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 다 가진 나프타분해설비(NCC)가 금호석유화학에는 없다. 그런데 이 결핍이 오히려 회사를 살렸다.
자체 NCC 부재를 극복하기 위해 다져놓은 글로벌 원료 공급망이 미국·이란 전쟁발 수급 불안 속에서 빛을 발했고, 박준경 총괄사장이 추진해 증설한 고기능성 합성고무 물량이 2분기 실적에 기여했다.
수년째 이어지고 있는 중국발 석유화학 공급 과잉에 경쟁사들이 허덕이는 사이, 금호석유화학은 흑자 행진을 이어가며 굳건한 기초 체력을 증명하고 있다.
박준경 금호석유화학 총괄사장이 공급망 다변화·고부가 제품 집중 전략으로 업계의 불황을 헤쳐가고 있다. ⓒ그래픽 허프포스트코리아
8월11일 석유화학업계에 따르면 금호석유화학은 산업의 불황에도 안정적 실적을 내고 있다.
◆ 금호석유화학의 핵심, 합성고무가 이끈 2분기 실적
금호석유화학은 합성고무를 핵심 사업으로, 합성수지·정밀화학 등의 제품을 함께 생산·판매하는 기업이다.
금호석유화학은 8월7일 연결기준 2분기 잠정 실적을 발표했다. 매출 약 2조2268억 원, 영업이익 약 3390억 원으로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각각 27.9%, 419.7% 뛰었다. 이로써 금호석유화학은 별도기준 103분기 연속 영업이익 흑자 행진을 이어갔다.
이번 영업이익 급등은 합성고무 부문이 이끌었다. 합성고무 부문은 2분기 매출 약 9871억 원, 영업이익 약 1898억 원을 기록했다. 1년 전 같은 기간에는 매출 약 6745억 원, 영업이익 약 85억 원이었다. 매출은 46.4% 뛰고 영업이익은 2132.9% 폭증한 것이다.
◆ 공급망 다변화 : 결핍이 만든 금호석유화학의 무기
황성현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의 8월10일 금호석유화학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회사는 2분기 실적 설명회에서 '합성고무 제품별 이익 기여 정도'에 관한 질문에 "니트릴 부타디엔(NB) 라텍스뿐 아니라 범용·고부가 합성고무 전반의 수익성이 함께 개선됐다"고 설명했다.
또 '2분기 NB 라텍스 실적 급증 배경'에 관한 질문에 "미국·이란 전쟁 영향으로 경쟁사는 가동률이 하락해 공급이 감소했으며, 이에 안정적 공급이 가능한 금호석유화학으로 수요가 집중됐다"고 덧붙였다.
금호석유화학이 NB 라텍스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었던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안정적 공급처가 없었기 때문이다.
석유화학 산업에서는 보통 원유를 증류해 나오는 나프타를 NCC에 투입해 기초유분을 생산한다. 이후 이 기초유분을 원료로 활용해 합성고무, 플라스틱, 섬유 등 여러 응용 제품을 제조한다.
이에 국내 주요 석유화학 기업들은 대부분 자체 NCC를 소유하고 있다. 이는 △응용 제품 생산에 필요한 기초유분의 안정적 조달 △자체 생산한 기초유분 판매로 수익 창출 △기초유분 생산 내재화를 통한 원가 경쟁력 확보 등을 목적으로 한다.
그러나 금호석유화학은 자체 NCC를 보유하고 있지 않다. 대신 안정적 원료 수급을 위해 공급망을 다변화하는 데 힘써 왔다. 이 노력들이 이번 미국·이란 전쟁발 공급 불안 상황에서 빛을 본 것이다.
금호석유화학 관계자는 허프포스트코리아와의 통화에서 "금호석유화학은 세계 1위의 NB 라텍스 생산 능력을 보유한데다, NCC가 없기 때문에 예전부터 국내외에 공급망을 마련해 놨다"며 "이 두가지 요인이 더해져 2분기 안정적 공급이 가능했다"고 강조했다.
또 수년 전부터 중국은 에틸렌(기초유분 가운데 하나) 자급률 100%를 넘기며 순수출국으로 전환됐다. 이로 인해 공급과잉이 발생했지만, NCC가 없는 금호석유화학은 상대적으로 적은 피해를 보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경쟁 기업들이 강도 높은 구조 조정을 진행하는 것과는 대비되는 모습이다. 산업통상부는 2025년 8월 석유화학산업 구조개편 로드맵을 발표했다. 이후 2026년 2월에는 HD현대오일뱅크·HD현대케미칼·롯데케미칼이, 2026년 7월에는 여천NCC·한화솔루션·DL케미칼 등이 제출한 사업재편계획서 최종안을 승인했다. 이 기업들은 모두 NCC를 운영해왔다.
◆ 박준경 총괄사장, 고부가에 집중한다
또 박준경 금호석유화학 총괄사장이 추진한 고부가·고기능성 제품 생산 설비 증설도 합성고무 부문 수익성 개선에 기여했다고 평가된다.
박 총괄사장은 부사장이던 2022년부터 종속회사 금호폴리켐의 합성고무 에틸렌프로필렌디엔모노머(EPDM) 생산 설비 증설을 추진했다. 이후 2025년 5월 연간 7만 톤 규모의 EPDM 생산 능력 확대를 완료했다. EPDM은 내열성, 내약품성 등이 우수한 고기능성 특수 합성고무로 자동차 부품에 주로 쓰인다.
이후 박 총괄사장은 합성고무 솔루션스타이렌부타디엔고무(SSBR) 생산 능력 확대에도 나섰다. 이에 따라 2025년 12월 연간 3만5천 톤 규모의 SSBR 생산 설비 증설을 완료했으며, 2026년 1분기부터 상업 가동에 착수했다. SSBR은 뛰어난 점탄성과 내마모성으로 내연차보다 무겁고 가속·제동이 잦은 전기차 타이어에 적용하기 적합하다고 평가받는 합성고무다.
금호석유화학 관계자는 허프포스트코리아와의 통화에서 "EPDM과 SSBR 생산 설비 증설은 각각 2025년 5월, 12월 완공됐다"며 "이로 인해 늘어난 생산 물량이 2026년 2분기 매출에 기여했다"고 전했다.
이어 "2분기 양호한 실적을 거뒀으나 3분기부터는 마진 축소가 예상되는 등 부담 요인이 많다"며 "금호석유화학은 지속적인 경쟁력 강화 및 원가 절감을 통한 수익성 확보에 매진하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