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이 기록적인 폭염으로 신음하는 가운데, 뜻밖에도 한국 지하철의 냉방 시스템이 주목받고 있다.
한국 대중교통의 쾌적한 환경에 유럽을 중심으로 세계가 놀라고 있다. 지하철은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 각 나라의 기후와 역사, 도시 구조, 시민 문화가 고스란히 녹아든 '도시의 거울'이기도 하다.
시민들의 발이 되어주는 지하철. AI 이미지.
13일(현지시각) 로이터 보도를 보면, 세계보건기구(WHO)와 유럽질병예방통제센터(ECDC)가 지원하는 의료통계 네트워크 '유로모모' 자료를 인용해 올해 6월 폭염 기간 유럽에서 발생한 초과 사망자가 1만650명에 이르렀다.
영국 런던과 인근 지역은 7월 첫째·둘째 주 동안 낮 최고기온이 32~35도를 오르내리며 시민들을 괴롭혔다. 문제는 지상보다 지하였다. 런던 지하철 일부 노선에서는 객실 바닥 온도가 40도 안팎까지 치솟았고, 냉방 장치를 갖춘 열차는 약 190대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이스트 미들랜즈 철도는 "정말 필요한 경우에만 열차를 이용하고, 가능하면 오전 시간대에 이동해 달라"고 안내하는 진풍경까지 벌어졌다.
이와 비교하면 한국 지하철은 상당히 낯선 풍경이다. 객실 냉방은 물론이고, 승강장에는 냉방이 되는 고객대기실이 마련돼 있어 폭염을 피할 수 있다. 여름철이면 냉방 강도를 두고 민원이 나올 정도로 '쾌적함'이 기본 서비스처럼 여겨진다. 이러한 풍경은 해외 주요 도시에서도 결코 흔한 일이 아니기에 더욱 특별하다.
이처럼 지하철은 시민들의 발이 되는 교통수단인 동시에, 도시의 성격과 국가의 특성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공간이다. 현지인에게는 너무도 익숙한 일상이지만, 외국인의 눈에는 신기하고 독특한 문화로 다가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하궁전, 모스크바 지하철
모스크바 지하철역 중 가장 긴 파르크포베디 에스컬레이터. ⓒ모스크바=연합뉴스
모스크바의 가장 번잡한 교통 허브인 콤소몰스카야 광장. ⓒ연합뉴스=모스크바
러시아의 모스크바 지하철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지하철 가운데 하나로 꼽히며, '지하궁전'이라는 별명까지 갖고 있다. 가장 큰 특징은 역사 깊이다. 대표적인 파르크 포베디역은 평균 지하 84m, 최대 97m에 자리하고 있으며, 승강장까지 이어지는 에스컬레이터 길이만 126m에 달한다. 처음 방문한 사람이라면 끝이 보이지 않는 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경험만으로도 압도적인 규모를 실감하게 된다.
긴 에스컬레이터를 내려 역사 안으로 들어서면 공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X-레이 수하물 검색기와 안전요원들이 승객을 맞이한다. 러시아는 테러 예방을 위해 지하철과 기차역, 대형 쇼핑몰 등 사람이 많이 모이는 시설에서 보안 검색을 실시한다.
검색대를 통과하면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승강장 바닥과 벽면은 대리석으로 마감됐고, 대리석 의자와 화려한 샹들리에, 흰 대리석 조각 작품들이 곳곳을 장식해 마치 궁전이나 미술관을 걷는 듯한 느낌을 준다. 지하철을 기다리는 공간이라기보다 하나의 관광 명소에 가깝다.
이처럼 화려한 모습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다. 모스크바 지하철은 1935년 첫 노선 개통 이후 2차 세계대전과 냉전을 거치며 독일군의 폭격을 피하는 방공호와 핵 대피시설 역할까지 고려해 건설됐다. 아름다운 건축미 속에 도시를 지키기 위한 실용성을 함께 담아낸 것이다. 여기에 열차가 1~2분 간격으로 운행될 만큼 배차도 촘촘해, 역사와 예술, 기능성을 모두 갖춘 세계적인 지하철로 평가받고 있다.
길 잃기 딱 좋은 도쿄 지하철
상당히 복잡한 도쿄 지하철 노선도. ⓒ도쿄도 교통국
인파로 붐비는 한 교토의 지하철. ⓒAFP=연합뉴스
일본은 세계 최고 수준의 철도망을 갖춘 나라다. 특히 도쿄는 280개가 넘는 지하철역과 JR, 사철이 촘촘하게 연결돼 도시 어디든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다. 하지만 처음 찾는 여행객에게는 그 촘촘함이 오히려 난관이 된다. 도쿄메트로와 JR, 다양한 사철 노선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같은 승강장에서도 열차마다 목적지가 달라지고, 같은 방향으로 출발한 것처럼 보여도 중간에 노선이 갈라져 전혀 다른 지역으로 향하는 경우도 흔하다.
다만 세분화된 요금 체계와 환승 시스템을 일부 갖춘 점은 위안거리다. 2026년 현재도 혼잡 완화와 배차 개선, 승강장 안전시설 확충, 배리어프리 환경 개선 등이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복잡하지만 그만큼 정교한 도시 시스템을 보여주는, 하지만 불편한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또 하나 눈길을 끄는 것은 일본만의'지연증명서'제도다. 태풍이나 폭설, 선로 진입 사고 등으로 열차가 일정 시간 이상 지연되면 철도회사가 공식 증명서를 발급해 회사나 학교에 제출할 수 있도록 한다. 역무원에게 종이 증명서를 받거나 철도회사 홈페이지에서 디지털 문서를 내려받을 수 있어, 재난 상황에 잘 적응된 일본 사회의 문화를 엿볼 수 있다.
예술의 나라다운 아름다움, 나폴리 지하철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지하철역으로 꼽히는 이탈리아 톨레도역. ⓒPexels 무료 이미지
톨레도역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하는 사람들. ⓒPexels 무료 이미지
이탈리아 지하철은 유럽의 다른 대도시에 비해 노선 수가 많지 않고 구조도 비교적 단순하다. 대신 관광객 입장에서는 로마처럼 주요 명소를 빠르게 연결해 접근성이 뛰어나다는 장점이 있다.
무엇보다 이탈리아 지하철을 특별하게 만드는 곳은 나폴리 1호선의 톨레도역이다. 2012년 개통한 이 역은 영국 데일리 텔레그래프와 CNN이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지하철역' 가운데 하나로 선정할 만큼 예쁜 공간으로 꼽힌다.
지하로 내려가는 순간부터 회색 콘크리트 대신 푸른빛과 흰빛이 어우러진 타일, 그리고 빛의 연출이 공간을 가득 채운다. 마치 깊은 바닷속이나 우주 공간으로 들어가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며, 역 전체가 물결과 별빛, 심해를 하나의 예술 작품처럼 표현한다.
그 아름다움은 각종 국제 건축상으로도 인정받았다. 2013년 에미레이트 리프 인터내셔널 어워드 공공건축 부문을 수상했고, 2015년에는 국제터널협회상까지 품에 안았다.
다만 화려한 풍경만 보고 방심해서는 안 된다. 특히 로마 지하철은 유럽에서도 소매치기가 많은 곳으로 유명해 관광객이라면 항상 가방과 귀중품을 각별히 살펴야 한다.
끝으로...
같은 '지하철'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그 모습은 도시마다 전혀 다르다. 한국은 무더위를 견디기 위한 촘촘한 냉방 시스템을, 러시아는 전쟁의 역사를 품은 깊은 지하 공간을, 일본은 세계 최고 수준의 촘촘한 철도망을, 이탈리아는 예술을 담은 역사를 만들어냈다.
지하철은 사람을 실어 나르는 교통수단을 넘어 한 나라의 기후와 역사, 문화, 그리고 도시가 추구하는 가치까지 담아내는 가장 일상적인 공간이다. 그 때문에 여행지에서 지하철은 관광객들에게 낯선 볼거리로서 즐거움을 주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