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이 전 세계를 덮친 가운데 여성이 남성보다 폭염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는 분석이 나왔다.
한 여성이 2026년 6월12일 서울에서 부채를 이용해 햇빛을 가리고 있다. ⓒAFP=연합뉴스
영국 방송 BBC는 9일 "폭염은 여성에게 남성보다 더 큰 타격을 준다"며 "이는 여성의 신체적 특성과 생애 주기, 사회적 요인 때문이다"라고 보도했다.
5월 말부터 유럽에서 시작된 폭염은 미국과 아시아로 확산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이달 7일 "앞으로 유럽 지역에서 폭염이 지속될 예정"이라고 밝혔고, 세계기상기구(WMO)는 9일 "기록상 이번 6월은 서유럽에서는 가장 더운 6월이었으며, 전 세계적으로는 두 번째로 더운 6월이었다"고 발표했다.
BBC는 2025년에 발표된 생리적 및 주관적 온도 반응의 성별 차이 관련 연구를 인용해 "생물학적으로 여성은 남성보다 땀을 적게 흘리고 더 높은 온도에서 땀을 흘리기 시작해 폭염 상황에서 열을 빠르게 발산하는 능력이 떨어진다"며 "피부나 옷에 땀이 적다 보니 신체가 과부하 상태인지 판단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여성은 남성보다 몸 안쪽 깊숙한 곳의 체온인 심부체온과 체지방률이 더 높아 남성과 비교하면 단열층을 추가적으로 지니고 있는 셈이다.
여성 건강 전문의인 나이갓 아리프는 BBC에 "월경 주기, 완경 전후, 완경기, 임신 및 수유 기간 동안 여성의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 수치는 계속 변동한다"며 "여기에 폭염까지 더해지면 뇌의 체온 조절 시스템이 균형을 잃게 되고 심혈관계에 부담을 준다"고 설명했다.
아리프는 월경이 시작하기 전인 월경 주기 후반에는 프로게스테론 수치가 상승해 심부체온이 올라가 더위에 민감해진다고 강조했다.
이런 상태에서 월경을 시작하면 체온 조절을 담당하는 호르몬인 에스트로겐 수치가 최저 수치로 떨어지기 때문에 체온을 낮추려 심장이 더 빨리 뛰고 혈관이 더 넓게 확장되는 등 심혈관계에 압박이 가해진다.
아리프는 월경으로 철분이 손실돼 철분 부족 상태에 돌입하면 산소 공급에도 영향을 미쳐 심혈관계에 추가적인 부담이 더해진다고 덧붙였다.
월경을 더 이상 하지 않는 경우에도 여성은 폭염에 더 큰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완경기 여성은 에스트로겐 수치 감소로 안면 홍조와 밤에 땀이 많이 나는 야간 발한을 경험하는데, 폭염 기간에 이런 증상이 더욱 빈번하고 심해질 수 있다.
자궁내막증이나 다낭성난소증후군 등의 질환 치료로 난소를 절제하거나 호르몬을 먹고 있는 경우에도 비슷한 증상을 겪을 수 있다.
BBC는 연구에 따르면 기후 변화로 이런 완경 증상이 더욱 악화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임신한 여성들의 경우에도 폭염에 큰 영향을 받았다.
영국 종합 의학 저널인 란셋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임산부는 신진대사로 열이 상승하고 수분 필요량이 증가하면서 체온 조절이 어려워져 열 스트레스에 더 취약해질 수 있다.
연구결과에서는 호르몬 변화도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임신 초기부터 중기까지에는 프로게스테론 수치가 변동하면서 체온이 상승할 수 있다. 임신 후기에 도달해야만 프로게스테론과 에스트로겐 수치가 함께 상승해 체온이 낮아진다.
기저질환이 있거나 임신 관련 질환이 발생한 산모, 35세 이상 혹은 17세 이하 산모 등 고위험 임신의 경우 열 스트레스가 산모와 태아에게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증가했다.
폭염을 겪는 임산부에게는 임신 중 태아의 크기도 중요한 요소로 밝혀졌다. 태아의 체중이 많이 나갈수록 임산부의 심혈관계에 부담이 커졌다.
BBC는 "열 스트레스가 특히 여성에게 심혈관 질환 발병률과 사망률을 높인다는 연구가 있었다"며 "폭염 기간 동안 땀으로 수분과 염분 손실이 심해져 열탈진에 걸릴 수 있고, 심장에 가해지는 부담이 증가하면서 혈압이 낮아져 심장마비 위험이 높아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아리프 박사는 "수분을 충분히 섭취하고 선풍기나 냉찜질 용품을 준비해야 한다"며 "열탈진과 열사병 증상을 알아내고 월경 주기를 확인해 몸을 잘 돌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회적 요인 역시 여성을 폭염에 남성보다 취약하게 만드는 원인 가운데 하나였다.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 국제보건연구소의 캣 핀호-고메스 공중보건 컨설턴트는 사회경제적 상황과 나이 역시 여성을 폭염에 더 취약하게 한다고 BBC에 설명했다.
핀호-고메스 컨설턴트는 "여성은 남성에 비해 임금이 적거나 가족에게 돌봄노동을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건 더운 날씨에 스스로를 얼마나 잘 돌볼 수 있는지에 큰 영향을 준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나이가 많을수록 더위에 더 취약해지는데 여성의 평균 수명이 남성보다 길다"며 "이 때문에 건강상의 문제에 더 많이 노출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핀호-고메스 컨설턴트는 이어서 노인들은 치매에 걸릴 가능성이 더 높은데, 치매는 갈증을 인지하는 능력을 저하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노인들은 혈압을 낮추려고 이뇨제를 복용하는 여러 질환에 걸린 경우가 많은데 이뇨제는 몸에서 수분을 배출해 열 스트레스에 더욱 취약하게 만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