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대 대법원장이 장기간 공석으로 남아 있던 대법관 인선을 전격 단행하면서 이재명 정부와 대법원의 긴장이 다시 최고조로 치닫고 있다.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9일 오전 부산 동구 더불어민주당 부산시당에서 열린 부산 최고위원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특히 청와대와 사전 조율 없이 서면으로 대법관 후보자를 제청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여권에서는 조 대법원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등 격앙된 반응이 터져 나왔다.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9일 오전 부산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대법원장이라는 사람이 어떻게 이런 '사법 농단'을 부끄럽지도 않게 맨얼굴로 할 수 있는가"라며 "해방 이후 최악의 대법원장 조희대씨는 물러나는 것이 맞는다고 본다"고 강도 높게 비난했다.
그러면서 "조 대법원장의 행태는 유리창 깬 다음 퇴학시켜 달라고, 공부 안 하겠다고 구걸하는 불량 학생의 태도"라며 "조 대법원장은 한덕수씨 같은 내란 공범의 길로 가려 하고, 왜 그렇게 창피한 길을 자처하는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대표가 '사법농단'이라는 표현까지 쓰면서 조 대법원장을 비판한 이유는 조 대법원장이 전날 대법관을 제청한 방식 때문이다. 조 대법원장은 지난 3월 퇴임한 노태악 전 대법관의 후임으로 손봉기 대구지법 부장판사를, 다음 달 퇴임을 앞둔 이흥구 대법관의 후임으로는 김성수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결정해 이재명 대통령에게 임명 제청했다.
문제는 그동안 대법원장과 대통령실이 대법관 후보를 놓고 의견을 교환한 뒤 대법원장이 대통령을 만나 직접 제청하는 관례를 지키지 않고 사전 협의 없이 서면으로 제청했다는 점이다. 조 대법원장은 대법관 후임을 제청한 18일에 청와대를 방문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19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특히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가 지난 1월 노 전 대법관 후임 후보로 김민기 서울고법 판사, 박순영 서울고법 판사, 윤성식 서울고법 부장판사, 손봉기 부장판사 등 4명을 추천했으나 조 대법원장은 제청을 미뤄왔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청와대가 진보 성향이자 여성 법관인 김민기 고법판사를 1순위로 염두에 뒀는데 조 대법원장이 마뜩치 않게 생각해 인선이 늦어졌다는 후문이 퍼졌다.
이런 상황에서 조 대법원장이 노 대법관 후임에 더해 이흥구 대법관 후임 후보까지 청와대와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동시 제청'에 나선 것이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조 대법원장의 탄핵론까지 다시 등장했다. 송영길 의원은 전날 페이스북에서 "대통령을 패싱하는 것은 대통령 개인이 아니라 대통령을 뽑은 국민의 민주적 정당성을 부정하는 것"이라며 "저는 이미 조희대 대법원장 탄핵을 말씀드린 바 있다. 이제 국회가 응답할 차례"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대통령 지지율이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는 상황에서 조 대법원장을 탄핵하기엔 정치적 부담이 크다는 시각이 많다. 대법원장이 헌정사에서 실제로 탄핵돼 파면된 사례가 없는 데다 조 대법원장의 행위가 헌법과 법률을 직접적으로 위반한 게 아니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올 경우 후폭풍도 만만치 않을 수 있다.
김 대표도 조 대법원장을 향해 강도 높은 비난을 쏟아냈지만 민주당이 직접 조 대법원장 탄핵을 추진하겠다는 언급은 없었다. 다만 사법부 구성원들이 스스로 조 대법원장 사퇴를 위해 나서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김 대표는 "검찰 개혁이 일단락된 마당에 (조 대법원장은) 국민들의 분노를 자극해서 사법개혁의 신호탄을 올리는 자기 헌신의 길에 들어선 것"이라며 "대한민국 대법관들에게 조희대 대법원장이 잘못했다고 성명서를 내주기를 요구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법관회의를 열어서 '조희대 나가라'고 결의해 주고, 그렇지 않다면 적어도 이번 행위가 잘못됐다는 사법부의 판단을 내려달라"며 "민주당은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 농단을 계기로 해서 사법개혁을 시작하겠다"고 덧붙였다.
조 대법원장은 이날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출근길에서 취재진과 만나 '대법관 후임 청와대에 서면 통보한 이유가 있나'고 묻자 "수고 많으십니다"라고만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