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넘게 키운 게임 캐릭터를 가족에게 전해줄 수 있을까. 폐쇄된 줄 알았던 싸이월드에 남겨진 사진과 방명록은 누구의 것일까.
온라인 공간에 남겨진 기록이 단순한 흔적을 넘어 자산으로 인식되고 있다. 게임 계정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기록, 사진과 영상 등 이른바 '디지털 유산'이 새로운 권리의 대상으로 떠오르면서 상속과 복원, 보존 여부를 둘러싼 논쟁도 커지고 있다.
디지털 유산 논쟁이 확산되는 가운데 게임 계정과 SNS 기록, 사진 등 온라인 데이터의 소유권과 상속 범위를 둘러싼 관심이 커지고 있다. ⓒ그래픽 허프포스트코리아
가장 상징적 사례는 최근 중국에서 나왔다. 베이징 법원은 사망한 이용자가 10여 년 동안 키운 온라인 게임 계정과 아이템 사용권에 대해 상속권을 인정했다. 게임사는 계정 소유권이 회사에 있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이용자가 오랜 기간 시간과 비용을 들여 축적한 재산상 이익은 상속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국내에서는 싸이월드 3.0 프로젝트가 비슷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시그마체인은 과거 이용자들의 사진과 게시물 등이 담긴 3.8페타바이트(PB) 규모 데이터를 복원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개인정보 보호와 '잊혀질 권리' 침해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되찾고 싶은 추억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다시 마주하고 싶지 않은 과거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논쟁이 커지는 배경에는 데이터의 가치 변화가 있다. 과거 사진과 게시물은 개인의 추억에 가까웠지만 이제는 경제적 가치와 활용 가능성을 가진 자산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인공지능(AI) 기술이 확산되면서 사진과 영상, 음성, 게시글은 AI 학습과 콘텐츠 생성의 재료가 되고 있다. 데이터가 단순 기록을 넘어 새로운 자산으로 인식되면서 이를 누구의 권리로 볼 것인지에 대한 논쟁도 커지고 있다.
실제 디지털 유산은 정책과 학계에서도 주요 연구 주제로 떠오르고 있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은 '디지털 유산에 관한 논의 동향 및 중장기 정책방향 연구'에서 온라인 활동 증가로 사후 남겨지는 디지털 정보가 급증하고 있지만 이를 처리하고 상속할 명확한 기준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2023년 미국컴퓨팅학회(ACM)가 발표한 연구 역시 디지털 유산 논의가 개인의 정체성과 사후 데이터 관리, 유족의 접근권 등 사회·법률·윤리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문제는 기술과 데이터의 가치 변화 속도를 제도와 사회적 합의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게임 계정과 SNS 기록, 사진과 영상이 자산으로 인식되기 시작했지만 상속과 삭제, 복원 권한을 누구에게 부여할 것인지는 여전히 논쟁거리다. 유족의 접근권과 고인의 자기결정권, 제3자의 개인정보 보호가 충돌할 경우 어떤 권리를 우선해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도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
미국과 프랑스 등은 생전 계정 관리자를 지정하거나 사후 데이터 처리 의사를 남길 수 있는 제도 도입을 추진하고 있지만, 디지털 유산을 둘러싼 사회적 논의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디지털 유산 논쟁의 본질은 데이터가 더 이상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는 데 있다. 누군가에게는 추억이고, 누군가에게는 경제적 자산이며,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지워질 권리의 대상이다. 집과 예금, 주식에 머물렀던 재산권 논의가 이제 계정과 데이터로 확장되고 있다. 디지털 기술이 일상이 된 시대, 데이터 역시 상속과 보존, 삭제의 대상이 되는 새로운 자산으로 자리 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