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호르무즈 해협의 완전한 개방과 함께 미국-이란전쟁에서 '승리'를 선언하고 발을 빼려 한다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미국은 애초 전쟁의 목적인 이란 핵문제는 '추후 과제'로 미루고, 애초에 없었던 호르무즈 해협 통제권을 두고 이란과 외교적, 군사적 줄다리기를 이어가고 있다. 이에 해협 문제만 일단락 되면 곧장 전쟁에서 손을 떼려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이란은 미군 병력 철수와 자산동결 해제 등 기존의 6대 요구조건에서 전혀 물러서지 않고 있어 호르무즈 해협 개방 자체도 쉬운 일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9일(현지시각) 미국 뉴저지주의 트럼프 내셔널 베드민스터에서 열린 LIV 골프 뉴욕 대회 최종 라운드가 끝난 후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고 있다. ⓒ 로이터=연합뉴스
10일 뉴욕타임스와 월스트리트저널을 비롯한 외신보도를 종합하면 글로벌 안보전문가들은 미국의 이란을 향한 군사옵션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갈수록 멀어지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미군, 미사일은 떨어지고 지상전은 꿈도 못꾸고
미군 수뇌부는 이란을 향한 공중폭격이 한계에 이르러 새로운 군사옵션을 모색하고 있지만 이 또한 여의치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CNN은 8월7일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미군 내부에서 탄약재고가 "위험할 정도로 고갈됐다"는 평가가 나왔고, 댄 케인 미국 합참의장도 최근 트럼프 대통령과 회의에서 공격무기 재고 부족에 대한 우려를 직접 전달했다고 전했다.
실제 뉴욕타임스는 최근 미국의 핵심 방공체계인 패트리엇 미사일 재고가 1700기 미만으로 떨어졌다고 보도한 바 있다. 로이터도 앞서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의 절반 가량이 소진됐다고 보도했다.
일각에서는 미국이 패트리엇 물량을 보충하는 데 2년 이상이 걸릴 것으로 내다보면서 중동에 미군 자산이 집중된 여파로 동북아시아를 비롯한 다른 지역의 안보공백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모나 야쿠비안 중동프로그램 국장은 월스트리트저널에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에 대한 이란의 강경한 모습으로 인해 트럼프 대통령이 체면을 지키면서 미국-이란전쟁에서 벗어날 출구를 마련하기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안보분석업체 유라시아그룹의 이란 전문가 그레고리 브루도 월스트리트저널과 나눈 인터뷰에서 "이란은 트럼프 대통령이 전쟁을 끝내고 싶어하며, 호르무즈 해협 개통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을 완벽하게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강경책을 쓰고 있다"고 바라봤다.
이런 상황에 트럼프 대통령은 대대적 폭격강화 태세를 지시하면서 이란을 위협했다가 철회하는 패턴을 반복해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9일(현지시각) 미국 매체 악시오스와 인터뷰에서 이란 문제를 '체스게임'에 비유하면서 "미국은 저강도 전략(low-key)로 대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당장 군사적 확전에 나서기 보다는 시간을 두고 지켜보겠다는 태도로 읽힌다. 안보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미국이 군사적 목표를 달성했다고 주장하지만 탄약부족이라는 현실적 제약에 발목이 잡힌 것이라고 바라보고 있다.
이란, 미국의 약점을 틀어쥐고 '호르무즈 해협' 지킨다
이란 테헤란에 걸린 알리 호세인 하메네이 전 이란 최고지도자 초상. ⓒ AFP통신=연합뉴스
이란이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출구 전략을 모색하는 와중에 오히려 기준 요구조건에 더욱 힘을 실으며 미국을 압박하고 있다.
모하마드 바게르 졸가드르 이란 최고국가안보회의 사무총장은 8일 성명을 통해 △해상봉쇄 해제 △중동지역 미군철수 △전쟁피해 배상 △이란 제재 해제 △동결자산의 무조건적 반환 △이란과 역내 동맹에 대한 위협 중단 등 호르무즈 해협 개방을 위한 6대 조건을 제시했다.
졸가드르 사무총장은 이 조건을 제시하면서 "미국이 행동을 바꾸기 전까지는 호르무즈 해협은 열리지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
이란의 6대 요구조건은 올해 6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서명했다가 무산된 종전 양해각서의 골자와 대체로 겹치지만, 전쟁 배상금 요구가 새로 추가되면서 더 강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란은 이들 조건을 미국이 먼저 충족시켜야 호르무즈 해협을 열어주겠다고 고집함에 따라 양국의 향후 협상은 쉽지 않을 것으로 외신들은 전망했다.
뉴욕타임스는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포기할 생각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며 "이란은 트럼프 대통령을 6월 종전 양해각서 때로 되돌리기 위해 호르무즈 해협을 최선의 지렛대로 쓰고 있다"고 분석했다.
벨기에 싱크탱크 국제위기그룹(ICG)의 알리 바에즈 이란 프로젝트 담당자는 뉴욕타임스와 나눈 인터뷰에서 "호르무즈 해협은 트럼프 대통령의 머리 위에 올려진 다모클레스의 칼과 같다"며 "이란은 주요한 지렛대인 호르무즈 해협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혜택을 선점하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영국 싱크탱크 채텀하우스의 사남 바킬 중동·북아프리카 프로그램 책임자도 뉴욕타임스에 "호르무즈 해협은 단순히 통행료 문제에 머무르는 게 아니라 이란의 나머지 요구사항에 대한 통제권과 지렛대에 관한 문제"라며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 개방을 결코 공짜로 해줄 생각이 없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