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석·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후보가 공개 토론회에서 정청래 후보를 향해 "대기업 오너를 만나봤느냐", "국정과제 1호를 아느냐"고 물었다. 민주당을 이끌 미래 비전을 제시할 자리에서 정 후보의 경험과 지식 수준을 시험한 것으로 두고 정치권에서 뒷말이 나온다.
김 후보는 국정 이해도를, 송 후보는 국제 경험을 앞세워 정 후보와 자신의 '등급 차이'를 부각하려 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당대표 후보에게 신입사원 면접 보듯 '기초적 자질'을 묻는 게 과연 적절했는지 비판이 나온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후보(왼쪽부터), 정청래 민주당 당대표 후보, 김민석 민주당 당대표 후보가 10일 전남광주 서구 KBC에서 열린 TV 토론회에 앞서 양손을 맞잡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11일 정치권에서 나오는 말을 종합하면 전날 KBC광주방송이 주최한 민주당 당대표 후보 토론회에서 김 후보와 송 후보가 정 후보에게 던진 질문을 두고 스스로 민주당 대표의 품격을 떨어뜨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재명 정부 초대 국무총리를 지낸 김 후보는 국정 운영 경험을, 외교통일위원장 등을 지낸 송 후보는 외교·국제정치 경험을 자신의 강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두 후보는 자신들이 정 후보보다 더 풍부한 경험을 갖췄다는 점을 부각하며 경력을 내세웠고, 이를 정 후보와의 역량 차이로 연결했다.
먼저 김 후보가 정 후보를 시험대에 올렸다.
김 후보는 당정 관계가 좋지 않으면 선거 결과와 증시, 국정 지지도가 흔들리고 3대 메가 프로젝트 같은 대규모 국가사업에도 차질이 생길 수 있다며 정 후보가 다시 대표가 될 경우의 불안정성을 거론했다.
김 후보는 이어 정 후보에게 "실제 경제정책을 다뤄보거나 관련된 대기업 오너들과 일정 기간 이상 토의해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김 후보는 자신이 총리로서 기업·투자 현안을 다뤄봤다는 점을 들어 정 후보의 경제정책 역량을 따져 물은 것이다.
김 후보의 질문이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의 구체적 조성 방안이나 기업 투자 유치 정책보다 정 후보가 대기업 오너들과 교류한 경험이 있는지를 묻는 데 집중되면서, 정책 검증보다는 두 후보의 경력 차이를 부각하려는 질문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이에 정 후보는 곧바로 "김 후보는 사람을 무시하는 데 조금 일가견이 있는 것 같다"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정 후보는 이어 "당대표를 하면서 1년 동안 얼마나 많은 기업인들과 만나서 이야기했겠느냐"며 대기업 회장들과 자주 의견을 나눴고 중소기업중앙회와도 3개월마다 정기적으로 만났다고 반박했다.
송 후보도 같은 방식의 질문을 이어갔다. 송 후보는 특정 후보가 당대표가 되면 메가 프로젝트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고 선을 그으면서도 "그런데 실력의 차이는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직접 지목하지는 않았지만 앞선 공방의 맥락상 정 후보를 겨냥한 발언으로 보인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후보(왼쪽)가 10일 광주 서구 KBC에서 열린 TV토론회에서 정청래 후보에게 이재명 정부의 국정과제 개수와 제1호 과제가 무엇인지 묻고 있다. ⓒKBC뉴스 공식 유튜브 채널
이어 송 후보는 정 후보의 국정 이해도를 확인하겠다며 질문을 이어갔다. 먼저 정 후보에게 왜 당대표 연임에 도전하는지를 물은 뒤 이재명 정부의 국정과제가 몇 개인지, 제1호 국정과제는 무엇인지, 이를 실천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를 잇달아 물었다. 정 후보가 곧바로 답하지 않자 같은 질문을 다시 던졌다.
정 후보는 "당대표를 하면서 내란 청산이 제1호 국정과제라고 생각했다"고 답했다. 이에 송 후보는 "그건 본인 생각"이라고 잘라 말한 뒤 공식 국정과제는 123개이고, 제1호 과제는 5·18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이라고 정 후보를 몰아세웠다.
광주에서 열린 토론회라는 점을 고려하면 송 후보가 5·18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 문제를 꺼낸 데는 나름의 명분이 있었다. 5·18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은 광주 지역의 오랜 현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정과제가 몇 개인가", "1호 과제가 무엇인가"를 쪽지시험 수준의 질문이 이어지면서 정책 검증보다는 정 후보를 상대로 한 '지식 테스트'가 되버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토론회가 진행된 90분 동안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와 지역 발전,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등 다양한 현안이 다뤄지는 와중에도, 김 후보와 송 후보는 이처럼 정 후보의 경력과 지식 수준을 따지는 질문을 이어갔다.
전당대회를 일주일도 채 남기지 않은 상황에서 열린 이번 토론회를 두고 정책과 비전을 겨루는 대신 정 후보의 경험과 지식을 따져 묻는 '신입사원 면접' 수준으로 떨어졌다는 지적을 피하기 힘들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