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드위치 1만5000개를 만들 수 있는 양, 약 360kg의 땅콩버터가 전시장 바닥을 채웠다.
네덜란드 로테르담 보이만스 판 뵈닝겐 미술관 수장고에서 ‘땅콩버터 미장공’들이 덩어리 없는 땅콩버터를 바닥에 펴 바르고 있다. ⓒEPA/연합뉴스
10일(현지시간) AP통신에 따르면, 박물관 바닥을 가득 채운 땅콩버터는 지난달 8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네덜란드의 '괴짜 거장' 빔 T. 시퍼르스를 추모하기 위한 작품이다.
그의 대표적인 개념미술 작품 ‘핀다카스블로어(Pindakaasvloer, 땅콩버터 바닥)’는 로테르담 보이만스 판 뵈닝언 미술관 별관 데포(Depot)에서 두 달간 전시된다.
네덜란드 개념미술가 빔 T. 스키퍼스는 1969년 선보인 대표작 땅콩버터 바닥으로 이름을 알렸다. 고인은 작품의 아름다움이나 기술적 완성도보다 아이디어(개념) 자체를 예술의 핵심으로 삼는 작가였다. 그는 바닥에 땅콩버터를 바르는 엉뚱하고도 도발적인 발상으로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번 전시를 완성하는 과정부터 스키퍼스다운 노동 집약적 퍼포먼스였다. 미술관 직원 두 명은 지난주 내내 육각형 모양의 전시장 바닥에 40통의 땅콩버터를 펴 발랐다. 넓적한 미장 도구를 이용해 땅콩버터를 마치 바닥 공사하듯 매끈하고 평평하게 다듬었다. 약 2cm 두께로 고르게 펼쳐진 땅콩버터 바닥은 그렇게 하나의 작품이 됐다. 작가가 선호했던 네덜란드 브랜드 '칼베(Calvé)'는 이번 전시를 위해 기꺼이 땅콩버터 40통을 기부했다.
관람객들이 2026년 7월9일(현지시각) 네덜란드 로테르담의 미술관 전시장에서 바닥에 펼쳐진 '땅콩버터 바닥'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이 작품은 지난달 세상을 떠난 네덜란드 예술가 빔 T. 시퍼르스를 추모하기 위해 설치됐다. ⓒAP/연합뉴스
전시장에 들어서면 관람객은 작품을 보기 전 먼저 냄새로 작품을 마주한다. 고소한 땅콩버터 향은 전시장 아래까지 퍼질 정도다. 다만 땅콩 알레르기가 있는 관람객이라면 주의가 필요하다.
스키퍼스는 생전에 이 작품을 재현할 때 지켜야 할 20가지 원칙도 남겼다. 그중에는 "최대한 매끄럽고 지루하게 바를 것", "절대 땅콩버터 위에 올라가거나 눕지 말 것"이라는 내용이 있다.
땅콩버터 바닥은 과거에도 숱한 논란을 남겼다. 2011년에는 누군가 끈적이는 바닥에 발을 들이는 소동이 있었고, 1997년에는 누군가 빵 위에 뿌려 먹는 초콜릿 알갱이와 식빵을 작품 위에 올려놓는 사건도 있었다.
스키퍼스는 이마저도 작품의 일부처럼 받아들였다. 그는 당시 네덜란드 일간지 볼크스크란트와 나눈 인터뷰에서 "나쁘지 않다"며 "초콜릿 알갱이가 제법 균형감 있고 능숙한 손길로 뿌려졌다"며 작품 훼손 사건마저 유머로 받아들였다.
고인을 기리는 추모 전시 기사를 접한 누리꾼들은 "음식은 낭비해서는 안 된다", "누군가를 기리는 방법에는 더 평범하고 의미 있는 방식도 있다. 정말 낭비다", "돈과 자원만 허비한, 아무 의미도 없는 지적으로 빈약한 작품이다. 완전히 실패한 예술"이라는 등 비판적인 반응도 이어졌다.
땅콩버터 위에 올라서지 말라는 작가의 당부처럼, 관람객은 작품을 밟을 수 없다. 고소한 향으로 가득 찬 전시장 안에서 스키퍼스가 평생 던졌던 질문과 마주한다. 도대체 어디까지가 예술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