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죽 장갑을 낀 손이 사람의 피부에 닿는 순간, 사람들은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무릎을 꿇거나 바닥에 쓰러졌다.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이 현장 요원들에게 지급하려는 신형 제압 장비, 일명 ‘G.L.O.V.E.(Generated Low Output Voltage Emitter)’다.
컴플라이언트 테크놀로지스LLC가 제작한 '전기충격 장갑'을 사람들에게 시연하는 모습이 제조사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라왔다. ⓒcomplianttech 인스타그램 계정
11일 AP통신가 보도한 미국 국토안보부(DHS) 입찰 문서를 보면,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은 최대 2천만 달러(약 280억원)를 들여 미국 켄터키주 렉싱턴에 있는 컴플라이언트 테크놀로지스LLC가 제작한 전기충격 장갑을 구매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외관은 평범한 가죽 장갑이다. 이 전기충격 장갑은 요원이 스위치를 누르면 전기 자극을 낼 수 있다. 제조사에 따르면 전기충격 장갑은 최대 362볼트(V)의 전압(전기를 밀어주는 힘)과 최대 1.2암페어(A)의 전류(실제로 흐르는 전기의 양)를 발생시킨다. 최대 전압은 한국 가정용 콘센트(220V)보다 약 1.6배 높은 수준이다.
다만 이 전기가 지속적으로 흐르는 것은 아니다. 약 0.000115초 동안 이어지는 매우 짧은 전기 자극을 초당 30회 안팎으로 반복해서 전달하는 방식이다.
상대방의 피부에 직접 접촉해야 작동하며, 테이저와 달리 발사체가 없고 피부에 화상이나 접촉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는 점도 특징이다.
제조사는 이 장갑을 총기나 다른 치명적인 무기를 사용하는 대신 저항하는 사람의 움직임을 통제할 수 있는 ‘상황 완화’ 도구로 홍보한다. 이 장비는 일부 교도소와 경찰기관에서 폭력적으로 저항하는 수감자나 경찰관의 지시에 따르지 않는 사람을 제압하는 데 사용돼 왔다.
‘보이지 않는 무기’가 더 위험한 이유
컴플라이언트 테크놀로지스 LLC가 개발한 G.L.O.V.E.가 2023년 3월22일 미국 오클라호마시티의 오클라호마 카운티 구치소에서 시연을 마친 뒤 테이블 위에 놓여 있다. ⓒOklahoma City Free Press/AP/연합뉴스
테이저건은 발사되는 순간을 주변 사람이 볼 수 있고, 경찰봉 역시 휘둘러지는 동작이 눈에 보인다. 영상으로 촬영됐다면 어떤 상황에서 물리력이 사용됐는지 사후에 확인하기도 상대적으로 쉽다.
반면 전기충격 장갑은 요원이 상대방의 어깨나 팔을 붙잡는 동작과 전기 자극을 가하는 동작이 겉으로 구별되지 않는다. 장갑에 달린 버튼을 누르는 순간도 주변에서는 알아채기 어려울 수 있다. 결국 무력 사용이 발생한 순간을 외부에서 식별하기 어렵다는 점이 감시와 책임 규명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장비 사용을 둘러싼 논란도 이미 있었다. AP에 따르면 켄터키주 매디슨 카운티의 한 구치소에서는 2024년 43세 남성이 전기충격 장갑으로 27차례, 테이저건으로 13차례 전기충격을 받은 뒤 숨졌다는 이유로 소송이 진행되고 있다. 구치소 내부 조사에서는 장갑으로 가해진 충격 가운데 두 차례가 각각 45초와 99초 동안 지속된 것으로 조사됐다. 제조사가 권고하는 최대 사용 시간인 15초를 크게 넘어선 것이다.
제조사도 사용에 제한을 두고 있다. 사용 설명서는 어린이와 임산부, 노인, 중증 장애인 등 고위험군에게 장비를 사용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단순히 말로 저항하거나 반항하는 경우에도 사용해서는 안 되며, 처벌이나 고문을 목적으로 사용해서도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문제는 이 원칙이 실제 ICE 단속 현장에서 얼마나 철저하게 지켜지느냐다.
특히 이민 단속은 일반적인 교통 단속과 성격이 다르다. 단속 대상자가 자신의 법적 지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영어에 익숙하지 않을 수도 있다. 가족이 갑자기 분리되거나 자신이 왜 체포됐는지 충분히 설명받지 못한 상태에서 물리적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미국시민자유연맹(ACLU)은 ICE의 기존 무력 사용을 지적하며 장갑의 오남용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ACLU의 제니 롤닉 보르체타 부국장은 AP에 ICE 요원이 버튼을 살짝 누르는 것만으로 다른 사람이 알아채기 어려운 전기충격을 가할 수 있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했다.
“불법체류자니까 제압을 감수해야 한다?”
미 연방 요원들이 2026년 2월 5일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이민 단속 작전을 수행하며 거리를 걷고 있다. ⓒAP/연합뉴스
ICE가 구금된 이민자의 생명과 건강을 어떻게 관리해왔는지를 둘러싼 논란도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ICE 구금시설 사망 자료를 보면 2005년부터 2020년 사이 구금 중이던 한국 국적자 3명이 자살이나 질병으로 숨진 사례도 확인된다.
단속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누가 불법체류자가 되라고 했느냐”는 반응도 나온다. 법을 어겼다면 그에 따른 제압도 감수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다.
이민법 위반에 따른 처벌과 단속 과정에서의 물리력 사용은 별도로 판단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국경을 넘거나 비자 조건을 위반한 경우라도 현장에서 어느 정도의 물리력이 필요한지는 당시 상황과 저항의 정도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법 위반에 따른 제재와 신체에 직접 가해지는 물리력 사이에 어떤 기준을 적용할지가 논란의 핵심이다.
'비살상 무기'라는 표현이 곧 비폭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사람의 몸에 직접 접촉해 전기 자극을 가하면서도 사용 순간이 외부에서 쉽게 식별되지 않는 장비인 만큼, 실제 현장에서 어떤 기준으로 사용되는지가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ICE의 장비 도입을 두고 무력 사용의 범위뿐 아니라 사용 과정의 기록과 사후 검증, 오남용을 막기 위한 감독 체계가 충분한지를 둘러싼 논란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