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 홍보의 새로운 얼굴로 떠오른 공무원들이 악성 댓글과 과도한 관심에 시달리고 있다. 조회수와 화제성을 좇아 공무원을 홍보 전면에 내세우는 지자체가 늘고 있지만, 정작 그들을 보호할 장치가 있는지 의문이 커지고 있다.
최근 미국 뉴욕 타임스스퀘어에 ‘봉화사과’ 광고를 내걸며 화제를 모았던 봉화군 공무원이 결국 SNS 활동을 중단하기로 했다.
미국 뉴욕 타임스스퀘어 전광판에 8월13~14일 경북 봉화사과 광고 영상이 흘러나오고 있다. 이 광고는 경북 봉화군 농산물 홍보 담당 공무원이 사비를 틀어 결제했다(왼쪽). 19일 인스타그램 계정 '봉숭이 주무관' 운영자인 봉화군 공무원이 SNS 활동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봉숭이 주무관' 인스타그램
‘봉숭이 주무관’ 운영자는 19일 인스타그램을 통해 “일부 소문에 대해 말씀드리려고 한다”며 SNS 활동 중단 사실을 알렸다.
일각에서는 공무원이 지나치게 유명해지면서 기관으로부터 SNS 운영 중단 지시를 받은 것 아니냐는 추측도 나왔다. 이에 대해 운영자는 “외압은 아니다”며 선을 그었다. 오히려 “어제 군수님이 불러서 격려해주셨다”며 군청 내부 직원과 공보팀 역시 콘텐츠를 잘 보고 있다며 격려해주고 있다고 밝혔다.
2026년 8월6일 '봉숭이 주무관'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라온 게시물(왼쪽). 2026년 8월3일에 '봉송이 주무관'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라온 게시물. ⓒ'봉숭이 주무관' 인스타그램
그가 SNS를 멈추기로 한 이유는 다른 곳에 있었다. 개인의 건강 문제와 악성 댓글로 인해 멘탈 관리가 어려워 잠시 쉬어가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불면증이 심해졌다는 고충까지 털어놨다.
2026년 6월2일 충주시 공식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꼬마선장' 영상의 한 장면. ⓒ'충주시' 유튜브 채널
공무원이 인플루언서가 되는 순간, 공공 홍보와 개인의 경계는 어디까지일까. 이번 사례는 지방자치단체 홍보 방식이 빠르게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과거 지자체 홍보가 보도자료와 홍보물, 기관 홈페이지 등을 중심으로 이뤄졌다면 이제는 공무원이 직접 카메라 앞에 서서 말투와 표정, 캐릭터까지 콘텐츠로 만들어낸다. 공무원의 개성과 끼가 기관 홍보의 경쟁력이 된 것이다.
공직사회 내부에서도 새로운 역할이 요구되고 있다. 공무원은 맡은 업무를 충실히 수행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기존의 인식과 달리, SNS 홍보에서는 스스로 아이디어를 내고 유행을 따라가며 카메라 앞에 서는 적극성이 필요하다. 행정을 처리하는 역할에서 시민과 직접 소통하고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역할까지 업무의 범위가 넓어진 셈이다.
온라인에서는 우스갯소리로 “요즘 공무원 컷 높다”는 말까지 나온다. 지자체 홍보 영상에 등장하는 공무원들의 캐릭터와 활약이 화제로 떠오르면서, 이제 공무원 개인의 역량과 개성도 지자체 홍보 성과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되고 있다.
공무원 개인에게 쏠리는 관심은 조직 내부에서도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특정 직원에게 홍보 기회와 대외적 관심이 집중되면서 형평성에 대한 불만이 제기되거나, 유명세를 둘러싼 소문과 뒷말이 생길 가능성도 있다. 이 같은 갈등이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이어질 경우 문제는 개인의 감정 차원을 넘어 조직 차원의 보호 문제로 확대된다.
2026년 6월16일 '충주시' 공식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깐부 회동' 영상의 한 장면. ⓒ'충주시' 공식 유튜브 채널
지자체의 홍보 방식의 변화에는 ‘충주맨’의 성공이 큰 역할을 했다. 이후 전국 지자체에서 공무원이 직접 출연하는 숏폼 콘텐츠가 잇따라 등장했다. 경남 양산시청은 홍보팀 민홍식 팀장과 하진솔 주무관이 출연한 ‘진솔아! 나를 믿니?’라는 13초짜리 영상으로 큰 화제를 모았다. 제작 1년 만에 인스타그램에서 조회수 1300만 회를 넘어섰고, 이후에도 유행하는 밈을 활용해 정책과 행사를 짧고 재미있게 알리고 있다.
2024년 5월29일 양산시 공식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Never trust anybody' 제목의 영상의 한 장면. ⓒ양산시 공식 유튜브 채널
울주군청 역시 정확석 주무관이 ‘과즙맨’으로 등장해 울주배를 한입 베어 물고 과즙이 터지는 모습을 보여준 6초짜리 영상으로 인스타그램에서 1500만 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이후에는 옹기 안에 직접 들어가는 ‘옹기맨’으로 등장하며 다시 화제를 모았다.
2025년 4월27일 울주군 공식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원조) 한국판 퉁퉁퉁 사후르' 제목 영상의 한장면. ⓒ울주군 공식 유튜브 채널
이처럼 공무원이 직접 출연하는 콘텐츠는 기관의 인지도를 높이는 데 효과적이다. 하지만 짧은 영상 하나가 나오기까지 들어가는 공무원들의 수고는 결코 짧지 않다. 몇 초짜리 영상에 아이디어를 내고 대본을 짜고 촬영과 수정을 반복하는 등 사실상 ‘영혼을 갈아 넣어’ 콘텐츠를 만드는 경우도 적지 않다. 시민들에게는 잠깐 스쳐 지나가는 영상이지만, 그 몇 초를 만들어내기 위해 공무원들이 쏟아붓는 시간과 노력은 상상 이상일 수 있다.
콘텐츠가 유명해질수록 출연자 개인에게 관심과 비난이 집중될 수 있다는 문제가 뒤따른다. 정책이나 행정에 대한 비판이라면 공직자로서 감수해야 할 부분이 있지만, 외모나 말투 등 개인적인 특성에 대한 평가나 사생활에 대한 언급으로 번지면서 공무원 개인이 대중의 관심과 악성 댓글을 함께 감당하는 경우도 있다.
조회수와 반응이 콘텐츠 성과의 주요 지표로 활용되면서 공무원에게 요구되는 역할도 확대되고 있다. 영상 촬영과 대본 작성, 연기는 물론 댓글 관리와 유행하는 밈을 활용한 콘텐츠 제작까지 맡게 되면서 업무의 범위가 넓어질 수 있다. 콘텐츠의 성과는 기관 홍보 효과로 이어지지만, 과도한 관심이나 악성 댓글에 따른 부담은 출연자 개인에게 집중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특정 캐릭터로 대중에게 알려진 공무원은 업무와 사생활의 경계를 유지하기 어려울 수 있다. ‘봉숭이 주무관’처럼 이름과 캐릭터가 각인되면 다음 콘텐츠에서도 기존 모습을 유지해야 한다는 부담이 생길 수 있고, 퇴근 후에도 댓글이나 반응을 확인하는 상황이 반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공무원의 얼굴과 이름, 캐릭터를 기관의 홍보 자산으로 활용하는 데 대한 기준도 필요하다. 해당 공무원이 부서를 옮기거나 휴직·퇴직할 경우 기존 콘텐츠와 캐릭터를 어떻게 관리할지, 과거 영상에 등장한 얼굴과 이름을 계속 활용할 수 있는지 등을 사전에 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콘텐츠의 2차 가공이나 악의적 활용에 기관이 어디까지 대응할 것인지도 기준이 필요하다.
2023년 2월21일에 '강서구' 공식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전국 지자체 최초 공무원 버튜브' 영상의 한 장면. ⓒ서울 강서구 공식 유튜브 채널
일부 지자체가 특정 공무원 대신 버추얼 유튜버나 자체 캐릭터를 활용하는 것도 이 같은 부담을 줄이기 위한 방법 가운데 하나다. 공무원이 직접 출연하는 콘텐츠의 친근함과 현장감을 살리면서도 특정 개인에게 관심과 부담이 집중되는 문제를 완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공무원을 홍보 콘텐츠의 전면에 내세우기 위해서는 출연 여부와 업무 범위부터 근무시간 외 활동, 악성 댓글과 2차 가공 콘텐츠에 대한 대응까지 구체적인 기준이 필요하다. 출연자의 건강이나 사생활이 침해됐을 경우 기관이 어떻게 보호하고 책임질 것인지도 함께 정해야 한다.
지자체 SNS가 시민과의 소통을 강화하고 정책을 친근하게 알리는 수단으로 자리 잡으면서 공무원의 역할도 달라지고 있다. 홍보 효과를 높이는 것과 함께 콘텐츠에 참여하는 공무원의 업무와 사생활을 보호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