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최상위권 학생들의 '정답'처럼 여겨졌던 의대 쏠림이 흔들리는 가운데, 특히 한의대 등은 선호도가 눈에 띄게 약화지고 있다.
교육계와 산업계 모두가 반도체 시장 호황에 주목하고 있다. AI 이미지.
최근 SK하이닉스가 사상 최대 실적을 이어가면서 임직원 성과급 규모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올해 연간 영업이익이 200조 원을 넘어설 경우 영업이익의 10%를 임직원 수로 단순 환산하면 1인당 약 6억 원 수준의 성과급이 가능하다는 계산까지 나온다.
삼성전자 역시 올해 1분기 연결 기준 영업이익 57조2천억 원을 기록한 데 이어 2분기 잠정 영업이익으로 89조4천억 원을 제시했다. 이에 삼성전자 노동조합은 성과급 상한 폐지와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임직원에게 배분하는 방식 등 SK하이닉스와 유사한 보상체계 도입을 요구하고 있다.
이처럼 반도체 산업의 '슈퍼사이클'이 이어지면서 취업시장뿐 아니라 교육계가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대학과 학과 선택을 앞둔 고교생과 수험생들은 과거와 다른 기준으로 진로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의치한약수' 대신 등장한 '의치반도체'
서울시내 한 의과대학 모습. ⓒ연합뉴스
대표적인 변화는 이과 최상위권 학생들의 진학 공식이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오랫동안 '의치한약수(의대·치과대·한의대·약대·수의대)'로 대표되던 최상위권 진학 코스 대신 최근에는 '의치반도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특히 상대적으로 기대수익이 낮다고 평가받는 한의대가 가장 직접적 영향을 받는 분위기다.
온라인 입시 커뮤니티에는 "고연봉과 성과급, 복지까지 고려하면 의사에 전혀 밀리지 않는다", "처음부터 반도체 계약학과를 목표로 했는데 경쟁률이 더 오를까 걱정된다"는 글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단순히 연봉만이 아니라 장기적인 성장성과 산업 전망까지 고려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이 같은 변화의 배경에는 인공지능(AI)의 급속한 발전도 자리하고 있다. 수험생과 학부모 사이에서는 앞으로 AI가 의료 영역에 깊숙이 침투하면서 의사라는 직업의 안정성이 약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당연히 의사라는 직업은 존재하겠지만 지금과 같은 높은 희소성과 독점적 지위가 유지될지 불확실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 입시 결과에서도 이러한 변화는 확인된다. 종로학원에 따르면 2026학년도 수시모집에서 삼성전자·SK하이닉스와 연계된 반도체 계약학과 6곳은 모집인원 250명에 5516명이 지원해 평균 경쟁률 22.1대 1을 기록했다. 전년도보다 모집인원은 13명, 지원자는 231명 증가했다.
반면 메디컬 계열 지원 열기는 눈에 띄게 식었다. 종로학원이 2026학년도 정시 원서접수 결과를 분석한 결과, 의치한수약 계열 정시 지원자는 1만8297명으로 전년보다 6001명(24.7%) 감소하며 최근 5년 사이 가장 적은 수준을 기록했다. 의대 지원자는 32.3% 줄어 감소 폭이 가장 컸고, 약대는 22.4%, 치대는 17.1%, 수의대는 14.5%, 한의대는 12.9% 감소했다. 2026년 수시 지원자 역시 11만2364명으로 최근 5년간 가장 적었다.
특히 약대·한의대·수의대는 의대만큼의 사회적 상징성이나 기대수익을 확보하지 못한 채, 상위권 학생들에게는 '차선책'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의대의 지원자 감소율은 12.9%로 메디컬 계열 가운데 가장 낮았지만, 이는 안정적인 선호를 유지했다기보다 이미 낮아진 지원 규모에서 추가 감소폭이 제한된 결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분석이다. 결국 의약학 계열 전반에서 최상위권 학생들의 관심이 점차 이탈하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의료산업과 달리 반도체 쪽은 AI로봇의 대체도 어려워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생산 라인. ⓒ삼성전자
반도체 분야가 주목받는 또 다른 이유는 AI 시대에도 비교적 대체 가능성이 낮은 직군으로 평가받기 때문이다.
산업계와 연구기관들은 AI 시대가 본격화될수록 오히려 반도체 산업의 중요성이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한다. KDI와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등은 AI 확산을 위해서는 고성능·저전력 메모리와 비메모리, AI 전용 칩 등 첨단 반도체의 지속적인 성능 향상이 필수적이라고 분석했다. 다시 말해 AI 산업의 성장은 인력을 투자한 반도체 기술 발전을 전제로 한다는 의미다.
직무 특성 역시 기술 발전에 따른 자동화 흐름에 비교적 강한 것으로 평가된다. 국내 전문 AI 정보 허브인 모켓의 'AI 자동화 위험 분석'에 따르면 반도체공학자의 AI 대체 위험도는 약 18% 수준으로, 단순·반복 업무를 포함한 전체 직업 평균(약 40% 안팎으로 추정)보다 크게 낮다.
또한 해당 사이트는 'AI 협업 가능성'은 약 85% 수준으로 분석됐다. 반도체와 관련된 다수의 전문 영상 및 보고서에서 전문가들은 AI는 설계 보조, 시뮬레이션, EDA(전자설계자동화) 등의 생산성을 크게 높일 수 있지만, 공정 설계와 신소재 적용, 양산 수율 개선 등 핵심 단계에서는 여전히 고도의 공학적 판단과 창의적 문제 해결 능력이 요구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런 측면에서 의료 분야와 차이를 보인다. 한국직업능력연구원은 의사·약사·변호사 등 전문직 가운데서도 단순 판독이나 표준화된 절차 중심 업무는 AI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크게 받을 수 있다고 분석한 것이다. 다만 환자와의 대면 진료, 종합적인 의학적 판단, 복합적인 의사결정이 필요한 영역은 상당 기간 인간 전문가의 역할이 유지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면서도 의료계 역시 AI와 로봇 기술의 발전으로 기존 직업 형태가 크게 변화할 가능성은 피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생성형 AI는 영상 판독과 진단 보조를 넘어 의사의 진료를 직접 지원하는 단계로 발전하고 있으며, 로봇 수술과 휴머노이드 기술 역시 빠르게 고도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은 2010년 이미 '인공지능 시대의 전문직 직업연구'를 발간하며 의사라는 직업 자체의 소멸을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AI와 자동화로 인해 직무의 형태와 역할은 지금보다 크게 변화할 가능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