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소아백신의 접종횟수를 줄이고 홍역과 볼거리 풍진을 혼합한 백신(MMR)을 3개로 분리 접종하도록 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서명식에서 백신과 자폐증의 연관성, MMR 혼합접종의 위험성 등을 주장했지만 뉴욕타임스는 이 주장들이 대부분 과학적 근거가 없다고 조목조목 반박했다. 미국은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 보건장관이 대표적 반백신주의자로 꼽히는 등 우파 중심으로 반백신주의가 크게 확산해 있다.
백신관련 행정명령에 서명식을 공개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 로이터=연합뉴스
11일 AFP통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10일(현지시각) 워싱턴D.C. 백악관 집무실에서 홍역·볼거리·풍진 백신의 분리접종과 학교 백신 의무화를 재검토할 것을 내용으로 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번 행정명령은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권고 백신을 17종에서 11종으로 줄이고, 백신을 '전체 아동 권장' '고위험군 권장' '공동 의사결정' 3개 그룹으로 재분류하도록 했다.
또 미국에서 아직 시판되지 않는 개별 홍역·볼거리·풍진 백신을 승인받도록 지시하고, 법무장관에게 학교 백신 의무 접종의 종교적·의학적 예외를 침해한 주(州)를 조사하라고 명령하는 내용도 담고 있다.
왜 지금 홍역·볼거리·풍진 혼합백신 분리 접종시키나
이번 조치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9월 자폐증 관련 기자회견에서 "홍역과 볼거리 풍진 백신은 따로 맞는 게 낫다"고 밝힌 이후 1년도 안 돼 세 번째로 내놓은 백신 관련 행정명령이다.
정치전문지 폴리티코는 이번 행정명령을 두고 "중간선거를 몇 달 앞두고 자신의 여론조사팀조차 인기 없는 이슈라고 경고했던 사안을 트럼프가 다시 밀어붙인 것"이라며 "백신 안전성에 오랫동안 의문을 제기해 온 케네디 보건장관과 동맹이 이를 가속화했다"고 짚었다.
케네디 보건장관은 미국 보수진영에서 대표적 반백신주의자로 꼽힌다. 그는 자신이 설립한 반백신단체 '어린이 건강 수호(Children's Health Defense)'를 이끌며 지난 20년간 "백신이 자폐증과 자가면역질환을 유발한다"는 주장을 반복해 왔다.
케네디 보건장관은 취임 뒤에도 백신과 자폐증 간 연관성이 없다고 밝힌 수십 건의 연구를 인정하지 않았고, 지난해 11월에는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홈페이지의 "백신은 자폐증을 유발하지 않는다"는 문구를 "근거가 불충분한 주장"이라는 표현으로 바꾸도록 지시했다. 이런 케네디 장관의 오랜 백신 회의론이 이번 행정명령의 배경이 됐다고 로이터를 비롯한 외신은 분석했다.
NYT "백신이 위험하다는 증거 없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 행정부의 주요 주장을 조목조목 검증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갤런(약 3785ml) 단위'라고 표현한 백신의 1회 접종량은 일반적으로 0.25~0.5mL에 불과하고, 자폐증과 백신의 연관성 역시 수십 건의 연구에서 발견되지 않았다고 뉴욕타임스는 지적했다.
뉴욕타임스는 백신 보강제로 쓰이는 알루미늄염도 100년 가까이 검증됐으며, 대규모로 진행된 덴마크 연구는 천식 등 만성질환과의 연관성을 찾지 못했다고 전했다.
리처드 베서 전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 국장대행은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MMR 혼합 백신은 수십 년간 안전성이 입증됐고, 분리 접종은 의학적 이득 없이 부모의 병원 방문 부담만 늘린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백신관련 행정명령으로 미국에서 백신접종이 줄어듦에 따라 초래될 질병확산 위험도 크다고 뉴욕타임스는 지적했다.
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의 집계에 따르면 1994~2023년 정기 백신 접종은 약 5억800만 건의 질병과 112만9천 명의 사망을 예방했다. 하지만 2026년 기준으로 미국은 홍역 퇴치를 선언한 2000년 이후 최다 홍역 환자를 기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