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정부가 수출과 외국인 투자에 의존해온 성장 전략에서 벗어나, 자국 민간 대기업을 전면에 내세우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하고 있다.
베트남의 한 농장 모습. ⓒ 픽사베이
파이낸셜타임스(FT)는 11일 베트남이 1960년대 이후 한국 경제를 견인했던 '재벌'(chaebols) 모델을 벤치마킹해 소수의 대형 민간기업을 '국가 대표 기업'으로 육성하려 한다고 보도했다.
공산주의 국가 베트남이 그동안 국영기업 위주로 배정되던 대형 국책사업을 이제 민간 대기업으로 넘기고 있다는 것이다.
베트남이 2025년 발표한 '결의안 68호'는 이러한 흐름을 상징하는 조치다. 이 결의안은 2030년까지 글로벌 가치사슬에 참여할 수 있는 대기업을 20개 이상 육성하고, 민간기업 수를 200만 개로 두 배 늘린다는 구체적 목표를 담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베트남이 결의안 68호를 계기로 베트남의 민간부문이 국영기업과 외국 자본에 밀려 있던 2순위 지위에서 벗어나 '국가 경제의 가장 중요한 성장 동력'으로 격상됐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베트남의 억만장자 팜 냣 브엉이 이끄는 빈그룹은 베트남 하노이와 하롱베이를 잇는 56억 달러(7조9천억 원) 규모의 고속철도 사업권을 따냈고, 하노이 지하철 노선 개발에도 참여하고 있다.
이는 통상적으로 국영기업 몫이었던 대형 인프라 사업을 민간기업이 수주한 것은 이례적 변화로 꼽힌다.
빈그룹 외에도 베트남 자동차업체 타코는 670억 달러(94조7천억 원) 규모의 남북 고속철도 입찰에 참여했고, 베트남 철강업체 호아팟과 통신기업 FPT도 베트남의 차세대 '재벌' 후보로 거론된다.
베트남의 이러한 정책적 전환의 배경에는 미국의 관세 압박으로 무역·수출 의존형 성장 모델의 취약성이 자리 잡고 있다. 또한 부채와 부패 문제에 시달려온 국영기업들이 더 이상 성장 동력 역할을 하기 어려워진 현실도 영향을 미쳤다고 파이낸셜타임스는 바라봤다.
베트남 대형증권사 HSC 증권의 타일러 응우옌 전략가는 "베트남 정부의 이런 개혁은 한국을 비롯한 여러 아시아의 용들이 걸었던 발전 경로를 거울삼은 것이다"고 평가했다. 베트남 정부는 규제 완화를 위해 2025년부터 2026년 4월 사이 86개 이상의 법률과 300개 이상의 정령을 새로 제정하기도 했다.
다만 파이낸셜타임스는 아시아개발은행 관계자를 인용해 소수 대기업 중심 육성 전략이 국내 시장에서 자연스러운 독점을 낳고, 그 혜택이 중소기업으로 확산되기 어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