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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정부가 산업 경쟁력이라는 현실 앞에서 노동과 기후 부문 개혁 정책에서 후퇴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속도 조절일 수도 있겠으나 자칫 개혁의 약속을 저버리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허프 생각] 이재명 정부, 메가특구 앞에서 '노동·기후 개혁' 후퇴 : '잃은 점수' 어떻게 회복할까
이재명 대통령이 10일 청와대에서 열린 메가프로젝트 민관합동 제2차 점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특히 현 정부는 '3대 메가프로젝트' 관련 메가특구 사업을 추진하면서 노동과 기후 분야에서 '우회전'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반도체와 AI(인공지능) 등 첨단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기업 활동을 가로막는 규제를 풀고, 필요한 전력과 용수를 제때 공급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노동 규제까지 손을 대는 방안이 거론된다. 서남권 반도체 클러스터 등을 겨냥한 메가특구특별법에는 기간제 노동자의 사용 기간을 현행 2년에서 최대 4년으로 늘리고, 연구개발 직군에는 주 52시간 노동시간 상한제의 예외를 두는 방안 등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 과정에서 ‘임금 감소 없는 주 4.5일제’를 공약했던 것과 비교하면 분명 정반대 방향이다. 노동시간을 줄이고 고용 안정성을 높이겠다는 방향에서 산업 현장의 필요에 따라 노동 규제를 유연하게 적용하는 쪽으로 노선을 갈아탄 것이다.

조국혁신당에서는 즉각 비판이 나왔다. 신장식 조국혁신당 대표는 10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의 메가특구 주 52시간 특례 해제 주장을 두고 "사람답게 살자는 국민 공감대를 얻어 이룩한 귀한 사회적 합의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며 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주 4.5일제 시행 방안을 내놓으라고 촉구했다.

기후정책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신규 원전 건설을 추진하고 원전과 재생에너지를 함께 활용하는 에너지 믹스를 선택했다. 기존 댐을 증축하거나 신규 댐 건설을 검토하는 등 반도체 등 첨단산업에 필요한 물을 확보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국회의원 시절 원전 반대론자였던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이날 JTBC '장르만 여의도'에 출연해 원전을 일부 추가할지 여부에 대해 제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 과정에서 전문가와 국민의 의견을 듣고 결정해야 한다는 취지로 말했다.

물론 AI와 반도체 산업이 성장하면 전력 수요가 크게 늘어난다. 기업이 투자하려는데 전기와 물을 제때 공급하지 못한다면 산업정책 자체가 성립하기 어렵다. 반도체 국가첨단산업단지에 필요한 인프라를 확보하기 위해 기존 시설을 활용하는 것 역시 국가 산업정책의 현실을 고려하면 무조건 반대할 사안이라고만 하기는 어렵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정부가 산업 경쟁력을 위해 노동과 기후 분야에서 한발 물러설 수 있다면, 그만큼 다른 곳에서는 무엇을 더 진보적으로 개혁할 것인가. 이 질문이 지금 이재명 정부에 필요하다.

메가특구에서 기업의 요구를 일정 부분 받아들이는 것이 현실적 선택이라면, 그 선택이 노동정책 전체의 방향으로 확대되는 것은 아니라는 확신을 줘야 한다.

주 52시간제의 예외가 정말 필요하다면 예외가 필요한 직군과 기간을 엄격하게 제한해야 한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서는 노동시간 단축을 더 빠르게 추진해야 한다. 기업에 고용의 유연성을 주겠다면 노동자에게는 더 강한 고용 안정과 사회안전망을 제공해야 한다.

기업에 무엇을 양보할 것인지만 정하는 것으로는 '실용주의'가 완성되지 않는다. 그 양보의 대가로 노동자에게 무엇을 더 줄 것인지까지 정해야 한다.

주 52시간 예외를 인정하는 대신 다른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을 더 줄일 수 있다. 기간제 사용 기간을 늘리는 대신 비정규직의 처우를 개선하고 고용 불안을 줄이는 장치를 강화할 수 있다. 플랫폼 노동자와 프리랜서처럼 기존 노동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을 보호하는 제도를 더 빠르게 만들 수도 있다.

한쪽에서 규제를 풀었다면 다른 쪽에서는 노동자의 권리를 더 두텁게 하는 식의 '정책적 교환'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이재명 정부에서는 이 정책적 교환이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다.

기후 분야도 원전과 재생에너지를 함께 활용하는 것이 현실적인 에너지 믹스라면, 그 현실주의가 탄소중립을 늦추기 위한 핑계가 아니라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한 경로라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산업 경쟁력을 위해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필요하다면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는 데는 더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다. 산업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기존 댐을 활용한다면 물 재이용과 수요 관리, 산업용수 효율화에서는 더 과감한 목표를 세울 수 있다.

그런데 최근 국회 기후위기특별위원회를 통과한 탄소중립기본법 개정안 논의 과정에서 기후부는 산업 경쟁력을 고려하면 온실가스를 조기에 많이 감축하는 방안은 어렵다는 태도를 고수했다.

청년기후의회와 범청년행동 등 27개 청년·시민사회단체는 7월29일 청와대 분수대 앞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가 '실용주의'라는 이름 아래 무한한 성장의 신기루에 떠밀려 조기 감축 경로를 버렸다"며 "일반 시민의 일상을 내팽개치고 일부 대기업에 부가 이어지게 하는 것이 진짜 실용이냐"고 비판했다.

이 지점에서 다시 질문하게 된다. 원전과 산업용수 확보를 위해 현실과 타협할 수 있다면, 기후 분야에서는 무엇을 더 할 것인가.

탄소 감축을 늦추는 현실론만 보여서는 곤란하다.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피해를 보는 지역과 노동자를 보호하는 정의로운 전환 정책을 강화하고, 재생에너지 확대와 에너지 효율 개선을 더 공격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산업 경쟁력을 이유로 조기 감축 목표를 조정했다면, 그만큼 다른 분야의 감축 수단은 더 강하게 가져가야 한다.

이재명 정부가 민주진보개혁 정부라는 사실을 굳이 길게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민주진보진영의 단일 후보였고, 진보정당과 시민사회 상당수도 정권교체를 위해 힘을 보탰다.

민주진보 정부라고 해서 기업의 요구를 무조건 거부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산업 경쟁력을 위해 필요한 규제 완화를 할 수도 있다. 원전을 활용할 수도 있고, 기업의 투자 일정에 맞춰 산업용수와 전력을 공급할 수도 있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다른 정부와 무엇이 달라야 하느냐는 것이다. 산업 경쟁력을 위해 기업에 한발 양보하는 정부라면, 노동자와 시민의 삶을 개선하는 데는 오히려 더 과감해야 한다.

이것이 민주진보개혁 정부의 실용주의여야 한다. 실용주의는 모든 정책에서 조금씩 물러서는 것이 아니다. 현실적으로 양보해야 할 곳과 현실을 이유로 양보해서는 안 될 곳을 구분하는 것이다.

메가특구에서 기업의 요구를 받아들여야 한다면 그 대가로 노동자의 권리를 강화할 수 있다. 주 52시간제의 예외를 인정한다면 대선 공약이었던 ‘임금 감소 없는 주 4.5일제’의 구체적인 도입 로드맵을 내놓을 수 있다.

기업에 고용 유연성을 더 주는 대신 플랫폼·프리랜서 등 법적 사각지대에 놓인 노동자까지 포괄하는 ‘보편적 노동법’을 추진할 수도 있다.

기후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원전과 산업용수 확보를 현실적 선택으로 인정한다면,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타격을 입는 지역사회와 전통 에너지 산업 노동자들을 위한 ‘정의로운 전환’ 기금을 실효성 있게 가동해야 한다. 탄소중립기본법 개정안 논의 과정에서 후퇴한 온실가스 조기 감축 목표 역시 쉽게 포기하지 않겠다는 신호를 줘야 한다.

메가특구에서의 양보가 불가피하다면, 그 양보의 대가가 있어야 한다.

기업에는 규제 완화를 주면서 노동자에게 아무것도 더 주지 않고, 산업에는 전기와 물을 공급하면서 기후위기 대응은 뒤로 미룬다면 ‘실용주의’는 결국 규제 완화의 다른 이름이 될 수밖에 없다.

반대로 산업 경쟁력이라는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노동과 기후, 불평등의 문제에서는 더 과감하게 나아간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때 실용주의는 개혁의 포기가 아니라 개혁의 선택과 집중이 된다.

정부가 모든 분야에서 진보적인 정책만 밀어붙일 수는 없다. 산업 경쟁이라는 냉혹한 현실 앞에서 일정한 타협이 필요할 수 있다. 그렇다면 더욱 분명해야 한다. 무엇을 양보할 것인지보다 무엇을 끝까지 지킬 것인지가 더 중요하다.

이재명 정부가 노동과 기후 정책에서 한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면, 다른 분야에서는 두 걸음 앞으로 나가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주 4.5일제의 구체적인 로드맵을 내놓고, 노동법의 사각지대를 줄이고, 사회안전망을 강화해야 한다. 에너지 전환의 비용을 특정 지역과 노동자에게 떠넘기지 않는 정의로운 전환을 추진하고, 탄소 감축에서는 후퇴하지 않는다는 분명한 신호를 줘야 한다. 그것이 메가특구에서의 현실적 타협을 민주진보개혁 정부의 정체성 훼손으로 이어지지 않게 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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