왕족 남성의 남계 자손 가운데 15세 이상이면서 배우자와 자녀가 없는 남성으로 규정됐다.
옛 11궁가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인 1947년 왕족에서 이탈한 가문들이다. 개정 왕실전범에 따라 이들 가문 출신 남계 남성이 현재 왕족의 양자가 되면 왕족이 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이 때문에 일본 보수계에서는 새롭게 왕족이 될 가능성이 있는 옛 궁가 남성들을 지금부터 비방과 허위 정보로부터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자민당 내 보수 성향 의원들로 구성된 ‘일본의 존엄과 국익을 지키는 모임’은 지난 7월 ‘왕족 보호 프로젝트팀(PT)’을 출범시켰다. 대표를 맡은 아오야마 시게하루 중의원 의원은 개정 왕실전범에 따라 양자 대상이 되는 옛 11궁가의 남계 남성들을 두고 “이미 본인이나 가족을 향한 비방·중상의 조짐이 충분히 나타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앞으로 왕족으로 양자가 될 의향을 가진 사람이 비방과 중상 때문에 마음을 바꾸는 일이 없도록 보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정부와 연계해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입법부의 책임”이라며 “입법 조치가 필요한 부분도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일본 형법에도 명예훼손죄와 모욕죄가 있다. 하지만 두 범죄 모두 피해자 등의 고소가 있어야 처벌할 수 있는 친고죄다. 왕족을 대상으로 한 비방이 발생할 경우 당사자인 일왕이나 왕족이 직접 국민을 고소해야 하는 현행법의 한계가 이번 법제화 움직임의 배경으로 꼽힌다.
문제는 여기서 과거의 ‘불경죄’가 소환된다는 점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 일본에는 일반적 명예훼손죄와 별도로 일왕과 왕실을 특별히 보호하기 위한 불경죄가 존재했다. 하지만 ‘불경한 행위’라는 개념이 추상적이어서 어디까지 처벌 대상인지 명확하지 않았고, 권력에 따라 자의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불경죄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국헌법이 시행되면서 폐지됐다.
보도에 따르면, 일본 보수당은 한발 더 나아가 왕족을 대상으로 한 명예훼손이나 모욕을 친고죄가 아닌 비친고죄로 전환하는 방안을 제안하고 있다. 과거 불경죄 역시 비친고죄였다. 이 때문에 일본 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일본 SNS에서는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왕실을 겨냥한 악의적인 비방을 막기 위한 법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는 반면, 이번 움직임을 두고 “불경죄 부활과 다를 게 없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특히 아직 실제 왕족이 되지도 않은 옛 궁가의 남계 남성을 보호하기 위해 법까지 만들어야 하느냐는 냉소적인 반응도 나온다. 일부에서는 “왕족을 보호하려면 먼저 현재의 왕실부터 보호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기존 왕실 논쟁과 연결해 비판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