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그룹 차원에서 내놓은 초거대 투자 계획에 삼성중공업의 이름이 포함됐다. 3년 전과 비교해 거제조선소 투자 청사진이 고부가가치 선박 생산거점 육성이라는 구체적 미래 전략으로 진화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최성안 삼성중공업 대표이사 부회장은 부유식 액화천연가스 생산·저장·하역설비(FLNG) 시장 지배력을 더욱 강화하는 동시에 부유식 데이터센터(FDC)라는 미래 먹거리 선점을 위한 투자를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최성안 삼성중공업 대표이사 부회장. ⓒ삼성중공업
6월30일 조선업계 안팎에 따르면 삼성의 2655조 원 규모의 중장기 투자 계획에서 삼성중공업이 위치한 경남 거제를 고부가가치 선박 생산거점으로 육성하겠다는 방침에 눈길이 쏠린다.
최근 5년 사이 삼성의 대규모 투자 발표를 종합해보면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의 반도체를 중심으로 바이오, 배터리 등 신성장 산업 분야에 그 내용이 쏠려왔기 때문이다.
국내 투자 기준으로 삼성은 2021년 8월 코로나19 이후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180조 원을 투입하기로 결정하며 반도체, 바이오, 통신, AI 등을 전면에 내세웠다. 이어 2022년 미래 먹거리 육성을 위한 360조 원 투자에서도 반도체와 바이오, AI와 차세대 통신에 자금 활용처를 집중했다.
물론 2655조 원 투자도 삼성은 평택캠퍼스 및 용인 국가산업단지를 비롯해 반도체 클러스터 육성 등에 2030조 원을 배정하는 등 미래산업 육성에 방점을 찍었다.
다만 이번 계획에는 삼성중공업이 최첨단 고부가가치선 건조 거점을 육성한다는 방침이 포함됐다. 삼성은 주력 제조업에 인공지능 전환(AX), 로봇 전환(RX)을 접목하는 방식으로 국가 산업 엔진으로서의 역할을 강화하기 위해 영남에 모두 60조 원을 투자하기로 했고 여기에 삼성중공업의 거제조선소가 포함됐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6월29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에서 열린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에서 “차세대 조선사업은 경남 거제에 계속 투자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앞서 삼성중공업 관련 투자는 2023년 3월 발표한 60조1천억 원을 투입하는 삼성의 지역균형발전 계획에 포함돼 있었다.
다만 이때는 삼성중공업이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등 고부가 제품 중심으로 수주를 확대해 회사 수익성을 개선하는 한편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통해 거제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한다는 방침’이라고 언급됐었다.
당시는 삼성중공업이 2022년 영업손실 8544억 원을 보는 등 8년 연속 영업적자를 내고 있던 만큼 수익성 개선이라는 목표에 방점이 찍힌 것으로 풀이된다. 반면 현재는 삼성중공업이 3년 연속 영업이익을 내는 등 실적이 크게 개선된 상황인 데다 이 회장이 직접 투자를 언급할 만큼 거제를 향한 투자 기대감이 커지는 분위기다.
삼성중공업이 그룹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최성안 부회장이 대표로 선임된 뒤부터 점차 높아지고 있다는 평가가 있는 점도 거제조선소의 투자가 본격화할 것이라는 기대감과 무관하지 않다는 시선이 나온다.
삼성중공업은 과거 실적 부진, 전통적 조선산업을 영위하는 근본적 한계 탓에 삼성의 성장 기조에서 다소 소외됐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주요 계열사에 현장경영을 종종 실시하는 이 회장이 거제조선소를 방문한 지는 2015년 이후 10년이 넘기도 했다.
다만 최 부회장이 선임된 이후 삼성중공업이 2023년부터 2025년까지 영업이익을 거두고 2026년에도 개선세를 이어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최 부회장은 2022년 10월 이 회장이 그룹 회장 자리에 오르고 단행한 같은 해 12월 첫 인사에서 처음으로 부회장 자리에 오른 인물이다. 2009년 이후 13년 만에 삼성중공업 부회장 대표이기도 하다.
향후 ‘조 단위’ 투자가 진행된다면 삼성중공업 경쟁력 확보에 적지 않은 전환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삼성중공업은 시설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삼성중공업 최근 사업보고서를 종합해보면 2021~2025년 5년 동안 모두 작업장 합리화를 위해 6430억 원을 투자하는 데 그쳤다. 2026년에는 생산능률향상을 위한 설비투자가 예정돼 있지만 그 규모는 4300억 원에 머무른다.
거제조선소의 고부가가치화는 최 부회장이 활용하는 ‘글로벌 오퍼레이션’ 전략에 힘을 실을 무기로 평가된다. 글로벌 오퍼레이션 전략은 국내외 조선소와 협력해 해외 등지에서는 원유운반선 등 범용 선박의 제작을 맡기고 거제조선소에서는 고부가 선종 개발 및 건조에 집중하는 것이다.
삼성중공업은 중국과 베트남 등의 협력사를 활용해 범용 선박 건조를 맡겨 효율성을 높이는 생산구조를 갖추고 있다. 현재는 베트남 현지법인 설립을 추진하고 있는데 이는 현지 조선소와 협력관계를 더욱 강화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조선업계 한 관계자는 “삼성중공업의 글로벌 오퍼레이션은 생산물량을 늘리면서도 위험을 줄일 방안으로 평가된다”며 “해외 조선소를 직접 인수하면 호황일 때는 수익을 더 높게 확보할 수 있지만 불황 때 더 큰 리스크를 짊어지게 되는데 삼성중공업의 전략은 안정성을 높일 수 있는 셈”이라고 바라봤다.
최 부회장이 거제조선소를 고부가가치선 건조 거점으로 조성하면서 힘을 실을 분야로는 상선 부문의 주력 선종인 LNG운반선에 이어 부유식 액화천연가스 생산·저장·하역설비(FLNG)와 부유식 데이터센터(FDC)가 꼽힌다.
삼성중공업은 글로벌 FLNG 시장에서 최고의 경쟁력을 보유했다고 평가받고 있다. 현재까지 신조 FLNG 11척 가운데 7척을 수주해 세계 시장 점유율 64%를 장악하고 있다.
2026년에는 6월 초 미국 최초의 FLNG인 ‘델핀 1호기’를 4조3301억 원에 수주한 데 이어 아프리카 선주와 3조6536억 원 규모의 FLNG 건조계약을 따내며 시장 입지를 확인했다.
최 부회장은 꾸준한 발주 증가가 예상되는 FLNG를 매년 1~2기 수주하겠다는 계획도 세우고 있다. 해상에 설치되는 FLNG는 특성상 정치·사회적 리스크 영향을 줄이면서 안정적 사업 수행과 조기 수익 창출이 가능해 최근 불안한 에너지 공급망 속에서 육상 LNG 플랜트의 대안으로 부각되고 있다.
FDC는 최근 AI 수요 증가에 따른 데이터센터 병목 현상을 해결할 돌파구로 주목받고 있다. AI 데이터센터는 부지·냉각수·인허가 및 주민 수용성 문제 등 육상에 건설하기 위한 여러 제약조건을 지니고 있는데 해상에서는 이를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중공업은 업계에서 FDC 시장을 향해 가장 먼저 움직이는 조선사로 여겨진다. 삼성중공업은 6월 초(현지시각)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선박 박람회 ‘포시도니아 2026’에 참가해 현지 선주사 캐피탈 및 영국 로이드선급(LR)과 FDC 사업협력을 위한 3자 협약을 체결했다.
이를 놓고 이재혁 LS증권 연구원은 6월23일 ‘내일의 바다’ 조선해운 보고서에서 “삼성중공업은 4월 50MW(메가와트)급 FDC 기본설계승인(AiP)을 받은 뒤 포시도니아에서 3자 협약을 맺으며 사업을 구체화하고 있다”며 “글로벌 FDC 시장에서 선도자(리더)로서 입지를 선점했다”고 평가했다.
최 부회장은 포시도니아 2026 현장에서 “바다 위 데이터센터는 조선·해운업에 열려있는 기회의 시장”이라며 “글로벌 협력을 통해 FDC 시장에 선제적으로 진입해 독보적 입지를 구축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증권업계에서도 삼성중공업의 FLNG와 FDC을 고부가 사업으로 꼽고 긍정적 전망을 내놓고 있다.
양승윤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6월25일 삼성중공업 분석보고서에서 “기존에는 FLNG 상부 설비(톱사이드) 상세 설계를 파트너사가 주도했지만 점진적으로 이 역량을 내재화하고 있어 고부가가치 영역 진출에 따른 추가 수익성 개선이 기대된다”며 “삼성중공업은 FDC 사업에서 LNG운반선 및 FLNG와 비교해 동등하거나 그 이상의 수익성을 확보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내다봤다.