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그룹이 글로벌 우주·항공 산업의 대형화 추세에 발맞춰 ‘한국판 록히드마틴’을 넘어 ‘한국판 스페이스X’를 향한 중장기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육·해·공을 아우르는 통합 방산 체계를 선제적으로 구축해 막대한 자본과 규모를 앞세운 글로벌 경쟁사들 사이에서 확실한 주도권을 쥐겠다는 구상인 셈이다.
최근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지분을 15.89%까지 확대하며 공정거래위원회 기업결합 신고 의무 기준을 넘긴 행보도 이런 외형 확장의 핵심 단계로 풀이된다. 한화그룹은 KAI와 결합해 우주·항공 분야의 수출 경쟁력을 강화하고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다.
과거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을 인수해 민간 기업으로서 효율화를 이뤄냈고 방산 분야에서도 계열사와 시너지를 내고 있는 ‘성공 방정식’이 KAI 결합에서도 재현될지 관심이 모인다. 다만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결합 심사 결과와 더불어 중장기적으로는 정부의 KAI 민영화 정책 방향이 한화그룹 완전한 경영권 인수에 변수로 남아 있다.
한화그룹 방산3사(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화시스템, 한화오션)가 2026년 2월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열린 월드디펜스쇼(WDS) 2026에 참가해 미래형 통합 무기체계를 선보이고 있는 모습. ⓒ한화
◆ 스페이스X가 던진 국내 우주산업의 한계, 한화그룹 ‘한국판 스페이스X’ 바라본다
8월11일 방산업계에 따르면 우주 주권이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면서 주요국 경쟁 기업들의 대형화 추세가 빨라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프랑스의 에어버스와 탈레스, 이탈리아의 레오나르도 등 3사는 우주사업의 통합 및 신설 기업 설립을 2025년 10월부터 추진하고 있다. 현재 규제당국의 승인 등을 거쳐 2027년 운영 개시를 준비하고 있다. 영국의 BAE시스템즈와 미국의 노스롭그루먼그룹 및 L3해리스도 모두 우주 기술을 지닌 기업들을 인수하면서 외형을 확장하고 있다.
이런 움직임은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에 대응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파이낸셜타임즈 등 해외언론에 따르면 에어버스와 탈레스, 레오나르도는 스페이스X를 포함한 글로벌 경쟁업체에 맞서기 위해서는 기업 합병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앞서 스페이스X는 6월 공모가 135달러로 나스닥에 상장했다. 이를 통해 단숨에 857억 달러, 한화로 130조 원에 이르는 자금을 확보하며 우주산업 분야의 대규모 투자를 예고하고 있다.
한화그룹이 KAI 지분을 매입해 경영참여를 검토하고 있는 것도 연결선상에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우주산업이 기술 경쟁을 넘어 자본과 규모의 경쟁체제로 진입했지만 국내 우주산업은 흐름에 적합하지 않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일례로 2026년 우주항공청 예산은 1조1201억 원인데 2025년보다 16% 늘어난 것이지만 여전히 글로벌 무대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쉽지 않은 규모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를 배경으로 한화그룹은 ‘한국판 스페이스X’를 구축하겠다는 중장기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한화그룹은 KAI 지분율을 9.04%까지 확대한 6월16일 “우주산업은 대형화·통합화 추세를 보이고 있어 한화그룹과 KAI가 ‘한국판 스페이스X’를 만들어야 한다”며 “현재 KAI의 우주사업 분야는 독자적 자금 조달과 선제적 시장 진입에 구조적 한계를 갖고 있다”고 바라봤다.
8월10일 한화시스템이 KAI 지분을 4.98%까지 보유하게 되면서 한화그룹의 지분율은 모두 15.89%까지 높아졌다. 이는 공정거래법(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상 대기업집단이 상장사 지분 15% 이상을 보유하면 기업결합 신고 의무가 발생하는 상황에서도 추가로 지분을 확보했다는 의미가 있다.
한화그룹은 KAI 보유 지분 15%를 넘기면서 “글로벌 대형 방산 기업들과 경쟁하기 위한 목적”이라며 “이는 KAI의 기업 경쟁력 강화와 주가 상승 등 기업가치 제고 측면에서도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증권업계에서는 한화그룹과 KAI가 결합하면 긍정적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내다봤다. 장남현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8월11일 ‘한화그룹의 KAI 지분 매입 영향 분석’ 보고서에서 “한화그룹과 KAI가 결합하면 완제기 플랫폼과 항공엔진, 레이더 등 핵심 부품의 수직계열화가 가능하고 위성 사업에서도 한화그룹의 발사체 및 탑재체 기술과 KAI의 위성체 제작 역량이 결합한다”며 “민간 기업 주도의 신속한 의사결정 체제가 더해져 사업의 효율적 확장과 수익성 개선이 전망된다”고 바라봤다.
◆ 2022년부터 이어진 ‘한국판 록히드마틴’ 구상, 한화오션 인수 효과도
한화그룹은 대규모 우주·항공 복합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 이번 KAI 지분을 매입하기에 앞서 ‘한국판 록히드마틴’ 구상을 내놓기도 했다.
한화그룹은 2022년 7월 한화에어로스페이스에 기존 한화의 방산 부문을 더하는 등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아래로 그룹의 방산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발표했다.
세계 10대 방산기업을 목표로 성장하겠다는 청사진으로 F-16, F-35 전투기 등 항공 기술에 더해 패트리엇 미사일, 이지스레이더 등을 함께 개발하면서 세계 1위 종합방산기업이 된 록히드마틴의 사업 모델을 좇고 있다.
여기에 2022년 9월에는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결정하고 투자합의서를 체결하면서 방위산업 역량 강화에 방점을 찍었다. 대우조선해양은 한화오션으로 2023년 5월 출범했다.
한화그룹은 기존 계열사의 방산 및 제조, 기계, 수주, 체계종합 등 사업 성격이 유사한 한화오션 인수를 통해 미래 방산기술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내놓기도 했다. 우주, 지상 방산에서 해양까지 이르는 육해공 통합 방산시스템을 갖추는 것이다.
한화그룹의 KAI 지분 인수가 긍정적 평가를 받는 지점은 여기에도 있다. 공적자금이 투입된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해 운영의 효율화를 이뤄냈기 때문이다.
한화그룹에 인수된 뒤 한화오션은 2023년 수주를 크게 낮추면서 수익성 위주의 선별수주 전략의 강도를 높였고 고부가가치선박인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반복 건조 시스템을 강화해 한화오션의 수익성을 대폭 키웠다.
2021~2022년 1조7천억 원 안팎의 연간 영업손실을 보던 한화오션은 한화그룹에 편입된 이듬해인 2024년 흑자전환에 성공했고 2025년에는 ‘영업이익 1조 클럽(1조1676억 원)’에 가입하기도 했다.
방산 부문에서도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엔진과 무기체계, 한화시스템의 전투체계 및 통신에 더해 한화오션 함정사업의 시너지에 공을 들이고 있다. 2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열린 월드디펜스쇼(WDS) 2026에서도 한화그룹만의 ‘육·해·공’을 아우르는 방산 수출패키지를 선보였다.
장 연구원은 “한화그룹은 사업 확대 및 수익성 전략의 성공을 한화오션 인수로 증명한 바 있다”며 “한화오션 인수뒤 적극적 투자와 효율화 작업을 진행해 성과를 냈고 국내 해양·방산 사업 수주 및 해외 방산 사업 확대를 위한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 조건부 승인 또는 간이 심사 예상, 경영권 인수까지는 아직
공정거래법상 기업결합 심사 요건인 ‘대기업의 상장사 지분 15% 확보’ 조건이 충족한 만큼 조만간 심사 절차가 본격적으로 개시될 것으로 보인다.
증권업계에서는 과거 한화오션의 사례와 견줘 ‘조건부 승인’이 나올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한화오션 인수 당시 한화그룹이 기존의 레이더 및 무기체계와 함정 건조 역량을 동시에 품으면서 경쟁을 제한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
이에 공정거래위원회는 △함정 부품의 견적 가격을 부당하게 차별적으로 제공하는 행위 △한화오션의 경쟁사업자가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및 한화시스템에게 방위사업청을 통해 함정 부품의 기술 정보를 요청했을 때 이를 부당하게 거절하는 행위 등을 금지하는 시정조치를 부과하는 조건으로 기업결합을 승인했다.
백종민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8월11일 ‘KAI 지분 인수 관련 향후 경로 점검’ 보고서에서 “이번 결합신고도 (한화오션 때와 유사하게) 한화그룹의 항공엔진·레이더·항공전자 기술과 KAI의 완제기 체계종합이 합쳐지는 사례”라며 “조건부 승인이 유력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다만 여전히 한국수출입은행이 최대주주(26.41%) 지위를 유지하는 상황에서 한화그룹이 2대주주라는 점에서 ‘간이 심사 절차’로 조건 없이 빠르게 통과할 가능성도 나온다.
방산업계 일각에서는 최근 한화그룹의 행보는 중장기적으로 KAI 민영화 이후 회사의 경영권을 인수하려는 움직임으로 보고 있다. 한화그룹의 KAI 인수설은 2022년 말 대우조선해양 인수 당시에도 불거졌었는데 이번에는 KAI 지분을 사들이는데 2조2천억 원으로 추산되는 대규모 자금을 실제로 투입했기 때문이다.
한화그룹이 KAI를 인수하는 시나리오는 수출입은행이 보유 지분을 모두 매각하고 이를 한화그룹이 경영권 프리미엄을 더해 인수하는 방식, 한화그룹이 KAI 지분을 추가로 매입하거나 수출입은행이 일부의 지분을 넘긴 뒤 2대주주로 남아 있는 방식 등이 거론된다.
다만 이는 KAI 민영화라는 정부의 정책적 판단이 선행된 뒤 이뤄질 수 있는 사안이다. 정부는 아직 KAI 민영화를 놓고 구체적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앞서 3월 공개된 2025년 국방위원회 국정감사 결과보고서에는 KAI를 민영화해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내용이 담기기도 했다. 이 결과보고서의 방위사업청 방위사업 분야 감사실시내용에는 “풍산이 탄약 생산에서 시작해 동 분야 우수기업이 된 사례처럼 KAI를 민영화해 경쟁력을 강화할 필요”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