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일을 오래 하고, 어느 정도 높은 자리에 오르면 으레 '쌈닭 같다'는 말을 듣는다. 똑같이 성공한 남자에게는 그런 평판이 붙지 않는데 왜 여자에게만 그럴까 싶지만 어쨌든 일터엔 그런 선입견이 존재한다.
여성은 남성보다 '독고다이(혼자 행동하기 좋아하는 사람을 이르는 속어)'로, 좀 더 자력갱생해야 한다. 학연, 지연, 동기, 동창, 회사 동료 등으로 서로 끌어주고 밀어주는 네트워크가 남성에 비해 약하다. 여성의 사회 진출 역사가 짧고 높은 자리까지 올라간 여성도 적으니, 도움을 기대하기 쉽지 않다.
여성은 남성보다 좀 더 자력갱생해야 한다. ⓒ허프포스트코리아
비빌 언덕이 조금 있다 하더라도, 공적인 관계를 사적 지원으로 확대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언니와 동생 사이가 아무리 친밀하다 한들, 남성과 달리 직장에서의 밀어주기로는 잘 이어지지 않는다.
매체 인터뷰에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가 "유리천장이 있느냐"는 것이었다. 있다고 생각한다. 팀장과 임원을 거쳐 대표가 되는 과정의 끝까지 가는 사람은 극히 소수다. 임원이 되는 확률이 팀장의 10분의1 정도라면, 대표가 되는 확률은 그보다 훨씬 낮다. 사업 성과와 조직 관리 평판, 대표 경험까지 필요하다. 끌어주고 밀어주는 네트워크가 없는 상태에서 이 조건을 다 맞췄다 해도, 여성이라는 불이익을 한 번 더 뛰어넘어야 한다.
특히 국내 대기업과 500대 상장기업에서는 여성 대표를 찾기 어렵다. 해외 본사를 둔 한국의 다국적기업에서는 여성 대표가 드문드문 있어도, 주주 관리, 투자, 회계, 영업, 유통, 노조, 자금, 물류, 이사회까지 모두 아우르는 국내 상장기업에서는 여전히 드물다.
대표만큼 여성의 빈자리가 큰 곳이 이사회다. 이사회는 의장의 인맥으로 구성되는 경우가 많고, 여성이 진입하기는 쉽지 않다. 이사회의 투명성과 다양성을 위해 강제로 배치해야 한다는 법적 장치가 생기기 전까지, 이사회에서 여성은 거의 전무했다.
인맥 없이, 비주류로 유리천장을 뚫으려면 '쎄야' 한다. 정확히는 좀 '쎄 보여야' 한다. 성공한 여성들은 직선적이고 공격적이라는 평을 듣는다. 흐물흐물하거나 만만하게 보이면 안 되니까 더 쎄 보이는 태도를 취한다.
나 역시 영업을 빡세게 할 때 '공격적'이라거나, "저 여자에게 찍히면 죽는다"는 말도 들었다. 처음엔 이 평판이 싫지만은 않았다. 물불 안 가리고 달려 성과를 내던 초기 임원 시절이어서 미숙한 점이 많았으니, 만만하게 보이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
나는 남성 중심의 견고한 라인과 위아래 문화를 깨고, 거기에 묻어가는 사람 대신 능력 있는 직원을 발굴해 공정하게 평가하려 했을 뿐이다. 하지만 돌아오는 평가는 '독하고 무섭다'는 것이었다. 아마 여성이라는 이유로 더 혹독하게 평가한 것이었나 싶다.
그런데 닥치고 돌진했던 초기 임원 시절을 보내고, 더 어려운 회사, 더 최악의 상황을 겪고 나니 나에게도 변화가 찾아왔다. 쎈 여자로 시작했는데 점점 부드러워지고 유연해졌다. 진짜 능력은 부드러움 속에 있다는 것을 나이가 들수록, 사람들을 겪을수록, 인생의 쓴맛을 볼수록 알게 됐다.
그래서 지금의 나에게선 예전의 모습이 잘 안 보인다.
항상 돌진하고, 거침없고, 싸우면 반드시 이겨야 했던 나 대신, 모든 일에 사정이 있다는 걸 알고, 약점 많은 사람에게서 장점을 찾고, 정당한 이유 없이 화내고 열 올리는 사람에게 굳이 덩달아 화내지 않는 내가 있다. 좀 사람이 나아졌다.
글쓴이 조정열 전 에이블씨엔씨 대표이사는 K옥션, 갤러리현대, 쏘카, 한독, 에이블씨엔씨에 이르기까지 10년 넘게 예술, IT 플랫폼, 제약, 소비재 산업을 넘나들며 전문 경영인으로 일했다. 1991년 동서리서치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후 '마케팅 사관학교' 유니레버와 로레알 한국 지사에서 마케팅과 브랜딩을 담당하며 10년을 보냈다. 이후 MSD 한국 지사 사업부 담당, 피자헛 한국 지사 마케팅 담당으로 일하며 대표가 되기 전 10년간 임원 생활을 했다. 현재는 후배 경영인과 직장인의 멘토로, 예술계와 비즈니스를 연결하는 아트 프로모터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전략보다 '지금, 여기'였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